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소설

[한국단편소설] 윤성희 "유턴지점에 보물지도를 묻다"_불행이 휙휙 지나간다

설왕은 2019. 12. 21. 09:00

 

#윤성희 #유턴지점에 보물지도를 묻다 #설왕은TV

 

시작이 주는 느낌은 좋지 않았습니다. "분만실 밖에서 아버지는 담배 한 갑을 다 피웠다고 한다."가 첫 번째 문장이었어요. 담배 냄새를 싫어하니까 글에서도 누가 담배를 피운다니까 갑자기 거부감이 들었어요. 아니 초조한 것 같은데 왜 담배를 피우고 그러시나 냄새나게, 라는 생각이 저도 모르게 들었습니다. (소설을 읽으니까 글이 소설투가 되는군요. 희한합니다.) 첫 문장은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지만 그래도 한두 단락은 읽어봐야지, 하고 생각하며 글을 읽었습니다.

 

소설의 화자는 아기였습니다. 아기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말을 하고 있더군요. 특이했습니다. 일단 여기서 호감이 +1 되었습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가 자기만의 생각을 하면서 저에게 말을 걸고 있었으니까요. 세상에서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소설이니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일단 읽을만한 가치를 느꼈습니다. 계속 아기로서 말하는 것은 아니에요. 금방 큽니다. 

 

두 번째 단락과 세 번째 단락을 읽으면 이 소설의 가장 주목할만한 특징이 나옵니다. 불행이 휙휙 지나갑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화자는 쌍둥이 자매 중 동생으로 태어나는 아기입니다. 그런데 엄마가 쌍둥이 자매를 낳다가 그만 목숨을 잃고 맙니다. 슬픈 일입니다. 불행한 일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서술하고 있어요.

 

 

아버지는 어머니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이야기했다. 어머니는 당신이 낳은 두 딸을 안아보지 못했다. 장례식이 끝나자, 아버지는 언니를 업고 나를 안은 채 고향으로 향했다. 

 

 

위의 첫 번째 문장을 읽을 때만 해도 어, 아이를 낳고 이제 엄마와 아빠가 대화를 하고 있나 보다,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그다음 문장에 보면 엄마가 아기들을 낳다가 목숨을 잃은 것으로 나옵니다. 불행이 훅 들어왔는데, 화자는 슬퍼하지 않고 그냥 그다음 사건이 이어집니다. 아버지는 언니를 업고 나를 안고 고향으로 갑니다. 이 소설은 이런 식으로 불행한 일이 끊임없이 발생합니다. 주인공의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엄마 없이 살아야 했고, 아빠는 할아버지의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할아버지에게는 아빠 말고도 자식이 많이 있었는데 아빠와 배다른 형제들이었고요. 쌍둥이 자매를 키운 것은 옆집 할머니였는데, 당연히 두 자매는 정상적인 돌봄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두 자매는 방치된 채 알아서 커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불행한 일이 또 발생합니다. 오토바이 사고로 주인공의 언니가 죽습니다. 

 

 

짜장면 배달하던 오토바이가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달려들 때도 언니는 그렇게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나는 혼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이 때도 작가는 슬퍼할 틈을 주지 않습니다. 불행한 일이 발생했고 주인공은 초등학교에 혼자 들어갔지요. 마치 언니가 죽지 않았으면 같이 학교를 다녔을 텐데, 언니가 죽어서 혼자 다니게 되어서 아쉽다는 정도로 말이지요. 이 작품에서는 이렇게 불행한 일이 계속 일어납니다. 할아버지도 죽고, 아버지는 제대로 유산을 상속받지 못하고, 나는 여행사에 취직을 했지만 별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주인공은 불행한 일을 그냥 흘려보냅니다. 담담하게 받아들인다는 표현도 어울리지 않아요. 왜냐하면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거든요. 그냥 흘려보냅니다. 엄마는 죽었고, 언니도 죽었고, 할아버지도 죽었고 아빠는 유산을 못 받았고, 그리고 아빠는 집을 나갔고... 이런 모든 슬프고 불행한 일들에 대해 주인공은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일이 발생했다고 말합니다. 그게 너무 독특했어요. 감정이 없나, 하고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지요. 

