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리고시

사랑하면 바보 같은 시인 된다_하이네 "잔잔한 바닷가에" 외 두 편

설왕은 2019. 11. 5. 16:06

잔잔한 바닷가에

 

잔잔한 바닷가에

밤이 숨어들었다

달빛이 구름 사이에서 새어 내리고

물결 속에선 속삭이는 소리 들린다.

 

"저기 서 있는 저 사람, 바보인지

그렇잖으면 시인인지, 

저렇게 슬픈 듯하면서도 즐거운 둣

또한 즐거운 듯하면서도 슬픈 듯하니."

 

그러나 달이 하늘에서 깔깔거리며

맑은 소리로 말을 건넨다

"사랑을 하면 바보도

시인이 될 수 있단다."

 

 

사랑의 불꽃

 

그대를 사랑하노라, 지금도 사랑하노라

세상이 무너져 내린다 해도

그 뒹구는 파편마다

내 사랑의 불꽃은 타오르리라

 

 

나의 노래는

 

나의 노래는 독(毒)에 젖어 있네

그도 그럴 수밖에

꽃피려는 내 생명에

그대가 바로 독을 풀어 넣었으니.

 

나의 노래는 독에 젖어 있네

그도 그럴 수밖에

내 가슴속에는 뱀들과

사랑하는 이, 바로 그대가 함께 있으니.

 

 

 

'혁명시인' 또는 '자유를 위한 전사'와 같은 이름으로 불리던 하인리히 하이네(독일, 1797~1856)의 시입니다. 하지만 하이네는 서정적인 시도 많이 지었습니다. 위에 쓴 시 모두 서정적인 시로 시인은 사랑의 기쁨, 열정, 아픔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이네가 지는 시 중에 제일 유명한 시는 '로렐라이'와 '노래의 날개 위에"라는 시입니다. 둘 다 노래로 불리고 있는 시입니다. 우리에게도 아주 익숙한 노래입니다. 

 

하이네는 1816년 16세 소녀인 아말리에를 사랑했는데 그녀는 하이네와 연애를 하다가 갑자기 지주의 아들과 결혼해 버렸습니다. 하이네는 한동안 실의에 빠져 있었겠죠. 참고로 하이네는 그의 생애 내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하이네는 1823년 아말리에의 동생 테레제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테레제는 아말리에보다 하이네에게 다정하게 대해 주었지만 결국 그녀도 다른 이와 결혼을 했습니다. 하이네는 1830년 7월에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독일을 떠나 프랑스로 망명했습니다. 1834년 '외제니 미라'라는 여인을 마틸드라고 부르며 열렬히 사랑하였고 1841년 결혼했습니다. 1856년 2월 19일 하이네는 마틸드를 깨우지 말라는 부탁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왜 그의 사랑 시에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존재하며 간절한 열정과 쓰라린 아픔이 함께 발견되는지 그의 인생 여정을 보면 대충 짐작이 갑니다. 20세 전후에 결혼하던 시기에 40세에 결혼을 했고 실연의 아픔을 두 번이나 겪었으니 그가 사랑으로 인해 받은 상처가 얼마나 컸을지 미루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실연을 겪은 이유는 아마 그의 경제적인 사정이 좋지 않았던 것도 이유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그는 평생 가난한 자, 억압받는 자를 위해서 글을 쓰고 싸웠다고 하는데 자신이 버림받은 경험이 크게 작용했을 것도 같습니다. 하이네는 가난한 자를 위해 싸웠지만 아름답고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것을 사랑했다고 합니다. 

 

저는 백석의 시 "바다"를 읽고 하이네의 시를 읽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더군요. 물론 하이네의 시는 원어로 읽을 수 없고 번역된 글로 읽기 때문에 시인의 문장을 날 것 그대로 겪을 수는 없지만 느낌을 비교해볼 수는 있었습니다. 백석의 "바다"를 읽으면 시의 마지막 문장에 쓰인 '쓸쓸함'과 '서러움'이 몰려옵니다. 바다가 가서 바다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움, 쓸쓸함, 서러움에 빠져 버리는 시인의 감정에 함께 빠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하이네의 시는 백석의 시에 비하면 훨씬 가볍습니다. 슬픔이 있기는 한데 명랑한 슬픔이라고 할까요? "잔잔한 바닷가에서"라는 시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사랑의 불꽃'이나 '나의 노래는'은 굳은 결심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마음은 되게 슬픈데 겉으로는 의연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슬픔을 삼키는 듯한 자세를 보여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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