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소설

[한국단편소설] 김인숙 "단 하루의 영원한 밤"_진짜 불행과 가짜 불행

설왕은 2020. 1. 7. 17:24

 

"빈집"이라는 김인숙 작가의 단편 소설을 읽고 작가의 글을 더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도서관에서 김인숙 작가의 책을 찾아보니 생각보다 책이 적더군요. 그중에 한 권을 골랐습니다. 제목은 "단 하루의 영원한 밤". 환상적이고 로맨틱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제목이었는데요. "빈집"에서 읽었던 판타지 요소를 이 책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이 책에 끌렸던 것 같습니다. 저는 "빈집"과 비슷한 느낌의 장편 소설을 읽고 싶었습니다만, 이 책은 장편 소설이 아니라 단편을 묶어 놓은 책입니다. 모두 여덟 편의 단편 소설이 이 책 안에 들어 있습니다. 제가 인상 깊게 읽었던 "빈집"도 이 책에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책은 저의 기대와 매우 달랐습니다. 기대와 현실이 달라서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지만 이번에는 후자 쪽에 가까웠습니다. 저는 "빈집"과 비슷한 소설을 원했거든요. 즉 여기에 나온 다른 소설은 같은 작가가 썼지만 "빈집"의 분위기와 사뭇 달랐습니다. "빈집"이 평범하고 초라한 일상 속에서 발견한 보석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소설이라면 여기 나온 다른 대부분의 소설들은 인간의 행복을 끊임없이 공격해서 무너뜨리는 일상 속의 비극적 사건의 나열입니다. "빈집"과 다른 소설의 느낌은 서로 비슷한데 아주 사소한 차이로 인해서 "빈집"은 희망의 빛에 집중하게 되고, 다른 소설들은 인간의 삶을 집어삼키는 어두움을 보게 됩니다. 

 

저는 책을 빌리자마자 읽은 소설이 "단 하루의 영원한 밤"이었습니다. 제목을 준 소설이지요. 별과 같이 반짝일 것 같았던 제목이었는데 아니었습니다. 하룻밤에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서 여러 사람의 인생이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버린 이야기였습니다. 하룻밤의 사건으로 인해서 그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의 인생이 모두 그 밤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으니 제목이 맞기는 맞습니다. 그 단 하룻밤의 사건은 사랑일 수도 있고 실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사랑이건, 아니면 실수이건 간에, 결과는 똑같습니다. 불행이 그들을 덮치는 것이지요. 저는 여기에 나온 인물들에게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했는데요. 아무래도 이들이 무기력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주인공들은 닥치는 불행을 극복하지 못합니다. 사실 지극히 현실적인 묘사인데요. 눈에 보이듯 뻔한 결과입니다. 그래도 주인공들이 정신 승리를 하기도 하잖아요, 어떤 소설이나 영화에서는요. 이 소설은 그러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너무 무기력하게 보였습니다. 

 

대체로 다른 소설의 분위기도 비슷합니다. 개연성이 매우 높고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는 작품들이 대부분입니다. 여기에 나온 글들을 보니 아... 세상에 이렇게 나쁜 일들, 불행한 일들이 마구 일어나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불행이 불행을 덮는구나. 불행한 일이 일어났는데 그 일을 수습할 틈도 없이 더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구나. 결국 인간의 최고 불행인 죽음이 모든 것을 해결하겠구나. 

 

 

 

글은 우울하고 슬픈 이야기로 가득 차 있지만 문장을 읽는 재미는 솔솔 합니다. 어떤 소설은 몇 쪽을 읽어도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기 어려운데 김인숙 작가의 소설은 한 단락만 읽어도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갑니다. 물론 이것은 작가의 장점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 온통 우울하고 슬픈 이야기가 가득 차 있어서 그런 장점이 단점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에 나온 소설 중 하나만 소개하겠습니다. "아주 사소한 히어로의 특별한 쓸쓸함"이라는 소설인데요. 저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었습니다. 이 소설에는 이혼을 두 번한 남자가 산불을 경험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직장 동료 이야기. 이 남자의 두 명의 전처에게는 각각 한 명의 아들이 있고요. 이 아이들은 히어로를 좋아하고 아빠를 만날 때면 대화의 주제는 히어로죠. 두 아들 중 한 명은 십 대의 중학생이고요, 다른 한 명은 대여섯 살 된 어린아이입니다.  

 

"그는 아이와 피자를 먹고 운동화를 사고 영화를 볼 작정이었다. 최근에 본 영화에서 이혼을 한 아버지가 전처와 함께 사는 아들에게 운동화를 사주는 장면을 보고, 왜 모든 이혼한 아버지들은 전처와 사는 아들에게 운동화를 사주는지가 궁금했었다. 심지어 그는 운동화 매장에서 이혼한 회사 동료가 아들을 데리고 온 걸 본 적도 있었다." (209-210)

 

 

저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나도 만약 이혼을 하고 아이와 1년에 한 번 만난다면 이럴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피자를 먹고, 운동화를 사고, 영화를 볼 것 같다고요. 영화는 물론 히어로가 나오는 영화이겠고요. 피자를 먹고 운동화를 사는 것까지는 아들도 크게 꺼려할 것 같지는 않으나 영화를 같이 보는 것은 싫어할 수도 있을 것 같더라고요. 분명 자기가 좋아하는 히어로 영화는 나오자마자 친구들과 보러 가고 싶을 텐데 1년에 한 번 보는 아빠와 간다면 어색하기도 하고 영화의 재미가 반감되기도 할 것 같습니다. 물론 히어로 영화를 아이들만큼 좋아하지 않는 아빠 어른에게도 좋은 일은 아니겠죠. 주인공은 아들에게 선물 대신 오 만원 짜리 지폐를 몇 장 쥐어 줍니다. 그런데 아이는 그 돈을 주머니에 넣지도 않고 손에 든 채로 버스를 기다리죠. 아빠는 아들에게 얼른 주머니에 넣으라고 한 마디 할 것도 같은데 그렇게 못합니다. 일 년에 한 번 보는 아이에게 나쁜 소리, 잔소리를 할 수 없었던 것이죠. 제가 이 소설이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는 제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 있죠.

 

"아빠도 너한테 잔소리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야. 네가 말을 잘 안 들으니까 아빠가 계속 얘기하는 거야. 아빠도 지친다."

 

정말 지치는 일이죠. 하지만 이 소설을 보니까 제가 잔소리를 계속해야 하는 이 불행한 일은 진짜 불행한 일은 아니더라고요. 진짜 불행은 아들에게 잔소리를 할 수 없는 이 소설 속의 주인공이 겪고 있는 것이었죠. 진짜 불행한 일을 보니까 가짜 불행한 일이 보이더라고요. 불행한 일들을 굴비 엮듯이 나열되어 있는 소설을 보고 의외의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이 책은 글은 좋아요. 내용이 좀 더 신나는 내용이면 좋겠습니다. 다른 책도 한 번 찾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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