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의 여섯 가지 간구 중 마지막 간구이다. 일단, 여기서 시험이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는지가 중요하다. 여기서 시험이라고 번역된 말은 예수가 평소에 쓰던 아람어로는 타지바(tajriba)이며 신약성서에는 헬라어로 페이라스몬(πειρασμόν)이다. 이 말은 시험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유혹이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이 부분을 번역하는 데의 어려움은 페이라스몬(πειρασμόν)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이 단어를 시험이라고 번역해도 이상하고 유혹이라고 번역해도 이상하다. ‘빠지다’로 번역된 단어는 에이세넨케스(εἰσενέγκῃς )로 원래 의미는 ‘인도하다’이다. 페이라스몬의 단어 때문에 에이세넨케스도 인도하다의 의미가 아닌 빠지다로 번역하게 된 것이다. 페이라스몬을 시험으로 번역하면 시험으로 인도하지 말라는 기도가 된다. 이 기도는 마치 우리를 시험하지 말라는 기도로 들릴 수 있다. 세상에 흔하디 흔한 것이 시험이다. 학교 다니는 학생은 수도 없이 시험을 봐야 하고 우리의 능력이나 실력을 검증하거나 혹은 향상시키기 위해서도 시험은 필요하다. 시험은 괴로운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 우리를 시험으로 인도하지 말라는 기도는 시험보기 싫은 학생이 선생님에게 시험을 없애 달라는 요구처럼 들린다. 기본적으로 시험 치루기를 좋아하는 학생은 없지만 그래도 시험을 없애 달라고 공식적으로 요구하는 학생의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페이라스몬을 단순히 시험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좀 이상하다.
문제는 페이라스몬을 유혹이라고 번역할 때 더 심각해진다. 이 단어를 유혹으로 해석하면 “하나님, 우리를 유혹으로 인도하지 마세요”라는 기도가 된다. 하나님을 유혹하는 분으로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 유혹이라는 단어는 하나님과 어울리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를 유혹하는 분이 아니다.
그래서 페이라스몬은 시험으로 번역하게 되었는데 위에 언급한 대로 시험을 안 보게 해달라는 요구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에 동사를 빠지다로 번역한 것 같다. 그래서 결국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로 번역이 되었다. 간결하게 번역하기 위해서 이렇게 번역을 했겠지만, 이 번역은 문장 자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다시 한 번 해석을 해야 한다.
사실 이 기도는 ‘시험을 당할 때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인도해 주십시오’의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세상살이에 시험은 늘 있는 일이다. 시험은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시험을 이용하고 극복해서 자기자신을 돌아보고 성장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험을 당할 때 시험을 잘 이용하고 극복하지 않고 유혹에 빠지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학교 시험에 부정 행위를 하듯이 우리는 시험을 당할 때 정정당당하게 시험에 응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짓을 해서 시험을 통과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주기도문의 이 부분을 ‘시험을 당할 때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인도해 주십시오’라고 이해하면 그 다음 부분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우리를 유혹하는 존재가 누구인지 나타난다. 그것은 ‘악’이고 ‘악한 존재’이다. 여기서 악이 추상적인 의미인지 아니면 구체적으로 사탄을 뜻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우리를 악하게 만드는 악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의 기도는 시편 1편 1절과 비슷하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시편 1편 1절) 주기도문의 여섯 번째 간구는 시험을 당할 때 악인의 꾀를 따르고자 하는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이다.
마태복음 4장 1절에 사탄이 예수를 시험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즈음에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악마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마 4:1, 새번역) 여기에 나온 시험이라는 단어와 주기도문에 나온 시험이 같은 말이다. 한국어로는 시험이라고 번역했지만 영어 성경에서는 주로 유혹(tempt)으로 번역을 하고 있다. “Then Jesus was led up by the Spirit into the wilderness to be tempted by the devil.” (마 4:1, NRSV) 예수가 사탄에게 당했던 시험을 생각해보면 주기도문의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탄은 예수를 시험했고 동시에 자신이 가진 해답을 예수에게 제시했다. 마태복음 4장 1절을 보면 예수를 시험장으로 인도한 분은 성령이었다. 예수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광야로 나갔다고 쓰여 있다. 그리고, 시험 문제를 출제하고 힌트를 준 것은 바로 사탄이었다. 시험을 당할 때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는 예수의 이 사건을 들여다보면 잘 드러난다.
The Temptation in the Wilderness
Briton Riviere (1840–1920)
Guildhall Art Gallery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10501806
'주기도문으로 응답하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기도문] 0_4/4_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_어린아이, 예수, 그리고 니체 (0) | 2019.02.02 |
---|---|
[주기도문] 0_3/4_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_하나님과 삼위일체 (0) | 2019.02.01 |
[주기도문] 0_1/4_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_아빠, 시작이 전부다 (0) | 2019.01.30 |
[주기도문] 2_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0) | 2019.01.06 |
[주기도문] 4_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0) | 2018.1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