 

 

그러나 이 소설의 마지막 단락에서 주인공은 언니와 있었던 일을 추억하며 언니에게 말을 겁니다. 주인공은 1월 1일 새벽 열두 시 삼십일 분에 태어났고 언니는 12월 31일 밤 열한 시 삼십사 분에 태어났거든요. 

 

 

12월 31일 밤, 나는 차를 몰고 영동고속도로를 달렸다. 고속도로는 일출을 보러 가려는 사람들로 밀렸다. 나는 앞차의 브레이크등을 바라보며 운전을 했다. 시계가 열한 시 삼십사 분을 가리켰다. 생일 축하해, 언니.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언니가 몇 년만 더 살았다면 틀림없이 내 스티커가 더 많았을 거야, 그러면 내가 언니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치사해!

 

 

슬픔이 느껴집니다. 감정이 있었어요. 말을 안 했을 뿐이지요. 주인공은 슬픔을 못 느끼는 사람이 아니라 슬픔에 매여 있지 않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슬픈 일은 슬퍼해야 정상입니다. 슬픈 일을 슬퍼하지 못하면 사람이 병이 나지요. 기쁜 일에 기뻐하고 슬픈 일에는 슬퍼해야지요.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슬픔에 빠져 버릴 때인 것 같아요. 살다 보면 기쁜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는데 슬픈 일에 몽땅 마음을 빼앗겨 버리면 살아갈 힘이 없어져 버립니다. 이 소설을 읽으며 그래, 슬퍼할 때는 슬퍼해도 거기에 매이지는 말자,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는 아프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고 이별을 하기도 하고 죽기도 합니다. 슬픈 일 천지입니다. 하지만 기쁜 일도 많아요. 태어나지 않았다면 슬픔조차도 느끼지 못했을 테니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쁜 일이기도 합니다. 

 

 

이 소설에 이렇게 슬픈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주인공은 보물 지도를 가지고 보물을 찾으러 떠납니다. 가출한 고등학교 이학년 여학생이 그 학생의 아버지가 십 년 간 금고에 간직해 두었다는 보물지도를 한 장 보여 주며 같이 찾으러 가자고 제안합니다. 그래서 주인공과 친구 두 명, 그리고 그 고등학생과 함께 보물을 찾으러 떠납니다. 보물을 찾으러 가기 위해 운전도 배우고 차도 사고 땅을 파고 보물을 운반하기 위해 체력 훈련도 합니다. 그 후에 보물을 찾으러 가는데요. 보물을 찾았을까요, 못 찾았을까요? 보물을 찾기 위해 땅을 파고 그 후에 일어나는 일도 눈여겨보세요. 이 소설의 주인공과 그 일당들, 그러니까 친구 Q와 W, 그리고 고등학생의 삶에 대한 자세를 단박에 보여줍니다. 저는 이들의 자세가 마음에 들어요. 

 

저는 독특함만을 무기로 삼는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좋아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읽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읽는 것, 제가 보는 것은 저의 일부가 되는 것이니까 좋은 것을 골라 보고 골라 읽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것은 다 좋은 거야, 라는 태도로 글을 쓰는 작가들이 있어요. 저는 별로입니다. 이 소설은 슬픈 일이 가득하지만 그래도 읽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입니다. 주인공과 친구들의 삶의 자세도 마음에 들어서 이런 친구들과 모여서 수다를 떨면 너무 재밌을 것 같아요. 그리고 윤성희 작가가 쓴 다른 글들도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세상엔 슬픈 일이 많아요. 네,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친구들이 있다면 웃으며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소설 속의 이 친구들을 만나 보세요. 마음이 유쾌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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