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의 노트

[신학노트] 이신론이란 무엇인가?

설왕은 2021. 2. 23. 10:47

이신론은 약한 신론이다

이신론은 약한 신론입니다. 반면에 기존에 있던 신론은 강한 신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발음만 들어도 알 수 있습니다. 기존의 신론은 theism이고 이신론은 deism입니다. 뜻은 똑같습니다. 신에 대한 이론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theism은 발음이 세고 deism은 발음이 약하죠. theism은 사사건건 모든 일에 개입하는 신을 주장하는 이론이고 deism은 신이 있는 것은 인정하되 신이 모든 일에 개입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하는 이론이죠. 

 

맥그래스에 따르면 이신론이라는 단어는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일부 영국의 사상가들이 가졌던 신론을 일컬을 때 사용했던 단어라고 합니다.(맥그래스, "과학과 종교", 48.) 18세기가 이성의 시대였기 때문에 우리말로 번역할 때 '이신론'이라고 번역했던 것 같습니다. 적절한 번역인 것 같기도 하지만 차라리 그냥 '약한 신론'이라고 하면 바로 이해가 될 것도 같은데요. 18세기 사상가들이 가지고 있었던 신론은 기존의 신론과는 달랐습니다. 아무래도 이성의 시대가 도래하니 기존의 신론에서 수정되어야 할 부분이 많았을 테고요. 그런데 신이 아예 없는 것 같지는 않으니까 기존 신론을 약화시켜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theism을 약화시킨 deism이 발생한 것이지요. 

 

유신론과 이신론

theism이 유신론이고 deism이 이신론입니다. Theism은 신을 뜻하는 그리스어 theos를 이용해서 만든 단어이고 deism은 신을 뜻하는 라틴어 deus를 이용해서 만든 단어입니다. 영어의 원어적 의미로는 theism과 deism은 뜻이 완전히 같습니다. 하지만 theism과 deism은 다릅니다. 우리말로는 좀 더 구별이 됩니다. 유신론과 이신론이라고 부르니까요. 유신론(有神論)은 신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이론이고, 이신론(理神論)은 계시나 기적 등을 부인하는 합리주의적 종교관입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그렇습니다. 이신론은 아무래도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유행했던 deism을 번역한 말이기 때문에 그 당시의 합리주의적인 세계관을 반영하여 이성을 뜻하는 '이'자를 붙여서 '이신론'이고 부르게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유신론과 이신론의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는 두 이론의 차이점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이신론도 유신론과 마찬가지로 신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거든요. 그런 면에서는 두 이론이 차이가 없습니다. 18세기가 계몽주의 시대이고 그 시대에 유행했던 신론을 이신론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모르면 이신론은 합리적인 혹은 이성적인 하나님 이론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그렇게 이해한다면 유신론은 비이성적인 하나님 이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유신론에서 말하는 하나님도 당연히 이성적인 하나님일 테고요. 그런 면에서 유신론과 이신론은 참 설명이 많이 필요한 단어입니다. 

 

이신론은 신이 이 세상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이론으로 신이 세상을 만들기는 했지만 개입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라고 설명하기도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18세기에도 신에 대한 많은 담론이 있었을 텐데요. 신의 초자연적인 개입을 받아들이는 이론도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이론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신론이 이해하는 신은 세상을 만들어 놓고 멀리 떨어져 있는 신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방점은 "세상을 만들어 놓고"가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는"에 찍어야 합니다. 

Image by Stefan Keller from Pixabay  

우주라는 거대한 기계

이신론은 고전 물리학의 신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정도로 이신론과 고전 물리학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이신론은 고전 물리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뉴턴(1642-1727)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17세기에 시작해서 19세기에 이르기까지 많은 지식인이 이신론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887년에 불가지론자agnostic라고 밝혀졌던 다윈도 그 이전에는 유신론자이면서 이신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유신론자이지만 세상에 직접 개입하는 신이 아니라 법칙으로 세상을 만든 신을 믿었다는 점에서 이신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윈은 일종의 약한 신론을 믿고 있었는데 그가 주장했던 진화론은 이신론적 약한 신론과도 서로 부합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윈은 불가지론으로 돌아선 것이죠. 

 

이신론은 우주를 거대한 기계로 보는 종교관이자 신관입니다. 우주를 거대한 기계라고 볼 수 있었던 이유는 뉴턴의 역할이 컸습니다.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과 운동 법칙을 발견했고 뉴턴의 이론에 따라서 별의 움직임을 비롯한 사물의 운동을 설명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뉴턴의 운동 법칙의 발견으로 인해서 서로 반대되는 두 부류가 생겨났습니다. 한 부류는 특정한 법칙이 항상 잘 작동하는 것을 알게 되자 우주의 설계자가 있어서 어떤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에 따라서 세상을 창조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뉴턴의 이론으로 인해서 이 세상을 설계한 창조자의 능력에 더욱 감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뉴턴의 운동 법칙이 발표된 초창기에는 이런 움직임이 강했습니다. 뉴턴으로 인해서 종교적 믿음이나 체험이 없어도 신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자연신학이 구축될 수 있기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들은 세상이 신의 직접적인 영향력 없이 그저 스스로 작동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이나 계절이 변하는 것은 신의 능력이 아니라 운동 법칙에 의해서 행성과 항성이 움직여서 발생하는 일인 것이죠. 신이 간섭하거나 감독하지 않아도 세상은 알아서 잘 돌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이 필요없어진 것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죄를 많이 지으면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공전이 멈추는 일은 발생할까요?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천체의 움직임은 신과는 별상관없이 운동법칙에 따라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죠. 

 

Image by Arek Socha from Pixabay  

위대한 기계에서 경이로운 기계로 (19세기의 신론)

뉴턴의 영향으로 인해 이신론적으로 신을 이해했던 사람들은 다윈의 진화론으로 인해 그마저도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창조의 시간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들어 놓고 멀리 떨어져 있던 신을 주장했는데 진화론은 이런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사실 진화론이 무너뜨린 것은 "태초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들어 놓았다"는 주장입니다. 왜냐하면 종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또한 새로 생성되고 멸종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신론은 세상을 위대한 기계 Great Machine로 이해하고 이를 고안한 존재를 신이라고 주장하는 이론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Great Machine이 아니라는 것을 진화론이 증명했습니다. 위대한 기계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뭔가 새로운 것이 튀어나오는 마법과 같은 경이로운 기계 Wonderful Machine입니다. 세상이 위대한 기계라고 이해될 때는 신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이로운 기계는 19세기의 신관으로는 담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진화론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현대신학도 진화론과 완벽하게 서로 조화를 이루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19세기의 신관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진화론이 이신론을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는 했지만 19세기의 세상에 대한 이해는 기계론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법칙에 의해서 움직이는 세상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죠. 심지어는 신도 이 법칙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신도 이 거대한 기계, 위대한 기계 혹은 경이로운 기계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기계가 돌아가는 법칙이나 원리를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죠. 

 

19세기에는 인간도 그다지 자유롭지 못했지만 인간은 신에게도 자유를 주지 못했습니다. 20세기에 발견된 혹은 강조된 자유 없이는 기계론적 세계관을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서야 인간은 개인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조직 속의 한 사람이 아닌 독립된 한 사람인 개인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개인에게 자유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20세기에 실존주의가 발전하면서 알게 되었죠. 19세기까지는 인간은 자유를 얻지 못했고 자유로운 신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신론은 우주라는 기계를 만든 더 위대한 기계 같은 신을 말했던 것이고요. 

 

그러나 지금은 21세기입니다. 19세기의 이신론적 신관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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