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하나

[SK] 키에르케고르_절망은 이득이다

설왕은 2019. 10. 11. 20:58

참고도서

F. 짐머만/이기상 옮김 "실존철학"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은 죄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절망의 반대말은 희망이 아니라 신앙이라고 말했고요. 절망이 죄라는 측면에서는 절망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닐 텐데요. 하지만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에 대해서 아주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지는 않았습니다. 절망은 대체로 나쁜 것이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을 긍정적으로 보는 측면이 있습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의 실존은 인간이 자기 자신과 관계를 맺는 선택이라고 주장했는데요. 절망은 그러한 선택 중에 하나입니다. 내가 나 자신과 관계를 맺을 때 여러 가지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는데 그중 하나가 절망입니다. 절망은 내가 나라는 사실에 대해서 견디지 못하는 마음자세입니다. 그런 면에서 잘못된 관계이죠. 내가 나인데 나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니까요. 내가 나인데 나이기를 거부하면 그다음에 나는 나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일까요? 여기서 키에르케고르는 낙관적인 관점을 취합니다. 내가 나이기를 거부하면서 나는 나와 올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서 노력한다고 보았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닐 것 같은데요. 여하튼 키에르케고르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절망은 어떤 면에서 이득입니다. 왜냐하면 절망을 통해서 인간은 자기 자신과 올바른 관계 맺기를 희망하고 그것을 찾아간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짐머만은 키에르케고르에게 있어서 "절망이란 자기 확립의 시도"라고 지적합니다. (68)

 

키에르케고르에게 절망이란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내가 나 자신을 찾기 위해서, 내가 나와 올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시행 착오를 겪는 것이 당연히 거쳐야 하는 것인데 절망이란 그런 과정인 것이죠. 그러한 시행착오를 거치는 것 없이 자기 자신과 올바른 관계 맺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키에르케고르는 생각합니다. 절망이 죄이지만 동시에 절망은 자기 확립을 위해 필수적으로 건너야 할 다리이죠. 이 다리를 통과하지 않고는 자기 자신을 확립할 수 없습니다. 절망은 죄이기 때문에 짓지 않아야 하지만 동시에 이 죄는 꼭 지어야 하는 죄입니다. 역설적인 주장이네요. 죄를 짓는 것은 항상 옳지 않은 일인데 세상에 꼭 지어야 하는 죄가 있다는 것은 인간은 꼭 죄를 지어야 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는 죄를 지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키에르케고르에 따르면, 죄 없이 신앙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달리 말하면 절망 없이 신앙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실존주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키에르케고르이기 때문에 이런 이해는 일리가 있습니다. 실존주의는 절망, 불안, 무의미함의 기반 위에서 인간을 이해하니까요. 다른 실존주의자들과는 달리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을 극복할 확실한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바로 신앙이죠. 일종의 도약이자 비약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도약과 비약을 위해서는 절망이라는 요소는 필수적입니다. 만약에 인간이 절망하지 않는다면 자기 자신과의 관계 맺음에 있어서 도약이나 비약을 할 생각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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