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어때?

연금술사에 태클 걸기_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설왕은 2020. 2. 4. 11:20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연금술사에서 제일 유명한 구절입니다. 듣기 좋은 말이지요. 과연 그럴까, 하고 생각할 필요 없이 그냥 믿어도 손해 볼 것 없는 말입니다. 그래서 코엘료의 연금술사는 많은 사람이 읽고 즐거워한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줄거리

연금술사는 산티아고의 보물찾기 이야기입니다. 산티아고가 똑같은 꿈을 꾸자 그 의미에 대해서 궁금해하다가 꿈을 해석해 주는 노인의 말과 우연히 만난 살렘의 왕의 말을 듣고 보물을 찾아 떠납니다. 그 여행은 순탄하지 않은데요. 낯선 곳에서 도둑을 만난 그는 여행 자금을 몽땅 털립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곳에서 일을 해서 고향으로 돌아올 돈을 모읍니다. 시간이 지나서 돈을 모았지만 산티아고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다시 이집트로 떠납니다. 여행 중에 오아시스에서 운명의 여인 파티마를 만납니다. 또한 그곳에서 숨어 살고 있던 연금술사를 알게 됩니다. 로맨스는 잠깐이었고요. 그는 연금술사와 함께 보물을 찾아 떠납니다. 그러나 여행 도중 스파이로 의심을 받고 죽게 될 위기를 겪게 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깨달은 만물의 언어를 통해 위기를 벗어납니다. 피라미드에 도착한 산티아고는 그가 찾던 보물이 피라미드가 아니라 자기가 피라미드 꿈을 꾸었던 교회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죠. 그리고 산티아고는 돌아가서 보물을 찾고 이야기는 끝납니다.

 

다섯 가지 지적 사항

우리나라에서 정말 많이 팔린 책이고 재밌게 읽었다는 사람도 주변에 많았지만, 저는 그렇게 흥미롭게 읽지는 못했습니다. 재미없었다는 말이 아니라 아주 재밌지는 않았다는 말입니다. 재밌지는 않아도 새로운 통찰력을 주는 책도 있는데 이 책은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왜 이 책이 그렇게 재밌지는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 저는 이 책의 절정 부분에서 집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연금술사의 절정 부분이 어디일까요?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를 수도 있지만 저는 산티아고가 첩자로 오인받아서 바람으로 변해야 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금술사가 갑자기 그런 제안을 한 것도 생뚱맞았고 산티아고가 바람으로 변하는 과정이나 대화도 제가 볼 때는 좀 뜬금없었습니다. 철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고려해 볼 수는 있지만 소설의 전개상 자연스럽게 느끼지 못했습니다. 어색하고 낯선 것을 떠나서 그냥 좀 집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심지어는 처음 읽을 때는 산티아고가 바람으로 변했는지 변하지 않았는지 눈치채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물어봤습니다. "산티아고가 바람으로 변했어요?" "응, 변했잖아." 아내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하더군요. 다시 읽어 보니 변한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일부러 코엘료가 암시적으로 서술한 것 같습니다. 바람으로 실제 변했는지 그냥 그렇게 보였는지 애매하게 서술해놨더라고요. 앞뒤 문맥을 봐서는 변한 것이 맞을 듯 합니다. 굳이 변해야 했을까, 부터 시작해서 갑자기 해와 바람과 대화를 하는 산티아고의 능력도 낯설고, 대화 내용도 좀 이상해서 저는 이 부분에서 감명을 받지 못했습니다. 

 

둘째, 현실과 동화과 막 섞여 있어서 어색했습니다. 소설의 대부분은 거의 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산티아고가 똑같은 꿈을 꾸고 점쟁이에게 찾아가고 점쟁이가 묘한 꿈해석을 들려주는 것도 동화 같은 요소도 있지만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같은 꿈을 두 번 꿀 수도 있고요. 그리고 산티아고가 양을 처분하고 여행을 떠나고 도둑을 맞고 그래서 그 도시의 어떤 상점에 취직해서 일하는 것도 매우 리얼리티가 살아 있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나중에 오아시스에서 연금술사를 만나서 나누는 이상한 대화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른 물질을 이용해 금을 만들어야 하는 연금술사에게는 일종의 믿음이 필요할 테니까요. 연금술사는 비상식적으로 보이는 여러 가지 일들도 검토하고 마음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산티아고에 사막에서 전투를 경험하고 첩자로 오인받는 것까지도 그냥 현실이죠. 그런데 절정 부분부터 갑자기 동화가 됩니다. 해와 바람이 말을 하고 산티아고와 대화를 하죠. 산티아고는 바람이 되고요. 피라미드에 도착했는데 보물이 없고, 거기서 만난 사람이 자신의 꿈을 들려 줍니다. 그 꿈이 지시하는 곳은 산티아고가 꿈을 꿨던 교회였습니다. 이게 좀 무리한 설정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산티아고는 돌아와서 교회에서 보물을 발견하죠. 꼭 보물을 발견해야 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동화라면 응당 그래야겠지만 현실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것이 더 현실적인데요. 

