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어때?

비 오는 날은 숲을 걷기에 가장 좋은 날이다_레이첼 카슨 "자연,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

설왕은 2020. 2. 13. 09:00

<자연,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는 <침묵의 봄>으로 유명한 레이첼 카슨(1907~1964)의 유작입니다. 1962년에 <침묵의 봄>으로 화학 살충제의 위험을 알린 카슨은 1964년에 세상을 떠났는데요. 이 책은 카슨이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에 <우먼즈 홈 컴패니언> Woman's Home Companion이라는 잡지에 연재한 글을 책으로 엮어낸 것입니다. 만약 카슨이 좀 더 오래 살았다면 이 책이 나올 때 자신의 글을 더 다듬고 구성에도 신경을 썼겠지요. 하지만 그런 작업을 하지 못하고 카슨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레이첼 카슨


카슨이 이 글을 연재할 때 원래 제목은 Helping Your Child to Wonder 였습니다. 그대로 번역하면 "당신의 자녀가 경탄할 수 있도록 돕기"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Wonder의 의미는 단순히 놀라는 것이 아니라 감탄하면서 놀라는 것을 의미하죠. 한글 번역본의 제목이 글의 내용을 제대로 대표하고 있지 못합니다. 영어 단행본의 제목은 The Sense of Wonder였는데요. 번역하면 "경탄의 감각"이 되겠네요. 한글 번역본보다는 제목이 낫네요. 저라면 제목을 "자녀와 함께 감탄하라"로 지었을 것 같습니다. 

 


카슨이 글이 연재될 때 가지고 있었던 제목이 이 책의 내용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제목입니다. 카슨이 조카의 아들인 로저 크리스티와 자연을 함께 느끼고 경험한 내용을 쓴 글입니다. 밤바다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 비 오는 날 숲을 걸으며 생각한 것, 이끼를 보면서 상상한 것, 가을이 주는 변화와 그 안에 숨어 있는 작은 생명 찾기 등등 자연 속에서 카슨이 로저와 함께 한 시간들을 자기 스스로 즐겁게 회상하며 쓴 글입니다. 읽기에 부담이 없고 작가의 기분이 전달돼서 읽는 내내 자연의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밤바다의 소금기 머금은 짠 공기 냄새, 비 오는 날 숲에서 나무들이 내뱉는 신선한 향기, 양탄자 같은 이끼들을 건드리면 풍겨 나오는 민물 냄새 등이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깊이 공감하는 단락이 있어서 한 단락 옮겨 봅니다. 

"비 오는 날은 숲을 걷기에 가장 좋은 날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늘 그렇게 생각해왔다. 촉촉하게 젖어 있는 날보다 숲이 생명의 숨결을 세차게 내뿜는 날은 없다. 상록수의 가느다란 잎사귀가 은빛 모자를 쓰는가 하면, 양치류는 열대 숲의 무성함을 닮아가고, 숲의 모든 잎사귀와 풀의 끝자락에 맑은 수정 방울이 맺힌다. 겨자색, 살구색, 진홍빛...... 약간은 생소한 빛깔의 버섯들이 부식토 바깥으로 한껏 고개를 쳐들기도 한다. 숲의 전경이 아닌 배경을 이루던 이끼는, 푸른빛과 은빛에 젖은 신선한 자태로 전경이 된다." (37) 

 


저는 인생이 무엇이냐고 누군가 저에게 묻는다면 어느 날은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인생은 비 오는 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숲길을 걷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그대로 우리의 삶을 느끼고 내 주변에서 숨 쉬고 있는 것들과 교감하며 또한 사랑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요? 카슨이야말로 인생을 제대로 산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카슨은 좋은 친구와 함께 자연을 느꼈습니다. 어른들이야 세상의 때로 인해서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관심도 없이 하루하루 쳇바퀴 돌듯 살아가는 사람이 많지만 아이들은 아니지요. 아이들은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낯설고 새로운 일들이지요. 놀랄만한 일들이 날마다 순간마다 일어나는 곳이 자연입니다. 단지 우리가 인정을 안 하고 감상할 줄 모르고 놀랄 줄 모르는 것이겠지요.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제가 요새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수학 문제 풀기, 영어 문법 설명하기, 시 분석하기 등등입니다. 다른 것들로 가르치기도 하지만 주로 많은 시간을 문제집과 씨름하면서 아이들에게 잘못한 것을 지적합니다. 안타까운 현실이죠. 세상에 대해서, 또 자연을 보면서 함께 놀라고 감탄하고 반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특별히 자녀가 어리다면, 그런 시간들을 많이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세상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지는지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이 결정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인생은 돈을 많이 벌고 못 벌고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세상을 찐하게 느끼면서 자신의 생명을 발산하고 또한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의 부름에 적절하게 응답하느냐에 따라 그 성공 여부가 판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참 좋은 책입니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좋은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중간중간에 들어가 있는 사진들도 독서에 도움이 됩니다. 책을 보다가 눈을 들어도 자연을 보기 힘든 도시인들에게 책 속에 펼쳐져 있는 자연의 경관이 쉼을 주기도 하고 카슨이 보았던 자연의 모습을 짐작해 보는 데 도움을 줍니다. 

 

p.32-33


아이들과 함께 캠핑을 간다거나 혹은 시골 부모님 댁에 가신다면 이 책을 꼭 들고 가십시오. 밤에 이 책을 읽으세요. 그리고 아침에 정말 운이 좋게도 비가 쏟아진다면 우산을 들고 아이와 함께 숲길을 걸으십시오. 그리고 숲이 내뿜는 생명의 숨결을 느껴 보세요. 그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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