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리고시

신이 바람처럼_릴케 "신이 와서 '나는 존재한다'고 말할 때까지"

설왕은 2019. 11. 6. 14:34

신이 와서 '나는 존재한다'고 말할 때까지

 

신이 와서 '나는 존재한다'고 말할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된다.

그의 힘을 스스로 밝히는 

그런 신은 의미가 없다.

처음부터 너의 내부에서 

신이 바람처럼 불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너의 마음이 달아오르고, 그것을 입 밖에 내지 않을 때

신은 너의 마음속에서 창조를 한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의 초기 시집에 있는 작품입니다. 이 시는 시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릴케의 짧은 설교처럼 보입니다. 이 시는 릴케가 신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려 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릴케는 신이 존재하는지 알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신이 스스로 나타나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를 위해 기도했을 것입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게 기도하던 중에 그는 깨달음을 얻고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립니다. 

 

그의 힘을 스스로 밝히는

그런 신은 의미가 없다.

 

릴케는 자신의 존재를 구분짓는 그런 신은 진짜 신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을 찾는 이에게 그와 구별된 존재로 자신을 드러내는 신은 진짜 신이 아니라는 것이죠. 릴케의 생각에 의하면, 진짜 신은 나와 구별될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그러니까 내가 신을 찾기 전에 혹은 내가 처음 이 세상에 존재한 그때부터 이미 신은 내 안에서 바람처럼 불고 있었다고 릴케는 말합니다. 

 

 

신이 나와 구별되지 않고 처음부터 바람처럼 불고 있었다면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다 내가 하는 일은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 안에 불고 있는 신이 하고 있는 것인지 정확하게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릴케는 말합니다. 

 

너의 마음이 달아오르고, 그것을 입밖에 내지 않을 때 

신은 너의 마음속에서 창조를 한다.

 

릴케는 마음이 뜨거워질 때가 바로 신이 창조하는 순간이라고 주목합니다. 특이한 점은 그것을 입밖에 내지 않을 때 창조한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왜 그러는 걸까요? 말을 하는 순간 신이 창조를 멈추는 것일까요? 아마도 릴케는 침묵의 시간, 기도의 시간을 묘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음이 뜨거워지는 침묵의 기도 시간에 신이 자신의 마음속에서 무엇인가를 창조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말을 하는 순간 신이 창조를 멈춘다기보다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기도하는 시간이 신의 창조가 이루어지는 매우 소중한 시간이라고 진중하게 읊조립니다. 

 

마음의 열정, 새로운 생각, 그리고 내적인 확신이 어디서 나오는지 릴케는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신의 창조입니다.

 

릴케는 그와 구별된 존재로 그의 힘을 스스로 밝히는 신은 의미가 없고 나와 함께 그의 힘을 드러내는 신만이 나에게 의미 있는 신이라고 선언합니다.

 

동의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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