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소설

[한국단편소설] 천명관 "숟가락아, 구부러져라"_바보의 이상한 집착, 그리고 무서운 결과

설왕은 2019. 12. 19. 09:00

 

작가의 이름을 보고 왠지 어디서 들어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죠. 어디서 들어봤더라. 시인 천상병 때문에 그런가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았습니다. 이 분이 바로 "고래"라는 유명한 소설의 작가입니다. 아마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읽어봤거나 아니면 적어도 들어보기는 했을 것입니다. 제가 소설을 읽어보려고 인터넷에 "한국 소설 추천"이라고 검색하니 천명관의 고래를 추천하는 분들이 꽤 있었습니다. 고래는 2004년도 작품인데 문학동네 소설상을 받았고 꽤 히트를 친 작품입니다. 저도 도서관에서 빌려 보려고 했는데 대출하기 쉽지 않더군요. 그 말은 아직도 사람들이 즐겨서 보는 소설 중에 하나라는 거죠. 어느 날, 도서관 책장에 꽂혀 있는 "고래"를 발견했는데 겉표지가 너덜너덜했어요. 요점은 천명관 작가는 베스트셀러 작가입니다. 제가 몰랐을 뿐. 

 

이 소설의 제목을 보고 '설마, 유리 겔라 얘기는 아니겠지'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는데 읽어 보니, 맙소사 유리 겔라로 인해 인생이 꼬인 한 아저씨의 이야기였습니다. 유리 겔라는 초능력자입니다. 아마 나이 좀 있는 분들은 다 알고 있는 분이지요. 유리 겔라는 우리나라 TV에 출연해서 눈으로 쳐다보거나 혹은 손가락으로 문질러서 숟가락을 휘는 초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저도 따라 해 봤죠. 안타깝게도 저는 숟가락을 구부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TV를 보면서 그걸 따라 했습니다. 유리 겔라가 당신도 할 수 있다고 격려하면서 따라 하라고 했거든요. 많은 사람이 자신도 숟가락이 구부러지는 경험을 했다고 제보하는 전화를 하고 그랬습니다. 이 소설을 보니 제가 숟가락을 구부리지 못했던 것은 불행이 아니라 다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이 일로 인해서 불행해지거든요. 

 

유리 겔라, 사기꾼이라던데... 사실인가요?

 

"숟가락아, 구부러져라"의 주인공은 유리 겔라처럼 숟가락을 구부릴 수 있는 초능력자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초능력은 혼자 있을 때만 발생해서 주인공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려고 할 때마다 실패해 개망신을 당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맞습니다. 그가 초능력을 보여 주는 데 실패할 때마다 사람들로부터 맞습니다. 분위기를 해쳤다는 이유로요. 고등학교 때 친구들한테 맞고, 대학교 때 자신이 흠모하던 여학생에게 보여주려다가 실패해서 같은 학교 학생들에게 맞고, 군대 가서도 시도했다가 선임들에게 맞고, 직장에 들어가서 신입사원 환영회에서 이목을 끌려고 시도했는데 실패해서 또 맞습니다. 그런데 주인공은 참 줄기차게 숟가락을 구부리려고 노력합니다. 그는 결혼을 하는데요. 사랑하는 사람과 한 것이 아니라 대충 맞는 사람과 결혼을 합니다. 그러나 결혼 후 낳은 딸아이는 그의 아이가 아니라 그의 아내의 전 남자 친구의 아이였죠. 그걸 알고 그는 집을 나와서 노숙자가 됩니다. 노숙자가 되어서 그가 특별히 하는 일이 무엇이 있었겠어요? 없죠. 어느 날 우연히 그가 덮고 자던 신문에서 유리 겔라의 소식을 접합니다. 그는 생각해요.

