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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코로나 19에 맞서서 우리가 읽어야 하는 책_카뮈의 "페스트"를 읽어야 하는 5가지 이유

설왕은 2020. 2. 17. 09:00

세상에는 좋은 책이 많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쁜 책도 참 많습니다. 책을 고를 때 무엇을 기준으로 고를까요? 사람들은 주로 베스트셀러를 골라 봅니다. 하지만 잘 팔린다고 좋은 책은 아닙니다. 지금처럼 거대한 자본에 의해서 시장이 교란될 수 있는 상황이면 더더군다나 그렇죠. 대충 팔만한 물건을 엄청난 포장을 하고 광고를 때리면 사람들은 그 물건이 좋은 줄 알고 삽니다. 하지만 그런 책이 좋은 책일까요? 잘 팔리는 책이 좋은 책이다, 라는 명제는 완전 거짓은 아니지만 그다지 믿을 만한 명제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노벨상과 같이 유명한 상을 받은 책이 좋은 책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노벨상 역시 누군가의 놀이터이지요. 그 사람들의 기준에서 좋은 책입니다. 우리나라 작가가 쓴 좋은 책도 많이 있는데요. 노벨상 근처에 가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작가가 잘 못 써서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문제는 그 놀이터에 있는 사람들이 한국말을 모른다는 것에 있습니다. 책을 읽을 때 각자 나름대로 어떤 기준을 가지고 읽어야 합니다. 단지 잘 팔리고 유명한 상을 받았다고 그런 책이 꼭 좋은 책은 아닙니다. 자신의 기준의 가지고 책을 읽다 보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점점 더 명확해집니다. 

 

카뮈의 페스트는 좋은 책입니다. 게다가 카뮈는 노벨상까지 받았으니 금상첨화이기는 합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이유로 카뮈의 페스트를 추천합니다.  

 

로댕 "생각하는 사람"

 

첫째, 페스트는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줍니다. 세상에는 정보를 주는 책들로 가득합니다. 최근에는 그런 책들이 참 많이 팔리는 것 같습니다. 얕고도 넓은 지식을 전달해 주려는 책들 말이죠. 저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정보에 집착을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사람들과 대화할 말이 없어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정보가 부족해서 살기 불편해서 그런 걸까요? 뭔가 새로운 것, 신기한 정보, 놀라운 일, 엽기적 사건 같은 것을 찾아서 헤매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신문이나 인터넷 기사의 제목들도 점점 자극적으로 변합니다. 중요한 것을 알려 주기보다는 자극적인 것으로 클릭을 받으려는 기사가 너무 많습니다. 책 제목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에 많이 팔렸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와 같은 그런 자극적인 제목의 책이 판을 칩니다. 그것 역시 읽어 보면 별 내용이 아닙니다. 페스트는 제목이 참 별로입니다. 하지만 페스트는 생각할 거리를 주는 책입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어떨까 생각해 볼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는 책이죠. 그리고 여러 사람의 반응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의 반응에는 공감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의 반응에는 이 사람 왜 이럴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는데요. 그러면서 나는 이 상황에서 어떤 사람이 될까, 하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둘째, 페스트는 아주 시기적절한 책입니다. 특별히 코로나 19 때문에 2020년의 시작을,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서로를 경계하며 거리를 두고 대했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될 것 같은 사람들의 출입을 막고 문제가 될 것 같은 도시나 건물 등은 폐쇄했지요. 지금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카뮈의 페스트는 전염병으로 인해 폐쇄되는 도시 '오랑'의 이야기입니다. 내가 혹은 우리 공동체가 타인에게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소외될 수 있는 상황을 그리고 있습니다. 2020년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 19가 전염병의 끝이 아닙니다. 치사율이 그다지 높지 않은 코로나 19는 마치 지구가 멸망할 것 같은 위기감을 주면서 전 세계가 공포에 떨었고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을 것 같은 사람에 대한 혐오감으로 극도로 상승했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날 텐데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생각해 볼만한 문제입니다. 

