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어때?

사랑은 신이 아니다_C. S. 루이스 "네 가지 사랑"

설왕은 2019. 9. 29. 21:25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들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무거워지는 책입니다. C. S. 루이스는 영국의 영문학자입니다. 당연히 영문학자로서는 여러 가지 논문을 썼겠지만 우리는 읽는 루이스의 일반적인 책은 대체로 기독교 관련 서적입니다. 영문학자 루이스가 아닌 기독교인 루이스가 일반 대중을 상대로 쓴 책입니다. 이런 글들은 학문적으로 쓰지 않는 것이 보통이죠. 일반 사람들이 봐야 하니까요. 그런데 "네 가지 사랑"은 다릅니다. 학문적으로 탐구하는 듯한 분위기가 곳곳에 있습니다. 그래서 가볍게 읽으려고 들었는데 꼼꼼하게 따져 들어가고 분석하는 루이스를 따라가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부터 거론하겠습니다. 루이스는 사람들이 왜 개를 키우는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가 요새 궁금해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출산율이 바닥을 알 수 없게 떨어지고 있고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는 이 분위기는 무엇 때문인지 궁금했거든요. 아마도 루이스가 살던 당시의 영국에도 그런 분위기가 어느 정도 있어던 것 같습니다. 다음은 루이스가 한 말입니다. 

 

"필요를 채워 주려 하는데 이를 받아들여야 할 가족이 당신을 거절할 때, 그때 당신은 손쉬운 대체물로서 애완동물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동물을, 일평생 당신을 필요로 하는 존재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 동물이 죽을 때까지 유아적인 단계에 머물게 하고, 죽을 때까지 허약하게 살도록 하며, 동물에게 어울리는 진정한 행복은 다 빼앗은 채 오직 당신만이 베풀 수 있는 잡다한 탐닉거리만 필요로 하며 살게끔 만들 수 있습니다." (96)

 

루이스는 사랑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합니다. 하나는 필요로 하는 사랑, 다른 하나는 선물로 하는 사랑입니다. 루이스에 따르면 어떤 사람은 필요로 하는 사랑을 필요로 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습니다. 예를 들어 어린 자녀는 엄마를 필요로 합니다. 자녀는 엄마를 필요로 하는 사랑을 합니다. 하지만 엄마는 필요로 하는 사랑을 할 수도 있고 선물로 하는 사랑을 할 수도 있습니다. 엄마는 엄마를 필요로 하는 자녀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랑을 할 수도 있습니다. 좀 더 쉽게 풀어서 말하면 엄마는 자녀의 필요를 채워 주면서 삶의 의미를 찾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녀는 자라기 마련입니다. 어느 날 더이상 엄마의 사랑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엄마는 필요를 채워 주려 하는데 이를 거절하는 자녀의 반응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당황스러운 순간입니다. 늘 자신을 필요로 하던 자녀가 자신의 손길을 거부하는 순간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때 대체물로서 애완동물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애완동물은 주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입니다. 주인이 밥을 챙겨 주지 않으면 애완동물은 죽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와 같이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랑을 자신의 삶의 의미로 삼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루이스에 설명에 따르면 이런 상황은 별로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결국 이는 사람들이 사랑에 서투르거나 혹은 애쓰고 노력하는 사랑을 하고 싶지는 않다는 방증이니까요. C. S. 루이스의 견해에 따르면 편한 사랑, 낮은 단계의 사랑을 하고 싶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에 대해 알면 알수록 개를 더 좋아하게 된다'고 말하는--인간 관계의 요구들을 피해 도피처로서 동물을 찾는--사람들은, 자신이 동물을 좋아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되살펴보는 게 좋을 것입니다." (97)

 

