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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세계] 온몸으로 투표하라_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시민의 불복종"

설왕은 2021. 3. 31. 12:01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시민의 불복종" (도서출판 이레, 1999)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은 제가 전에도 한 번 서평을 했던 책입니다. 그러나 좋은 책은 여러 번 읽어도 좋아야 진짜 좋은 책입니다. "시민의 불복종"은 좋은 책입니다. 19세기에 나온 책인데요. 아직도 우리 시대를 앞서 가고 있는 책인 것 같습니다. 여전히 많은 생각거리를 주는 책입니다.

 

"시민의 불복종"이 좋은 글인 이유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1817-1862)는 시대를 앞서간 사람이었기 때문이죠. 소로우는 19세기에 태어나고 죽었지만 21세기에 어울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만큼 시대를 앞서간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19세기의 사람들은 소로우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소로우는 출세하는 것보다는 그저 자신만의 인생을 살기를 원했고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덕분에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도 당시에 눈에 띄는 업적을 남기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쓴 글은 지금도 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깨어나게 만들고 있습니다. 

 

"시민의 불복종"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는 가장 좋은 정부는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부라는 표어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며 그것이 하루빨리 조직적으로 실현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9)

 

근대 국가의 출현으로 인해서 국민은 여러 가지 혜택을 입었습니다. 국가는 개인의 생명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권리를 보호해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한 개인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려고 할 때 국가는 공권력을 사용해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조직입니다. 국가에 대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가는 나를 해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켜주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믿고 있죠. 국가 권력에 복종해야 하고 국가가 만든 법을 지켜야 하고 국가가 하는 일에 협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이 없으면 국가도 없지만 반대로 국가가 없다면 국민도 존재하기는 힘드니까 이러한 감정과 행동은 대체로 납득할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소로우는 국가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인 자세에 제동을 겁니다. 국가가 선하다는 전제, 혹은 느낌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죠. 국가는 나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나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시민은 국가가 불의한 요구를 할 때 그 요구에 불복종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중심 내용입니다. 

 

1. "이 불의가 당신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불의를 행하는 하수인이 되라고 요구한다면, 분명히 말하는데 그 법을 어기라." (28)

 

소로우는 미국의 멕시코 전쟁에 대해서 비판을 했습니다. 전쟁이라는 것은 그냥 한 마디로 옳지 않는 일인데요. 미국은 국민의 세금을 거두어서 무기를 만들고 군대를 일으켜 전쟁을 통해 수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소로우는 세금을 내는 행위가 곧 전쟁과 살인을 용인하는 행위라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그는 세금을 내는 것을 거부하다가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아마 19세기에 살았던 사람들이 소로우의 말에 귀 기울여 반응했다면 20세기에 두 번의 세계 대전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세계 대전은 국가 간의 패권 다툼이었고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국민이 국가의 요구와 명령에 복종했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소로우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정말 소수였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다수의 선택이 옳은 것으로 판단되니까요. 소로우의 생각은 그저 별난 생각으로 간주되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소로우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하려고 최대한 노력했습니다. 

 

2. "당신의 온몸으로 투표하라." (33) 

 

Image by Gerd Altmann from Pixabay  

 

그렇다면 국가가 잘못된 결정을 할 때 국가를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요? 쿠데타를 일으키거나 혁명을 일으키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쿠데타나 폭력적 혁명은 누군가가 희생되어야 하는 비극적인 과정을 요구합니다. 세상에 어떤 선한 일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 선한 일을 위해서 다른 무고한 사람이 죽어야 한다면 그 선한 일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다행하게도 우리는 합법적으로 또한 피를 흘리지 않고 국가 권력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힘이 너무 작은 것 같아서 그것이 힘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이지만 말이죠. 그 힘은 바로 투표입니다. 소로우는 그걸 알고 있었습니다. 많은 정치인은 시민들이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게 하고 싶어 하죠. 그래서 투표는 가볍게 던지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던져야 하는 일입니다. 소로우는 한 조각의 종이가 아니라 우리의 영향력 전부를 다 쏟아부어서 투표를 하라고 주장합니다. 생각하는 소수가 전력을 다하면 거대한 악행을 막을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3.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보도록 하자." (41)

 

이 문장에서 소로우의 호연지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소로우는 용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단지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가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분명히 그가 처한 상황은 정의가 쉽게 승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말이죠. 어쨌든 지금도 민주주의 국가의 거의 모든 결정은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다수의 선택은 늘 올바른 선택이라고 존중을 받지만 사실은 다수가 불의한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국가의 잘못된 결정은 국가라는 거대한 존재가 내리는 것이 아니죠. 국가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이 내리는 결정입니다. 그리고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그 구성원들은 자신들이나 자신들의 자손들, 그리고 이웃들에게 해를 끼치는 결정을 내릴 때가 많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수많은 불의와 타협하고 있습니다. 정의로운 선택을 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힘 없이 사라져 가는 것 같은 순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이죠. 정의는 과연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소로우는 장담합니다. 누가 더 강한지는 좀 더 두고 보자고 말이죠. 

 


 

국가의 선택을 아무런 판단 없이 받아들이고 협조하는 것은 소로우의 말을 빌리자면 "그들 스스로가 자신을 나무나 흙이나 돌과 같은 위치"에 놓는 것입니다. (15) 2021년 대한민국에 소로우가 살고 있다면 다른 주장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민주화된 국가에 민주화 세력이 국가 권력을 가지고 있다면 국가의 선택에 협조해야 할 것입니다. 시민이 불복종해야 하는 대상은 자본주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기득권 세력과 그 세력에게 아부하는 언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포털 언론에 도배가 된다고 그 글들을 아무런 판단 없이 받아들이고 협조하는 것은 "자신을 나무나 흙이나 돌과 같은 위치"에 놓는 것입니다. 

 

국가는 영혼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습니다. 영혼이 없는 자들이 권력을 쥐면 국가는 좀비처럼 움직이면서 국가 권력에 도전하는 시민들을 핍박하고 위협을 가합니다. 국가라는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 국가 권력을 위임한 국가의 주인 된 시민을 공격합니다. 영혼이 없으니까 그런 것이겠죠. 영혼이 없는 자들은 대개 자본주의 사회에 충실하게 적응한 자들입니다. 돈벌이만 된다면 누군가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일이더라도 거리낌 없이 저지릅니다. 좀비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영혼이 있는 사람들의 살을 뜯어먹는 것처럼 말이죠. 

 

영혼이 없는 자들이 국가 권력을 장악하면, 국가라는 조직이 거대한 좀비가 되어서 사회에서 가장 약한 사람부터 뜯어먹을 것입니다. 막아야 합니다. 온몸으로 막아야 합니다. 생각하고 행동해야 막을 수 있습니다. 

 

소로우의 말처럼 누가 더 강한지는 좀 더 두고 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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