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하나

질투, 우습게 알면 둘 중에 하나는 죽는다_키르케와 스킬라

설왕은 2019. 12. 10. 11:27

키르케(Kirke)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대표적인 마녀입니다. 고대에서는 보통 마녀를 어떻게 상상했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마녀는 늙고 얼굴이 험상궂고 못된 웃음을 짓는 여자인데요. 화가들은 키르케를 아름다운 모습으로 묘사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존 스트루드위크 John Strudwick "키르케와 스킬라"

위의 그림에서 보이는 오른쪽에 있는 여인이 키르케고 왼쪽에 여인이 스킬라입니다. 얼핏 봐서는 두 사람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분위기도 비슷하고 두 여인 모두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림에서 보이는 평화로운 분위기와는 달리 키케로는 스킬라를 죽이려고 하지요. 정확히 말하면 죽인다기보다는 아름다움을 잃도록 바다에 마법의 독을 풀어 넣고 스킬라가 자연스럽게 빠지게 하였지요.

 

이야기는 간단합니다. 삼각관계였습니다. 글라우코스는 스킬라를 좋아했고 키르케는 글라우코스를 좋아했죠. 그래서 키르케는 스킬라를 미워했고요. 마침 키르케는 마녀였고요. 그래서 키르케는 스킬라를 제거하려고 합니다. 아래는 바다에 독을 풀어 넣는 장면을 그린 그림입니다. 키르케의 진지한 눈빛을 보십시오. 한치의 떨림도 허락하지 않는 안정된 자세한 집중하는 얼굴을 보십시오. 

 

Circe_Invidiosa_-_John_William_Waterhouse

결국 스킬라(Skylla)는 이 물속에 빠져서 몸이 괴물로 변합니다. 처음에는 괴물이 자신의 몸을 감싼 줄로 알고 깜짝 놀라지만 자신의 몸을 만지는 손이 괴물의 손이고 그 손으로 괴물을 만지는 것을 보고 기겁을 합니다. 화가 나서 그런 것인지 놀라서 그런 것인지 우연히 만난 뱃사람들을 붙잡아 먹어치웁니다. 그리고 결국 바위가 되었답니다. 

 

키르케의 끔찍한 음모가 스킬라를 죽였는데요. 이게 그럴 일인가, 생각해 보면 그럴 만한 일도 아닌데요. 질투심으로 사람을 죽이다니요. 제가 볼 때는 글라우코스에게 그다지 매력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데요. 글라우코스는 잘 생겼거나 매력이 있는 사람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세상에 사람도 많고 그리스 로마 신화에 보면 신도 많은데 꼭 그렇게 스킬라를 죽여야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것도 정말 끔찍한 방법이죠. 정확히 말하면 살인은 아니었습니다. 변신을 시킨 것인데 스킬라는 자신의 변신된 모습을 참지 못하고 죽어 버리죠. 스킬라는 가서 직접 마법을 걸지도 않습니다. 물에다 독을 타 놓고 스킬라가 자기 발로 들어오는 것을 기다리죠. 키르케는 이토록 침착하고 주도면밀하게 자신의 질투의 독을 뿜어내고 결국 자기는 아무 일도 안 한 것처럼 우아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진짜 마녀답습니다. 

 

위의 그림에서 워터하우스가 독을 녹색으로 표현한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녹색은 생명의 색입니다.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치유의 색입니다. 자신의 질투를 쏟아내는 것이 키르케의 스트레스를 완화시켜 주고 그 자신을 살게 해 주었을 것입니다. 물론 그 독이 스킬라를 죽였지만요. 그 독을 쏟아내지 않았으면 키르케가 죽었을 수도 있죠. 인터넷에 찾아보니 색감이 다른 그림도 보입니다. 제 눈으로 원작을 보고 싶어요. ^^

위에 보이는 독은 더 영롱해 보입니다. 자신의 독을 쏟아내며 자신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키르케의 진지한 모습과 질투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이 서로 겹쳐 보입니다. 자기는 아무것도 안 한 것처럼 위장하고 질투의 대상을 제거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질투가 자신을 죽일 수 있다면 질투를 유발하는 존재를 제거하든가 아니면 자신의 질투를 제거하든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냥 놔 두었다가는 질투는 둘 중에 하나는 죽일 거예요. 

 

질투를 우습게 알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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