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어때?

[책] 19세기적 논쟁은 이제 그만_알리스터 맥그래스 "과학과 종교"

설왕은 2021. 2. 26. 16:27

이 책의 활용법에 보면 맥그래스는 "이 책은 교과서가 아닌 입문서이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맥그래스의 "과학과 종교"를 다 읽고 나서 나는 맥그래스가 이 책에 대한 설명을 잘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책은 입문서이지만 교과서로 쓰기에 적합한 책입니다. 즉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살펴보는 데 이 책의 내용을 그대로 따라 가도 기초적인 내용을 잘 섭렵할 수 있습니다. 

 

책은 크게 네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1부, 역사: 3대 기념비적 논쟁

2부, 과학과 종교: 일반적인 주제

3부, 과학과 종교: 현시대의 논쟁

4부, 과학과 종교 분야의 사례 연구

 

특별히 도움이 되었던 부분은 1부와 2부였습니다. 1부에서는 기념비적 논쟁 세 가지를 다루면서 과학과 종교가 어떤 식으로 상호작용을 했는지 역사를 살피고 있습니다.

 

1부 3장, 논쟁 1: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 그리고 태양계

1부 4장, 논쟁 2: 뉴턴과 기계적 우주와 이신론

1부 5장, 논쟁 3: 다윈과 인류의 생물학적 기원 

 

Image by TheOtherKev from Pixabay  

 

이와 같이 맥그래스는 코페르니쿠스, 뉴턴, 그리고 다윈을 다루고 있는데요. 역사적으로 볼 때 과학과 종교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했거나 혹은 서로 가장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받았던 과학 이론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주제를 봐도 알겠지만 세 가지 기념비적 논쟁은 19세기까지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리고 3부에서 과학과 종교의 현시대 논쟁을 다루고 있는데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논쟁은 19세기 논쟁의 연장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을 할 수 있죠. 과학은 점점 더 발전하고, 과학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데요. 20세기에 이루었던 눈부신 과학의 발전, 특별히 양자역학은 왜 논쟁이 되지 않았을까, 하고 궁금할 수 있습니다. 사실 과학과 종교 사이의 논쟁 혹은 갈등은 아직도 19세기라는 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제가 간단하게 언급을 하면요. 양자역학은 비상식적인 내용이라서 잘 이해가 안 됩니다. 물론 진화론도 직관적으로 바로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진화론은 기계론적 물리관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를 잘 듣고 있으면 그럴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양자역학의 세계, 미시 세계는 아닙니다. 양자 세계는 인간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입니다. 그러니까 잘 이해가 안 되고, 이해를 한다고 하더라도 이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해석하기가 어렵습니다. 과학과 종교 사이의 대화가 19세기 주제에 머물러 있는 이유가 있는 것이죠. 

 

Image by Gerd Altmann from Pixabay  

 

2부 과학과 종교: 일반적인 주제에서는 여러 가지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많이 있었습니다. 6장 "과학과 종교의 상호작용 모델"에서 과학과 종교가 어떤 관계일 수 있는지 일반적인 분류를 소개하고 있는데요. 과학과 종교를 함께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 내용을 잘 정리해 주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재밌게 읽었던 부분은 9장 "과학과 종교에서의 검증과 반증"이었습니다. 맥그래스는 9장에서 검증주의(verificationism)와 반증주의(falsificationism)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실증주의, 그리고 논리 실증주의는 이런 검증주의에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실증주의의 주장에 따르면 종교는 검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무의미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검증이 불가능한 것이 많습니다. 맥그래스가 몇 가지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과거에 지나간 사건에 대한 진술도 검증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1988년 2월 26일 오후 2시 20분에 성산대교 아래로 한강유람선이 지나갔다"라는 진술을 보면요. 이 말이 사실이더라도 검증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눈으로 볼 수 없거나 직접적인 측량이 불가능한 양자 세계의 경우에도 여러 가지 사실로부터 추론을 해야 하죠. 그렇다면 반증주의는 문제가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과학은 논리적이고 종교는 비논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과학에도 중대한 논리적인 허점이 있습니다. 그 논리적인 허점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요? 과학도 어쩔 수 없이 가정과 추론과 전제가 있어야 가능한 학문입니다. 9장은 그런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저는 자세히 읽지는 않았지만 4부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4부에서 맥그래스는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주목하고 연구한 학자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학자들에 대해서 일목요연하게 그들의 삶과 연구를 정리해 주고 있기 때문에 이 분야를 더 깊이 파고 들어갈 때 누구의 연구를 살펴봐야 할지 판단 기준을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 

 

 

도킨스와 같은 환원주의적 유물론자들의 활약이 적었다면 어땠을까요? 저는 과학과 종교가 서로 으르렁대고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는 소수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문제는 그런 소수의 주장을 큰소리로 떠들어대는 사람들이나 언론이 더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과학과 종교가 사이좋게 지내는 것보다 서로 싸우는 것이 구경하는 데는 훨씬 재미있겠지요. 환원론적 유물론자 덕분에 과학과 종교 사이의 대화는 19세기에 머물러 있습니다. 지금이 21세기인데 종교와 과학 간의 대화는 20세기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종교인들이 과학의 혜택을 누리고 살고 있고, 과학자 중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왜 과학과 종교 간의 대화는 200년 전 사고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것일까요? 그래서 저는 도킨스와 같은 환원주의적 유물론자들과 종교가 싸우는 듯한 인상을 주는 지금의 상황이 굉장히 소모적이고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과학과 종교가 서로 각을 세우는 싸움 대신에 양자역학을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블랙홀과 상대성 이론을 통해 인간과 삶의 의미를 한번 고민해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맥그래스의 "과학과 종교"는 과학과 종교가 서로 유익을 줄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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