 

 

만일 그때 친구들 앞에서 보란 듯이 숟가락을 구부려 보였다면 자신의 인생이 달라졌을까? 대학 시절, 짝사랑하던 여자 후배 앞에서 멋지게 숟가락을 구부려 보였다면, 그리고 미야모토 무사시(입사 동기의 별명)가 종이로 나무젓가락을 부러뜨렸을 때 그가 손도 안 대고 가볍게 숟가락을 구부러뜨렸다면! 그랬다면 아마도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지도 않았을 테고, 예쁜 여자 후배와 결혼도 할 수 있었을 테고, 회사에서 무능한 사원으로 낙인이 찍히지도 않았을 테고, 그리고 아내와 딸아이로부터 무시를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유리 겔러처럼 텔레비전에도 출연해 유명인사가 되었을 수도 있었다. 혹은 국가 정보기관에 취직해 염력으로 북한의 핵미사일을 제거하는 일을 수행했을지도 모른다. 구부러진 숟가락을 들여다보면서 그는 자기 인생의 모든 비밀이, 그리고 그 비밀을 푸는 열쇠가 바로 그 숟가락에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트릭스의 한 장면, 유리 겔라 따라 한 건가요?

 

저는 그의 생각에 설득당했어요. 그래서 응원했죠. '그래요 다시 해보세요.' 그는 숟가락을 또 들고 노려 봅니다. 근데 또 그게 돼요. 문제는 여전히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보여주고 싶을 때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이 소설의 마지막에서 그는 그가 사는 내내 줄곧 당했던 무시와 좌절을 모아 분노를 일으켜 사람들 앞에서 숟가락을 구부리는 데 성공합니다. 그래서 해피엔딩으로 끝나느냐? 아닙니다. 반전이 있어요. 그 말고도 다른 초능력자들이 있었어요. 노숙자들 사이에서 말이죠. 자원봉사자가 그 사실을 알려주면서 핀잔을 합니다. 그런 거 하지 말고 여기서 나갈 생각이나 하시라고 말이지요. 

 

이 소설은 한 마디로 웃긴 얘기이면서 허무함도 느껴집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문제를 파악하고 결국 그 문제를 해결합니다. 결국 그의 관점에서 보면 일생일대의 성공을 거둡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숟가락을 구부립니다. 그런데 작가는 마지막에 숟가락을 제대로 구부리지 못한 것이 그가 인생의 쓴맛을 보고 있는 이유가 아니라 그거는 그냥 되게 쓸 데 없는 짓이라고 꾸짖어 버립니다. 숟가락을 구부리지 못해서 불행해진 것이 아니라 숟가락을 구부리는 따위의 쓸데없는 짓을 해서 불행해진 것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합니다. 허무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읽는 내내 '이 주인공은 왜 이렇게 쓸데없는 일에 집착할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무슨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계속 읽었는데 결국 숟가락을 구부리는 일 따위는 바보 같은 일이라고 결론을 내려버려서 그랬습니다.

 

 

이 소설은 바보가 자신이 바보임을 깨닫는 소설입니다. 바보가 바보 같은 행동을 하니까 웃긴데 마지막에 "넌 바보야"라고 결론을 내리니까 허무했습니다. 싱거운 아저씨가 하는 이야기 같아요. 아저씨가 뭔가 웃기게 얘기하니까 듣고 있었는데 다 듣고 나니 결국 아무것도 없고 냉혹한 현실감만 더 도드라지게 드러났습니다. 동심을 파괴하는 전래동화 같은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주인공이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을 실패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분위기를 망쳤다고, 맞는데요. 이런 단순한 반복이 전래동화의 이야기 구조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짧게 평가하면 이 소설은 웃기고 슬픕니다. 생각해 보니 이 표현이 딱 맞네요. 웃픈(웃기고 슬픈) 소설입니다. 저는 이 소설을 읽고 "고래"라는 소설을 읽는 것은 일단 보류했습니다. "고래"는 이 소설과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합니다. 저는 웃긴 거는 좋은데 슬픈 것은 별로입니다. 제가 아저씨라 그런지 싱거운 아저씨 이야기는 길게 듣고 싶지는 않네요.

 

그래도 이 단편소설을 보니 "고래"는 확실히 재미있는 소설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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