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의 노트

[신학노트] 과학과 종교의 관계_독립에서 시작하여 대화로

설왕은 2021. 2. 21. 20:16

전투를 원하는 자들을 조심하라

과학의 종교의 관계는 적대적 관계가 되어선 안됩니다. 대립 관계, 갈등 관계, 전투 관계가 되어선 안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과 종교의 갈등을 부추기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됩니다.

 

그런 극단적인 사람들의 의도는 공동체의 유익이 아닙니다. 과학이 종교를 핍박하든지 혹은 그 반대로 종교가 과학을 핍박해서 그 결과로 둘 중에 하나가 괴멸의 상태에 이르렀다고 가정을 해 봅시다. 그렇다면 공동체 혹은 인류의 번영이 이루어질까요? 아닙니다. 세대 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세력, 남성과 여성 사이의 갈등을 부추기는 세력, 지역 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세력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십시오. 그래서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고 어느 한 편이 다른 쪽을 완전히 짓밟아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갈등을 조장하는 세력이 극우이든, 극좌이든 우리는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주장이 자극적이기 때문에 흥미롭게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우리 공동체의 번영을 가지고 오는 주장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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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과학의 갈등을 조장하는 사람들은 진리를 수호하는 사람들도 아닙니다. 자신의 말이 진리이기 때문에 상대편 진영의 주장을 말살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진리의 속성에 위배됩니다. 진리에 대해 설명하려면 철학적인 부분이 필요한데요. 이것 또한 한참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일단 넘어가죠. 종교도 과학도 많은 부분 인간의 경험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학이 진리이기 때문에 종교를 없애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인간의 경험에 근거를 두고 있는 어떤 진리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과학과 종교는 각각이 관심을 두고 있는 인간의 경험이 있습니다. 어느 한 쪽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리처드 도킨스나 다니엘 데넷, 스티븐 제이 굴드와 같은 사람들의 극단적인 주장은 배제하는 것이 좋습니다. 

 

개척자 이안 바버, 그리고 독립의 의미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 대표적인 학자는 이안 바버(1923-2013)입니다. 그가 1988년 발표한 '과학과 종교의 관계 설명 방식'은 지금도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분류입니다. 바버는 네 가지 유형을 제시했습니다. 갈등, 독립, 대화, 그리고 통합 이렇게 네 가지 유형을 제시했고 바버는 대화 유형을 가장 바람직한 관계 모델로 제시했습니다. 사실 이 네 가지 유형을 벗어나서 관계 모델을 제시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존 호트는 통합 대신에 지지 모델을 제시하기도 했는데요. 호트는 신학자이기 때문에 과학이 종교를 지지하는 쪽보다는 종교가 과학을 지지하는 쪽을 더 중점적으로 설명했습니다. 

 