 

 

셋째, 카뮈가 가지고 있는 철학이 좋습니다. 카뮈를 실존주의 소설가라고도 부르는데요. 카뮈는 자신이 실존주의 소설가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카뮈는 실존주의자라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진지하게 대답하려고 했다는 측면에서는 실존주의라고 할 수 있고요. 유명한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의 생각에 반대했다는 점에서 실존주의자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볼 때 사르트르나 카뮈나 모두 실존주의 쪽 사람입니다. 카뮈와 사르트르는 초기에는 사이가 좋았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공개적으로 서로를 비판하는 글을 올려서 완전히 갈라섰는데요. 이유는 카뮈는 비폭력적이고 긴 안목을 가지고 세상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에 사르트르는 훨씬 더 열정적이었지요. 사르트르는 화끈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도 더 인기가 있었고요. 저는 사르트르보다는 카뮈를 지지합니다. 제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신학자 중에 한 사람이 본회퍼인데요. 본회퍼는 히틀러를 암살하기 위한 조직에 가입했다가 잡혀서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최근에 본회퍼가 폭력적 성향을 띤 단체의 논리를 대변해 주는 사람으로 이용되는 것을 보면서 저는 그가 틀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냥 쉽게 생각해 보면 히틀러 같은 사람은 빨리 죽여야 인류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서 좋을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방법이 잘못되었던 것 같습니다. 비폭력 평화의 방법이 맞습니다. 상대방이 아무리 사탄이어도 그를 죽여서 정의를 찾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카뮈는 비폭력적 저항의 방법을 지지했던 사람입니다. 

 

 

넷째, 카뮈는 개와 늑대의 시간을 묘사하는 데에 전문가입니다. 개와 늑대의 시간, 해가 져서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하는 시간 멀리서 달려오는 동물이 개인지 늑대인지 구분하기 힘든 시간을 의미합니다. 카뮈는 이 시간을 매우 좋아합니다. 이 시간에 대한 묘사에 관한 한, 카뮈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 사람이 낮에는 열심히 자기 일에 몰두하다가도 해가 지고 밤이 찾아오는 시간이 되면 어디론가 돌아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요. 나는 누군지, 그리고 여기는 어딘지, 그리고 결국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저절로 떠오르는 시간이 바로 황혼의 시간, 영어로는 트와일라이트(twilight), 문학적 표현으로는 개와 늑대의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 쓸쓸함이나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포근함과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카뮈는 후자 쪽인데요. 카뮈의 개와 늑대의 시간에 대한 묘사와 느낌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참 편안해집니다. 아래에 한 단락을 인용합니다. 

 

"방안에는 어둠이 짙어져왔다. 이 변두리 거리가 활기를 띠고, 밖에서는 둔탁하면서도 안도감이 섞인 탄성이 들리면서 가로등에 불이 켜졌다. 리유는 발코니로 나섰다.  코타르도 그의 뒤를 따라 나갔다. 그 주변의 모든 동네들로부터, 우리 시에 저녁이 올 때마다 볼 수 있듯이, 가벼운 미풍이 사람들의 웅성대는 소리와 불고기 냄새와 떠들썩한 젊은이들에게 점령된 거리에 점점 더 부풀어가는 자유의 유쾌하고도 향기로운 소음을 실어 오고 있었다. 어둠, 보이지 않는 선박들의 요란한 아우성, 바다와 흐르는 군중들로부터 올라오고 있는 웅성거리는 소리, 리유가 익히 잘 알고 있으며 전에는 퍽 좋아했던 이 무렵의 시간이 오늘은 그가 알고 있는 그 모든 일들 때문에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 같았다." (89)

 

 

다섯째, 이제는 두꺼운 책도 한 권쯤 읽어 봅시다. 현대인들은 짧은 글에 아주 익숙합니다. SNS에 올리는 짧은 글 정도가 보통 사람들이 읽는 글의 분량입니다. 그리고 조금 더 길면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더 읽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세상일이라는 것이 뭐든지 단편적인 일은 별로 없습니다. 종합적으로 여러 가지 면을 다 봐야 그제야 제대로 보이는 것들이 많습니다. 진득한 면이 좀 있어야 하는데요. 보통 그렇지 않고 휩쓸려 다니는 경향이 있습니다. 글만 그렇게 읽으면 다행일 텐데요. 이렇게 글을 읽는 경향은 삶의 경향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고, 반대로 이렇게 글을 읽으면 삶도 그렇게 바뀌게 될 것입니다. 자세히 알아보고 들어 보고 생각해보려고 하지 않고 자극적인 부분만 재빨리 집고 넘어가려는 독서의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권쯤은 진득하게 읽는 책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매일 읽는 대부분의 글은 아주 짧은 글이라고 하더라도 한 달에 한 권, 아니 두 달에 한 권 정도는 꾸준하게 하루에 몇 쪽씩이라도 읽는 책이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나쁜 책을 그렇게 오랫동안 꾸준히 읽는 것은 별로겠지요. 페스트는 꾸준히 읽으면 오히려 그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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