 

셋째, 이 책의 기본적인 철학에 반대합니다. 소설을 이렇게 심각하게 읽을 필요는 없지만요. 코엘료가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사상을 기반으로 쓴 소설이라서 이 책의 기본 철학을 한 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먼저 이 책의 철학은 라이프니츠의 모나드 이론(단자론)과 비슷합니다. 라이프니츠는이 세상을 구성하는 단위를 모나드라고 주장합니다. 모나드는 실체가 아니라 정신이고요. 창문이 없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창문이 없다는 것은 다른 모나드와 상호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의 모나드 안에는 우주가 모두 들어 있습니다. 산티아고가 자기 자신을 들여다봄으로써 우주의 이치를 깨닫는 것은 모나드 이론과 일치합니다. 연금술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자아의 신화를 사는 자는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알고 있다네. 꿈을 이루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오직 하나,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일세.” (230)

 

모나드는 창문이 없어서 서로 상호작용을 할 수 없는데 왜 세상은 조화로워 보일까요? 라이프니츠는 세상이 조화로워 보이는 이유는 신의 전능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신이 다 조정하고 있는 것이지요. 저는 라이프니츠의 모나드 이론에 반대합니다. 세상의 구성 요소는 서로 상호 작용을 하고 영향을 미칩니다. 상식적으로 그렇죠. 

 

 

넷째, 자본주의 사회의 평범한 성공 스토리와 매우 유사합니다. 아마 그래서 더 인기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연금술사는 자아의 신화를 찾아서 떠나는 내용이기도 하고요. 다른 한편으로 볼 때는 산티아고의 보물 찾기 성공담입니다. 제가 줄거리를 소개할 때 산티아고의 보물 찾기 이야기라고 한 이유는 결국 그것으로 시작해서 그것으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자아의 신화를 찾는 것보다 보물을 찾는 것이 훨씬 본질적인 목표라는 것이지요. '자아의 신화'라는 말이 참 듣기 좋은 말입니다. '자아의 신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좀 애매합니다. 영어로는 Personal Legend라고 번역했던데, 한국말 번역이 뭔가 더 있어 보입니다. 제 예상은 자아의 신화를 찾으면 더 이상 보물 찾기는 의미가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산티아고가 자아의 신화를 언제 찾았는지 모르겠는데 연금술사는 찾았다고 단정합니다. 연금술사가 산티아고는 바람으로 변할 수 있다고 뻥을 치고는 산티아고가 자신은 바람으로 변할 수 없다고 하자 연금술사가 다시 말하죠. "자아의 신화를 찾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란 없다네." 결국 산티아고는 바람으로 변하는 것도 성공하고 보물 찾기도 성공합니다. 자아의 신화를 찾은 이유는 결국 보물을 찾기 위해서인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아를 찾고 자기 계발을 하는 이유는 결국 부의 성취라는 더 궁극적인 목표를 향하는데요. 매우 비슷한 것 같아요.

 

다섯째, 산티아고가 가지고 있는 삶의 우선 순위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산티아고의 우선 순위는 먼저 자아 찾기, 그 다음은 돈, 마지막은 사랑입니다. 자아를 찾고 자기 계발을 한 다음 그것으로 돈을 벌고 그 다음에 사랑을 찾아 가는 것이지요.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 어느 순간에 완결될 수 있는 것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계속 새로운 환경에 놓이게 되고 새로운 도전에 직면합니다.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요. 그러면서 몰랐던 자기 자신의 모습을 계속 발견해 나가야 하는데요. 산티아고는 자아의 신화를 찾아 버리고 보물도 발견합니다. 너무 개인적이에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면 안 될까요? 개인의 생존이 나도 모르게 인간 삶의 궁극적 목표가 되어 버린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그 모든 것을 완성해야 당신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줄지도 모릅니다. 사랑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고, 꽤 나중에 생각해 볼 문제라는 이 소설의 암시에 딴지를 걸어 봅니다. 

 

그래도 좋기는 하네 

저는 이 책을 여행 가서 저녁에 읽었습니다. 좋더라고요. 혼자서 사막을 걷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중간중간 나오는 묘한 대화나 재밌는 예화 같은 것도 생각할 거리를 주어서 좋았습니다. 사람의 정신을 다른 곳으로 옮겨서 그 곳에서 간접적으로 여러 가지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소설이 가진 능력입니다. 연금술사는 그런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는 소설이지요. 제가 여러 가지 지적을 했지만 시간을 들여서 생각을 해 보면 그렇다는 것이고요. 지친 하루의 일상을 끝내고 산티아고와 함께 사막을 걸어 보는 것은 좋은 일탈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산티아고의 희한한 재주가 샘이 나기도 했고 받아들이기도 어려웠고 그가 가지고 있는 삶의 우선 순위도 동의할 수 없었지만요. 그의 '자아의 신화'는 그의 것이고 저는 또 저의 '자아의 신화'를 찾아야겠지요.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산티아고의 소망이 내 소망과 같을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이가 각자 자신의 '자아의 신화'를 찾는 것에 저는 찬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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