이 글에서 주목해야 하는 루이스의 주장이 하나 있습니다. 특별히 사랑을 강조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루이스는 하나님은 사랑이지만 사랑이 하나님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사랑하는 여러 가지 모습 속에 하나님이 계시기도 하고 또한 하나님의 속성과 가장 근접한 우리의 활동이 사랑하는 것이지만 사랑 자체가 신이 되는 것에 대해서 루이스는 경고합니다. 사랑은 생산적일 수도 있고 파괴적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은 누군가를 살릴 수도 있지만 사랑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집어 삼킬 수도 있습니다. 전체주의 국가에서 애국심으로 다른 민족을 대량학살하는 경우가 그 예가 될 수 있겠지요.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서 두 사람만 있으면 다른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그런 경우입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다른 모든 것을 파멸시킬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이렇게 사랑이 신이 되어 버리면 사랑을 신으로 섬기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모든 행동이 사랑으로 합리화될 수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당황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루이스는 사랑을 네 가지로 구분합니다. 애정, 우정, 에로스, 자비, 이렇게 네 가지로 구분합니다. 애정이 가장 낮은 단계의 사랑이고 점점 올라가서 자비가 가장 높은 단계의 사랑입니다. 루이스가 이렇게 네 가지를 모두 설명하는 이유는 서로를 구분하지 않으면 가장 높은 단계의 사랑인 자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루이스는 사랑이 신이 될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서 거듭해서 경고합니다. 애정이나 우정도 위험할 수 있지만 제일 위험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에로스입니다. 에로스가 신이 되는 순간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여서 파괴해 버리는 블랙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루이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다른 사랑이 그렇듯, 에로스도 마침내 진짜 신분이 탄로납니다. 그러나 워낙 힘세고, 달콤하고, 무시무시하고, 위압적인 외양을 가졌는지라 더욱 인상적으로 드러납니다. 실상 그는 혼자 힘만으로는 계속 에로스로 남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는 도움을 받을 필요, 즉 다스림을 필요로 하는 존재입니다. 그 신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으면 죽거나 악마가 됩니다. 죽는다면 오히려 다행입니다. 그러나 죽지 않고 계속 살아 있을 수 있습니다." (195)

 

자비에 관해서 루이스의 설명을 살펴보면 여러 가지 실제적인 문제에 대한 그의 대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상 누구보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는 기독교의 명제에 대해서 루이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지상의 연인 중 누구를 더 사랑하는가 하는 질문은, 우리의 기독교적 의무에 관한 한 두 감정 사이의 강도를 비교하는 질문은 아닙니다. 진짜 질문은 우리가 어느 쪽을 섬기고 선택하고 우선시 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209)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가족을 미워하는 것에 대한 루이스의 설명은 우선 순위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합리적인 대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루이스는 하나님의 사랑은 철저하게 선물의 사랑이라고 주장합니다. "하나님 안에는 채움을 필요로 하는 어떤 욕망이 없으며 다만 주고자 하는 풍부함이 있을 뿐이다."(215)라고 설명합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그리스도인들도 당연히 선물의 사랑을 해야 하고 또한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루이스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초자연적인 필요의 사랑을 선물로 베풀어 주신다고도 주장합니다. 이런 선물을 받은 사람은 "유쾌한 거지"가 되는 것이라고 재밌는 말도 만들어 설명하기도 합니다. (222) 루이스는 그 뒤에도 자비에 대해 여러 가지 설명을 덧붙이는데 생각보다 논리가 복잡해서 시간을 두고 묵상할만 한 주제들이라고 판단됩니다. 

 

사랑은 생각보다 아주 복잡합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사랑에 대해 알고 사랑을 어느 정도 실천할 수 있고 또 무엇이 사랑인지 그렇지 않은지 판단할 수도 있지만 한 발자국 더 들어가면 사랑이라는 문제는 단순하게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금방 드러납니다. 우리가 모두가 실천해야 하고 실천할 수 있지만 제대로 실천하려면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많은 사람이 거기에 빠져 있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설명하고 자신만의 주장을 내세우기도 하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아직도 부족합니다. 루이스도 사랑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여러 가지로 고민한 흔적이 이 책에 드러납니다. 한 번 대충 읽어서는 제대로 알 수 없는 복잡하고도 난해한 부분들이 여기저기 있습니다. 적어도 두세 번 정도는 정독이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가지 사랑의 구분과 그 특성이 좀 복잡해 보인다면 루이스의 두 가지 구분만 기억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스스로가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는지 루이스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으니까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하나는 필요의 사랑, 다른 하나는 선물의 사랑입니다. 필요의 사랑이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악마적 성격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선물의 사랑, 자비를 베푸는 사랑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요.

 

세상에는 좋은 책도 있고 나쁜 책도 있습니다. 좋은 음식이 있고 나쁜 음식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나쁜 음식은 피하면서 나쁜 책에 대한 거부감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라면이 맛이 있지만 몸에 좋지는 않잖아요. 웬만하면 평소에는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끼니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루에 두 끼를 라면으로 먹으면 건강하게 살기 어렵습니다. 세상에는 엄청나게 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재미가 있어도 나의 정신을 좀먹는 나쁜 책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시간이 무한하지도 않고요. 좋은 책을 골라서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루이스의 네 가지 사랑은 아주 재밌는 책은 아니지만 삶과 사랑에 도움이 될만한 유익한 책입니다. 

 

루이스의 "네 가지 사랑"을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랑에 빠져 있는지 점검해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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