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리고시

아프면 한 번 잡솨봐_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설왕은 2019. 10. 24. 00:01

 

 

1955년에 태어난 시인 도종환은 시인으로서 잘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국회의원이면서 문화체육부 장관을 역임한 정치인이기도 합니다.

 

시집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는 시인 도종환의 대표 작품을 모아서 송필용 화백의 그림과 함께 엮어낸 책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는 시는 워낙 유명해서 이 시의 전문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제목은 익숙할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시집을 읽으면서 좀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시인이 언급하고 있는 나무와 꽃, 새 중 제가 아는 것이 별로 없어서였습니다. 예를 들어 "자작나무"라는 시는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자작나무처럼 나도 추운 데서 자랐다

자작나무처럼 나도 맑지만 창백한 모습이었다

자작나무처럼 나도 꽃은 제대로 피우지 못하면서

꿈의 키만 높게 키웠다

(자작나무, 55쪽)

 

자작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서 자라는지 꽃은 어떤 모양인지 모르는 입장에서 이 시를 이해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고로쇠나무, 사라수나무, 쑥국새, 구절초, 붓꽃, 앵두꽃, 자두꽃 등 모르는 게 너무 많네요. 

 

사랑한다는 일은 기쁨과 고통, 아름다움과 시듦, 화해로움과 쓸쓸함 그리고 삶과 죽음까지를 책임지는 일이어야 함을 압니다.

(꽃씨를 거두며, 85쪽)

 

사랑에 대한 도종환 시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시였습니다. 

 

저는 "어떤 마을"이라는 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착하게 사는지 별들이 많이 떴다

...

그 물로 쌀을 씻어 밥 짓는 냄새 나면

굴뚝 가까이 내려오던

밥티처럼 따스한 별들이 뜬 마을을 지난다

(어떤 마을, 97쪽)

 

 

시인이 파악하는 원인과 결과는 일반 사람과 다를 때가 많습니다. 엉뚱할 때도 있지만 비범할 때도 있고 바보 같은 상상을 하기도 하지만 천재처럼 예리할 때도 있습니다. 밤하늘의 별과 사람들의 생활 패턴을 연결 짓는 도종환 시인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욕심 때문에 밤하늘에 별을 스스로 파괴해 버렸는지도 모르죠. 밤하늘의 별이 보이지 않아도 우리의 삶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주가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든 밤하늘의 별을 우리는 불과 몇십 년 만에 우리 눈에 띄지 않도록 가려 버리고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왠지 서글프기도 하고 어리석은 것 같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이 시에 접동새가 나오는데요. 접동새는 또 무슨 새이며 어떤 소리를 내는지 아시는 분 있습니까? )

 

전체적인 시의 느낌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와 비슷합니다. 도종환 시인은 고통을 삶의 바깥으로 내몰지 않고 안으로 끌어들입니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시는 감각적이기도 하지만 사실적, 논리적, 설득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그래서 아마 많은 사람이 도종환 시인의 시를 읽으면 '그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어' 이런 식으로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시집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는 아프고 슬프고 힘들 때 보고 읽으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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