이 책 어때?

사람은 다 외로워_헨리 나우웬 "상처 입은 치유자"

설왕은 2019. 8. 15. 00:13

[책리뷰] 헨리 나우웬 "상처 입은 치유자"

제목: 사람은 다 외로워

 

"상처 입은 치유자"는 1972년에 나온 헨리 나우웬의 책입니다. 오래된 책이죠. 우리나라에 번역본이 나온 것은 1997년인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2005년이었고요. 신학을 공부하면서 두어 번 더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가 2006년 정도였습니다. 처음 읽을 때도 재미있고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깨달은 바도 있었고, 이 책 덕분에 제 마음에 깊이 새겨진 단어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환대(Hospitality)"입니다. 상처 입은 치유자가 할 수 있고 해야하는 일을 한 단어로 말하면 바로 환대입니다. 

 

이 책은 사역자를 위한 책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목사님들을 위한 책이죠. "목사는 어떤 목사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목사는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어야 한다"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나우웬은 신학과 심리학을 전공하고 상담자로서 사역을 오랫동안 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상담자가 내담자와 대화를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관점에서 쓰여진 책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책은 목사가 사람들을 만날 때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는 책입니다. 그렇다고 목회자가 아닌 일반인이 읽으면 안 되는 책은 아닙니다. 일반인이 읽어도 충분히 공감갈만한 내용입니다.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장: 단절된 세상에서의 사역

2장: 뿌리 없는 세대를 위한 사역

3장: 소망 없는 사람을 위한 사역

4장: 외로운 사역자의 사역

 

제일 중요한 '백미'는 4장입니다. 나우웬의 이 책은 매우 유명해서 아마 웬만한 사람들은 읽어 보지는 않았어도 제목은 다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느끼기에는 사람들이 이 책의 제목을 인용해서 말을 할 때 이 책을 제대로 안 읽어보고 그냥 짐작해서 말을 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제목으로 책 내용을 짐작하면, 상처 입은 사람은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사람에게 진정한 치유자가 될 수 있다 정도일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상처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상처를 받기 전에는 진정한 치유자가 될 수 없는 것이죠. 하지만 나우웬이 주장하는 바는 그런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받은 상처를 너무 괴로워하지 말고 자신이 상처받은 경험을 이용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일 해라 식의 주장이 아닙니다. 나우웬의 기본 전제는 누구나 상처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우웬이 언급하는 인간의 주된 상처는 '외로움'입니다.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죠. 또한, 인간은 약하기 때문에 상처받고 고통당하고 누구든지 나이들어서 죽든지 병들어 죽든지 죽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상처를 잘 돌볼 수 있는 사람은 타인의 상처도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William Collins "Cottage Hospitality"

 

2019년에 저는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어떻게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될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습니다. 외로움을 비롯한 자신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고 또 타인을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생각하면서 다시금 읽어 보았는데요. 4장의 첫 부분에 나온 오래된 이야기의 한 부분입니다. 메시아의 오심에 대한 랍비의 대답입니다. 

 

"그분은 온몸이 상처 투성이인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앉아 계십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를 한꺼번에 다 풀었다가 다시 한꺼번에 싸매지만, 그분은 한 번에 한 군데씩 상처를 풀었다가 다시 싸매십니다. 그러면서 그분은 '아마 내가 필요하게 될 거야. 그때 잠시도 지체하지 않기 위해 나는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해'라고 혼잣말을 하고 계실 것입니다." (110)

 

나우웬이 제시하는 방법은 이 이야기 안에 담겨 있습니다. 먼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되, 타인을 치료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상처가 많아서 한꺼번에 그것을 다 치료하고 싶은 마음도 들겠지만 그러지 말고 하나씩 치료하는 것이죠. 한꺼번에 치료를 하게 되면 타인이 나에게 찾아왔을 때 혹은 내가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 사람의 상처를 싸매줄 수 있는 여유가 없습니다. 자신의 상처에만 집중하고 자신이 상처받은 이야기만을 풀어 놓겠죠. 타인이 와서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치료받으려 할 때 자신의 상처가 더 깊음을 호소하며 치료를 거부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신의 고통을 깊이 이해할 때 사역자는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바꿀 수 있으며, 자신들의 고통을 잘못 이해하여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에게 사역자 자신의 경험을 치유의 원천으로 제공할 수 있습니다." (117)

 

나우웬은 환대를 위해서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첫째는 주인이 자신의 집에서 편안함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고요. 두 번째는 방문자가 두려움 없이 쉴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120) 제가 볼 때는 두 가지 조건에서 첫 번째나 두 번째가 모두 같은 말입니다. 주인이 자신의 집에서 편안함을 느껴야 손님에게 공간을 내어줄 수 있고 손님에게 공간을 내어주려면 자신의 집이 정리되어 있어야 하죠. 자신의 상처나 고통에 빠져 있으면 타인에게 내어줄 공간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타인에게 자신의 공간을 내어 주지 못하고 대화의 중심은 자기 자신이 됩니다. 즉, 그런 사람은 목적이 없는 대화를 하지 않습니다. 목적 없이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줄 수 있으려면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치유해야 합니다. 나우웬에 여기에서 명상과 묵상의 필요성을 언급합니다. 나약함과 고통과 상처를 해결한 강한 사람은 치유자가 될 수 없습니다. 나약함과 고통과 상처를 인간의 모습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치유자가 될 수 있고 환대를 할 수 있습니다. 나우웬이 말하는 치유는 진짜 치유가 아닙니다. 상처를 치료해 주는 치유가 아닙니다. 뭐라고 할까요? 공감을 통한 탈출구 찾기라고 해야 할까요? 상처를 치료해서 강인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연약함을 받아들임으로써 서로서로에게 기대어 함께 나아가는 것이죠. 따라서 환대에는 공동체가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살아 있는 한 고통은 완전히 해결되지 않습니다. 고통스러운 일들이 계속 일어나죠. 어떻게 보면 나우웬의 "상처 입은 치유자"는 인간이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받아들임으로 공동체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살아 있는 한 완전한 치유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상처와 고통에만 집중해서 그것을 치유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인다면 우리는 타인을 환대할 수도 없고 공동체를 만들 수도 없습니다. 

 

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도움을 얻고자 사방팔방 뛰어다니고 사람들을 만나서 도와달라고 요청해도 오히려 그들이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할 때가 많죠. 공감도 해 주지 않고 도움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서로에게 공간을 내어 주지 못하고 그냥 남남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우리는 스스로 나는 타인을 환대할 만한 여유도 없고 상황도 안 된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넉넉하게 타인을 환대할 만한 여유가 되고 상황이 되는 때는 언제 오는 걸까요? 마치 메시아가 언제 오는 것인지 물어보는 것과도 비슷하네요. 메시아는 언제 올까요? 

 

나우웬이 결론에서 인용한 이야기의 한 부분, 성경의 한 구절로 대답합니다. 

 

"너희가 오늘날 그 음성 듣기를 원한다면(시 95:7)" 메시아는 오늘 온다고 합니다. 

 

언제 우리는 타인을 환대할 수 있을까요? 오늘이요. 오늘 할 수 없다면 내일도 할 수 없습니다. 나우웬은 그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도 공감하고요. 오늘 나우웬의 책을 다시 읽으면서 다시 또 두 글자를 제 마음에 더 깊이 새깁니다. 오늘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입니까?

 

"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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