갈등이나 통합 모델은 불가능합니다. 갈등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극단적으로 한 쪽의 주장을 배제하자는 것인데 옳지 않고요. 통합 모델도 불가능합니다. 이것은 마치 팔과 다리를 통합하자는 것과 비슷한 말입니다. 팔과 다리의 역할이 서로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팔과 다리를 통합하자는 것이 말이 되지 않지요. 과학과 종교는 영역, 관점, 혹은 관심이 서로 다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과학과 종교만 있다고 가정해 보죠. 수학에서 사용하는 평면 좌표를 사용해서 세상을 기술하는 방법은 평면 좌표에서 x, y를 지정하면 된다고 해 보죠. 어떤 사물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x, y)를 지정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3, 4) , (0, 7) 이런 식으로 표시해야 어떤 점의 정확한 위치를 표시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x좌표만 표시한다면 그 점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습니다. 과학과 종교의 관계도 이런 것입니다. 과학이 x좌표를 찍는 것이라면 종교는 y좌표를 찍는 것입니다. 두 개를 통합할 수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서로 독립되어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완전한 독립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독립되어 있고 구분될 수 있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독립의 관점을 제시한 대표적인 학자는 랑돈 길키(1919-2004)가 있습니다. 길키에 따르면 과학은 '어떻게'라는 질문에 집중하는 반면에 종교는 '왜'라는 질문에 집중을 합니다. 길키는 과학은 사실과 지식에, 그리고 종교는 의미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말합니다. 길키는 신학자로서 그런 주장을 했는데요. 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진화론을 통해서 종교를 신나게 공격하기도 한 사람인데요. Rocks of Ages라는 책에서는 NOMA(Non-Overlapping Magisteria) 즉 겹치지 않는 교도권이라는 말로 종교와 과학이 서로 다른 영역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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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과학과 종교는 영역이 다르다고 봐야 합니다. 또 다른 말로 설명해 보면요. 코끼리를 설명할 때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코끼리의 모습을 설명할 수 있죠. 귀가 크고 코가 길고 피부는 회색이고 다리는 네 개가 있고 꼬리가 길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코끼리는 몸무게가 6톤 정도 됩니다. 코끼리의 외형을 설명하는 것과 몸무게를 말하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두 개를 통합할 수가 없습니다.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비롯한 운동 법칙을 발견했을 당시에 신학자들은 뉴턴의 발견을 반가워했습니다. 우주가 특정한 원리에 의해서 돌아간다는 것은 설계 원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 말은 설계자가 있다는 것을 암시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일정한 법칙에 의해서 우주가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그 법칙을 부여한 설계자가 꼭 존재한다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뉴턴의 운동 법칙과 신의 존재는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지 않습니다. 운동 법칙을 통해서 신을 말할 수도 있고 완전히 반대의 주장을 할 수도 있습니다. 17세기 말에는 설계자 이론을 받아들였지만 그 이후에는 운동 법칙으로 인해서 돌아가는 우주는 오히려 신의 부재를 증명하는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과학과 종교가 분리되어 있다는 것은 이런 것을 의미합니다. 과학 이론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종교적 주장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완전한 독립은 아니다

그런데 종교과 과학의 관계가 완전히 독립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수학적인 모델로 과학을 x좌표, 종교를 y좌표라고 생각한다면 완전히 독립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x좌표를 1이라고 해 보죠. (1, 1)이 될 수도 있고 (1,100)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시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입해 보면 어떤 과학적 사실에 대해서 의미를 파악하는 것을 종교라고 할 수 있는데요. 과학과 종교가 완전히 독립되어 있다면 예를 들어 어떤 과학적 사실을 통해서 신이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아니면 반대로 신이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완전히 독립되어 있다면 하나의 사실에 대한 의미 파악을 얼마든지 다르게 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 정도로 독립적이지는 않습니다. 마치 코끼리의 크기와 몸무게의 관계와 같습니다. 코끼리가 키가 2미터이고 부피가 어느 정도라는 것을 알게 되면 몸무게가 얼토당토 하지 않게 나오면 안 되는 것이죠. 코끼리의 덩치를 고려해 볼 때 코끼리의 몸무게는 몇십 킬로그램 정도일 수가 없습니다. 코끼리의 덩치와 몸무게는 어느 정도는 독립되어 있지만 완전히 독립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과학과 종교의 관계도 그와 비슷합니다. 

 

다시 수학의 좌표 모델로 설명해 보면 과학이라는 x좌표가 정해지면 그에 따른 종교라는 y좌표는 범위가 다소 제한이 됩니다. 갈등론자들이나 통합론자들은 이 범위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정해 버리려고 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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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과학과 종교의 관계는 서로 다른 영역에 있는 것으로 구분될 수 있고 독립적인 것에서 생각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추어서는 안 되고 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것은 세상을 더 폭넓게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코끼리에 대한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코끼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어느 한 영역을 제거해 버리는 것은 어떤 것에 대한 이해도를 줄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연결되어 있는 부분도 꽤 있어서 서로 대화를 추구하다 보면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참고도서

이안 바버, 「과학이 종교를 만날 때」

알리스터 맥그래스, 과학과 종교

스티븐 제이 굴드, Rocks of 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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