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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2021-4]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_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우다

설왕은 2021. 4. 19. 10:50

* 분당성화감리교회 청년들과 함께 독서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2021년에 읽은 네 번째 책입니다.

 

 

 

이 책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히말라야 인근에 있는 라다크 지방에 머물면서 그들의 삶의 방식을 관찰하여 서술한 글입니다. 라다크는 고산 지방이어서 기후가 좋지 않고 주변 환경이 척박하여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 어려운 곳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라다크의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삶의 방식을 개척하여 오랫동안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누려 왔습니다. 이 책의 제목인 "오래된 미래"처럼 헬레나는 라다크 사람들의 오래된 생활방식이 우리 미래의 생활방식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독서 모임에서 이 책을 함께 읽기로 했기 때문에 이 책을 빌려서 읽기 시작했는데 별다르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유럽 사람의 눈에 비친 라다크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서술했다면 그 관점에 차이에 따라서 완전히 다르게 서술했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하나는 라다크의 문화와 삶의 방식을 낙후된 것으로 보고 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관점을 취할 수도 있고요. 다른 하나는 그들 문화의 독특성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현대 서구 문명이 가지지 못한 새로운 것을 배우는 관점입니다. 헬레나는 후자의 관점으로 이 책을 썼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냥 좋은 얘기들만 썼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훨씬 흥미롭게 책을 읽었습니다. 이유는 라다크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단순히 과학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해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철학에 기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철학은 그들의 종교에서 비롯된 것이고요. 

 

 

"나는 라다크 사람들 같이 정서적으로 건강하고 안정감 있는 사람들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물론 그들의 그런 모습은 복합적인 요인들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고 그들 특유의 생활방식이나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가장 중요한 요인은 라다크 사람들은 자신이 자기 자신보다 훨씬 더 거대한 그 무엇인가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고, 또 자신은 다른 사람들 그리고 주변의 환경과 분리될 수 없는 연결 속에 존재한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174)

 

 

과학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면 어느 정도 낙후된 삶을 살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물론 라다크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어떤 점에서는 분명히 낙후된 모습이 있습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화석 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수세식 화장실을 비롯한 현대식 상하수도 시설이 없다면 얼마나 불편할지 예상할 수 있습니다. 삶의 불편함은 분명히 있지만 행복도의 측면에서 판단한다면 라다크 사람들은 발달된 서양 선진국보다 훨씬 더 우월한 위치를 점할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저도 헬레나의 주장에 동의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생활방식은 발전이 덜 된 시골의 생활방식이 아니라 그들의 종교에 기반을 두고 있는 생활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신앙과 생각으로 만들어낸 문화라는 점에서 분명히 배울 점이 있습니다. 그들의 기술은 개발이 덜 되었지만 그들의 생각은 서구 사회보다 더 개발되어 있기 때문에 배워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공감이 되는 내용은 글로벌화를 추구하는 현대 사회의 발전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글로벌화 자체는 상호교류가 활발해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에 좋은 의미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글로벌화 자체가 잘못되었다기보다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규모의 확대라는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취하고 있는 경제 정책이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자의 주장은 지역화입니다. 글로벌화를 통해 대규모 생산 체제를 갖추고 가격 경쟁을 통해 싼 가격의 공산품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교역하는 경제 구조는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계속 규모를 키워 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나라의 발전이 GNP로 측정이 된다면 GNP를 계속 늘려나가는 것을 추구하게 되는데 그럴 수는 없습니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개발할 곳은 점점 줄어드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래서 헬레나는 국민총생산지수GNP 대신에 국민총행복지수GNH(Gross National Happiness)를 언급하기도 합니다. 국민총행복지수라는 것이 측정하기 어려운 점도 있고 주관적인 측면이 강해서 정치인들이 악용할 소지가 있기는 하지만 경제 규모로 한 국가나 국민의 역량을 판단하는 기준에서 빨리 벗어나야 지나친 개발과 경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스스로 황폐화시키는 어리석은 행동을 멈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규모 생산과 전 지구적 획일화를 통해서 지역의 특성은 무시되고 표준화된 기준과 유행이 강요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기준이 하나가 되면 순위를 매길 수 있게 되죠. 그러면 누구는 1등이 되고 누구는 꼴등이 됩니다. 글로벌화는 세계의 표준을 만드는 데 일조를 하게 되어 있고 장점도 있지만 심각한 부작용도 발생합니다. 

 

다음과 같은 내용도 통일된 표준을 제시하는 것의 맹점을 지적하고 있는데요. 흥미로운 내용이었습니다. 

 

 

"서양의 이론으로 보면 라다크 사람들의 식사는 절대로 균형 잡힌 것이라 할 수 없다. 과일과 녹색 야채는 너무 적고, 버터와 소금의 섭취는 우리의 기준으로 볼 때 위험할 정도로 높다. 그렇지만 그런 영양 불균형 때문에 서양 사람들 사이에 발생하는 건강 문제들을 라다크에서는 거의 볼 수가 없다. 예를 들어 극단적으로 높은 콜레스테롤 섭취에도 불구하고 심장 질환이 발생하는 일은 없다. 그 이유는 아마 다음의 두 가지인 것 같다. 첫째, 우리가 영양에 대해 알고 있는 옳고 그름의 절대적인 기준이 실제로는 그렇게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차츰 깨닫게 되는 것처럼 운동량이나 스트레스 정도 같은 여러 가지 요인들의 영향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사람의 몸에 어떤 영양분이 어느 정도 필요한지를 결정하는 요인은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지역의 환경 상황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이어서 몸이 필요로 하는 영양소는 그 지역에서 나는 음식들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98-99)

 

이러한 내용도 지역화가 필수적인 이유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인간이 어디에 살든지 상관없이 다 똑같다는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습니다. 표준화할 수 있는 부분도 분명히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요소가 많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되겠죠.

