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하나

[철학하나] 데카르트의 이원론

설왕은 2021. 4. 29. 00:31

실체이원론 Substance Dualism & 속성이원론 Property Dualism

현대인들은 데카르트(1596~1650)의 이원론을 낡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이나 과학자들도 데카르트의 이론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냥 오래된 하나의 가설로서 이제는 용도 폐기된 이론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종의 유물론에 기반한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물론은 세상을 구성하는 것은 오직 물질이라는 관점이죠. 극단적인 유물론자들은 데카르트가 말하는 정신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정신은 단지 뇌의 작용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극단적인 유물론자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생각하고 상상하고 감각하는 대부분의 작용이 우리의 뇌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현대인들은 우리가 뇌가 없이도 사유할 수 있다는 대담한 주장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실체이원론substance dualism 또는 급진적 이원론radical dualism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실체이원론은 정신과 육체가 따로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론입니다. 이에 반하여 속성이원론property dualism은 정신과 육체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따로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이론입니다. 현대철학이나 현대신학에서는 정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육체가 없어도 정신이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는 많지 않습니다. 정신은 육체와 함께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여기죠. 유물론이나 유심론과 비교하면 속성이원론도 이원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리적 실체가 아닌 정신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니까요. 하지만 속성이원론은 물질이 있는 곳에 정신이 있고, 반대로 정신이 있는 곳이라면 반드시 물질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러한 이론이 최신 이론이고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구식 이론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물질 없이 정신이 존재할 수 없다는 이론은 데카르트의 이원론보다 더 오래된 이론입니다. 중세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서 주장되었던 질료형상설이 지금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는 이론과 매우 유사합니다. 질료형상설은 세상의 모든 만물은 질료(matter)와 형상(form)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가설입니다. 데카르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질료는 육체를 의미하고 형상은 정신을 의미합니다. 질료형상설은 육체 없이 정신이 존재할 수 없다는 이론입니다.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이러한 질료형상설에 반대하여 육체 없이도 정신이 존재할 수 있고 정신 없이도 육체가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론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현재 우리가 과학적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이론은 데카르트의 이원론보다 더 오래된 이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데카르트의 이론이 더 최신 이론인 것이죠.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더 정확히 말하면 심신이원론입니다. 즉, 정신과 육체는 완전히 서로 다른 것이라는 관점입니다. 좀 더 보편적으로 말하면 세상에는 비물질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이원론에서 단순히 정신과 육체를 구별하는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신과 육체의 구별은 일종의 상식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정신과 육체가 분리된 채로 존재할 수 있느냐의 문제였습니다.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어 존재할 수 있느냐의 문제를 거론하기 전에 데카르트가 주장하는 실체에 대한 개념부터 이해해야 합니다.   

실체란 무엇인가?

데카르트가 말하는 실체는 세상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장작불을 피웠다고 가정해 보죠. 그러면 장작불로 인해서 주변이 따뜻해집니다. 그리고, 만약 밤이라면 장작불의 빛으로 인해서 그 주변이 환해지겠죠. 장작불의 열과 빛은 장작불에 의존합니다. 따라서 장작불에 의존하고 있는 열과 빛은 실체가 아닙니다. 장작불이 실체인지 아닌지 여부는 또 따져봐야 될 문제이지만 장작불의 열과 빛이 실체가 아닌 것은 확실합니다. 

 

데카르트의 견해에 의하면 완전한 실체는 신 이외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만이 다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홀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데카르트는 인간의 육체와 정신도 실체로 언급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정신과 육체는 신과 동등한 완전한 실체가 아닌 피조된 실체로 구분합니다.[2] 데카르트는 정신과 육체는 신에게만 의존할 뿐 다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정신의 존재는 육체에 의존하지 않고 또한 육체의 존재도 정신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데카르트의 피조된 실체로서 인간의 정신과 육체는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고 오직 신에게만 의존한다고 주장합니다. 역시나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정신과 육체가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고 따로따로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데카르트는 실체에는 저마다의 근본적인 속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3] 정신의 근본적 속성은 생각이며, 몸의 근본적 속성은 연장입니다. 길이, 넓이, 깊이 등의 연장 속성이 몸의 본성이며, 생각은 정신의 본성입니다. 몸은 연장 속성 이외에도 운동 속성과 같은 부차적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신은 생각 속성 이외에도 의지, 감각, 상상과 같은 부차적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몸의 속성인 운동은 연장을 갖는 공간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으며, 상상이나 감각, 의지 등의 정신 속성은 생각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습니다. 부차적 속성은 근본적 속성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몸과 정신은 각각의 근본적 속성만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이 말은 연장 속성만으로 몸은 이해될 수 있고, 생각 속성만으로 정신이 이해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에게 인간의 본질은 정신입니다. 그리고 정신의 본성은 생각이죠. 데카르트는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확실한 것이 무엇인지 숙고해 봅니다. 데카르트는 모든 것이 다 거짓이라고 가정해 봅니다. [4] 자신이 보는 것, 자신의 기억, 감각, 몸과 모양, 연장, 운동, 장소도 모두 허구라고 가정해 봅니다. 그렇다면 결국 한 가지 사실만 확실하게 남는데 그것은 바로 아무것도 확실한 것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고 과정 속에서 데카르트는 확실한 것 한 가지를 발견합니다. 데카르트는 말합니다.  

 

“결국, 나는 그것을 발견했다. 생각, 이것만이 나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있다, 나는 존재한다. 이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얼마나 오랫동안 나는 존재하는 것일까? 내가 생각하고 있는 동안이다. 내가 생각하기를 멈춘다면 나는 존재하기를 멈추게 될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나는 생각하는 바로 그것이다.”[5]  

 

 

데카르트에게 있어서 정신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견해는 매우 중요합니다. 인간의 본성인 정신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구성요소이기 때문에 즉 달리 말하면 인간의 근원적 실체이기 때문에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즉, 정신은 몸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데카르트는 생각을 멈춰버린 몸이 존재하는 것처럼 몸이 없는 생각도 존재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나는 하나의 실체이며 실체의 본질 또는 본성은 생각하는 것에 있다. 나라는 실체는 존재하기 위해서 장소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또한 어떤 물질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이러한 ‘나’에 따르면, 나를 나로 존재하게 하는 영혼은 몸과는 완전히 구별되며 몸보다 훨씬 더 쉽게 인식할 수 있다. 설령 몸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이 영혼은 온전히 존재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6] 

 

데카르트의 이원론이 받아들여지면 인간의 정신이 육체를 떠나서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이것을 영혼이라고 부르죠. 영혼이 존재하더라도 그 영혼이 개인의 고유성이 보존될 수 있을지 여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한 영혼이 한 개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적어도 기억이 존재해야 하는데 뇌가 없이 기억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그 부분은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기억이 없더라도 정신이 비물질적인 상태로 존재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뇌가 없는 상태에서 정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정신이 중력이나 자기장처럼 어떤 힘이나 에너지 형태로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낡은 이론이 아닙니다. 이원론은 입증하기도 어렵지만 부정하기도 어려운 이론입니다. 그리고, 우리한테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주는 이론입니다. 

 


[1] Rene Descartes, The Principles of Philosophy, trans John Veitch (Blackmask Online, 2002), 20.
[2] Descartes, 20.
[3] Descartes, 20.
[4] Rene Descartes, Meditations on First Philosophy: With Selections from the Objections and Replies, trans John Cottingham, 2nd ed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7), 20.
[5] Descartes, 22.
[6] Rene Descartes, A Discourse on the Method, trans Ian Maclea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6), 29. 

320x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