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하나

[철학노트] 정언 명령이란 무엇인가?_칸트의 정언 명령과 가언 명령

설왕은 2019. 11. 22. 15:30

칸트의 정언 명령은 "그대가 하고자 꾀하고 있는 것이 동시에 누구에게나 통용될 수 있도록 행하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장은 정언 명령이 아니라 '정언 명령의 형식 원리'입니다. 이 문장 자체가 정언 명령이 아니라 정언 명령을 만드는 형식 원리라는 말입니다. 칸트가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라는 책에서 정언 명령의 형식 원리와 내용 원리를 나누어서 설명하는데, 위의 문장은 형식 원리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정언 명령은 일단 우리말 번역부터 문제가 있습니다. 정언(定言)은 "어떤 명제나 주장, 판단을 가정이나 조건을 붙이지 않고 단정하여 말함"을 의미합니다. 영어로는 Categorical Imperative로 나와서 한글로 봐도 영어로 봐도 어떤 느낌이 딱 오지 않아서 좀 더 찾아봤습니다. 정언이나 Categorical이나 보통 때 잘 쓰지 않는 단어입니다. 저는 정언 명령을 제외하고 정언이라는 말을 쓰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정언 명령은 "그대가 하고자 꾀하고 있는 것이 동시에 누구에게나 통용될 수 있도록 행하라!"이다라고 설명하면 정언이라는 말뜻 자체를 찾아볼 생각을 안 합니다. 그러나 정언의 뜻을 제대로 알아야 정언 명령의 의미도 알 수 있습니다. 정언 명령을 좀 더 쉽게 말하면 '조건 없이 확실한 명령'으로 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 줄여서 '확실한 명령'으로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칸트의 정언 명령은 그냥 하나의 조언으로 간주하면 안 됩니다. 어떻게 들으면 그냥 속담처럼 들리는데요. 성경에도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황금률이라고 하는데요.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너도 남을 대접하라." 정언 명령과 똑같지는 않지만 의미는 얼추 통하는 바가 있습니다. 

 

정언 명령은 절대주의와 상대주의의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칸트가 시도한 방법입니다. 절대주의는 절대적인 도덕 법칙을 들이대는 것이고요. 상대주의는 절대적으로 옳은 것 따위는 없다는 생각에 기반합니다. 정언 명령을 잘 보면 절대주의도 아니고 상대주의도 아닙니다. 정언 명령은 구체적인 규칙과 같은 내용을 빼 버리고 일종의 프레임만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구체적인 세부 사항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닙니다. 세부 사항은 그때그때 정해집니다. 매우 똑똑한 방식이죠. 그냥 속담처럼 들릴 정도로 평범한 지혜처럼 들리지만 절대주의와 상대주의를 절묘하게 절충하는 칸트의 진술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고자 하는 일은 적어도 그 일을 하는 사람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일 텐데요. 그렇다면 다른 사람도 그 일을 똑같이 해도 옳다고 여겨질 수 그런 일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면 그 일은 정당한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정언 명령을 '다음 사전'에서는 "칸트 철학에서, 행위의 형식, 목적, 결과에는 관계없이 그 자체가 선이기 때문에 무조건 지켜야 할 도덕적 명령"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요. 제가 이해한 정언 명령과는 다른 뜻으로 보입니다. 이 뜻만 보면 절대적인 도덕 법칙을 논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고 칸트는 절대주의와 상대주의에 대한 비판적 입장에서 '정언 명령'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하게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규칙이 가능할지는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살인하지 말라"라는 규칙도 어느 누구에게나 통용될 수 있지는 않습니다. 정당방위나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 "살인하지 말라"라는 통용되기 어렵습니다. 아마도 칸트도 이에 대해 더 생각해 보고 내용을 덧붙였을 것 같은데요. 더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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