 

물론 저자가 라다크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바라본 측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라다크에서는 일처다부제가 허용이 되었다가 20세기 중반쯤에 금지되었다고 하는데요. 일처다부제의 가정에 대해서도 헬레나는 긍정적으로 서술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남편이 두 명인 한 가정의 사례를 소개합니다. 두 남편과 한 아내를 인터뷰한 내용도 짧게 다루고 있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일처다부제는 일부일처제에 비해 인구 억제의 효과도 있다는 점을 말하면서 일처다부제가 라다크에 적절한 제도라는 식으로 설명합니다. 참고로 라다크는 자원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인구가 늘어나면 문제가 됩니다. 저는 이 내용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들었습니다. 정말 아무 문제가 없었다면 일처다부제가 법으로 금지되는 일도 없었을 것 같고요. 이 문제는 단순히 인구의 증감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이 이러한 가족 형태를 용납할 수 있느냐입니다. 부부간의 내밀한 이야기를 외부인에게 솔직하게 말했을 리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자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일처다부제는 미개하다가 아니라 라다크에 적합한 측면이 있다,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책이 매력적인 또 다른 이유는 라다크가 서구 문명과 교류하면서 생기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라다크 사람들이 행복과 만족을 느끼기 때문에 발전된 서구 문명을 알게 되었을 때 흔들림 없이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죠. 실제로 라다크에 서구 문명이 들어왔을 때 그들은 엄청난 혼란을 겪었습니다. 그 혼란이 지금도 끝이 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서양 문화가 겉으로 보기에 화려하고 라다크에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모습이나 그들의 부유함으로 인해서 라다크의 전통적인 삶의 방식은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라다크 사람들은 서양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문명에 비해서 자신들의 모습이 초라하다고 느끼고 자신이 가진 것들을 부끄러워하고 버리려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그것에 대해서 솔직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젊은 사람들이 서구 문명에 더 매력을 느끼고 있고 그로 인해 오랫동안 유지되었던 라다크의 균형 잡힌 삶의 방식을 흔들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헬레나는 라다크를 무분별하게 개발하거나 그들의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꾸려는 시도에 대해서 반대하는 운동을 펼치면서 라다크의 전통문화를 지키는 데 자신의 힘을 보태고 있다고 밝힙니다. 서구 문명의 폐해를 알고 있고 또한 그로 인해 유럽의 나라들이 추구하는 방향에 대해서 알고 있는 헬레나는 라다크가 오히려 희망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들의 삶의 방식이 망가지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오래된 미래"는 좋은 책입니다.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 어떻게 부유한 삶을 살 것인가, 미래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서 성공할 것인가를 설명하고 예측하는 책들은 넘쳐납니다. 하지만 시야를 더 넓혀서 전 지구적인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이대로 살다가 우리 모두 망합니다. 지구는 엉망이 되는데 몇몇 사람, 몇몇 나라만이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판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물론 어려운 일입니다. 5층짜리 아파트를 헐고 30층을 만들고, 30층을 헐고 50층을 만들고, 50층을 헐고 100층을 만드는 식의 발전이 언제까지 가능하겠습니까? 성장, 팽창, 확장의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할 때입니다. "오래된 미래"는 그 삶의 방식에 대해서 라다크라는 구체적인 사례들 들어 설명한 고마운 책입니다. 


재밌는 내용이 있어서 한 가지 더 소개합니다. 

 

"라다크 사람들 사이에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자연계 순환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진다. 죽음도 마찬가지다. 내가 처음 사귀었던 라다크 친구들을 오랜만에 다시 만났을 때 그들은 '지난번보다 더 나이 들어 보여요'라는 식으로 말할 것이다. 그것은 겨울이 지나 봄이 왔다는 등의 자연현상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현상 그 자체를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것이다." (249)

 

 

저는 이 내용을 읽으면서 우리들이 자주 하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나이 든 사람들이 오랜만에 볼 때 하는 말이 있죠.

 

"전에 보던 그대로야.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

 

친한 친구들이 이런 말을 하면 저는 "똑같기는... 많이 늙었지"라고 웃으며 말하고는 하는데요. 우리는 나이 드는 것을 싫어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러는 걸까요? 사람이라면 보통 다 그럴 것 같은데요. 라다크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에 좀 놀랐습니다. 


* 인용

"만족이라는 것은 자신이 삶의 흐름에 있어 한 부분이 된다는 것을 느끼고 이해하면서 그것과 함께 여유롭게 흘러가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긴 여행을 떠나려는 순간 비가 쏟아진다 해도 굳이 참담한 느낌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당신이 그런 것을 좋아하지는 않겠지만 라다크 사람들은 그런 경우 '굳이 불행하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지요'라는 반응을 보이리라는 것은 알아둘 필요가 있다." (178-179)

 

"라다크에는 '호랑이의 줄무늬는 밖에 있지만 사람의 줄무늬는 안에 있다'는 말이 있어요." (153)

 

"타시는 팔종조사 나가르주나의 말을 인용했다. '존재를 믿는 사람은 소만큼이나 어리석다. 하지만 비존재를 믿는 사람은 그보다 더 어리석다. 사물이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 둘 다인 것도 아니고 둘 다 아닌 것도 아니다.'" (157)

 

"그간 내가 라다크의 전통사회에서 직접 경험했던 그들의 그 놀라운 생동감과 행복감은 삶의 기쁨이라는 것이 바로 자신들이 살고 있는 그곳에 있고 또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이웃' 안에 있다는 믿음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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