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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힘을 포기하고 평화를 회복하라_존 하워드 요더 “예수의 정치학”

설왕은 2021. 2. 18. 11:06

존 하워드 요더(1927-1997)는 예수의 정치학을 통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에 대답하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의 삶과 가르침은 우리에게 윤리적 모범을 제시하고 있는가?

둘째, 예수가 윤리적 내용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면 그것은 정치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인가 , 아니면 그저 개인적인 영역에만 관련된 것인가?

셋째, 예수가 우리에게 보여준 윤리적 삶의 방법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요더의 답변은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요더는 이 책에서 예수의 삶과 가르침이 우리에게 분명한 윤리적 모범을 제시한다고 주장합니다.

 

지금 보면 요더의 주장이 새로울 것이 없는 것 같지만 "예수의 정치학"이 출간되었던 1972년의 상황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입니다. 20세가 후반에 일어나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기독교 윤리에 대한 주목은 요더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예수의 삶과 가르침이 윤리적인 모범과 규범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의 산상수훈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윤리적 삶에 대한 강력한 도전을 준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성 프란체스코의 탁발 수도회는 그리스도가 그들의 삶의 윤리적 모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더는 역사적으로 볼 때 예수의 삶과 가르침이 윤리적 모범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지적합니다. 예를 들어 산상수훈에 나타난 윤리적 규범은 너무 급진적이어서 보통 사람들이 따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지요. (p.27) 또한 예수의 삶의 구체적인 모습을 따르고자 하는 경향은 초대 교회에서조차 추구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그래서 주류 윤리학계는 예수의 삶과 가르침은 특수한 상황과 그러한 상황 인식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현대의 교인들에게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요더는 1장 메시아적 윤리의 가능성을 통해 이러한 입장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리고 2장 도래하는 하나님 나라와 3장 희년의 의미에서 누가복음을 통해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재조명하며 예수가 현시대에 주는 윤리적 규범의 가능성을 모색합니다. 이와 같이 요더는 예수의 삶과 가르침이 윤리적 모범과 규범이 될 수 있다고 그 근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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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질문에 대하여 요더는 예수가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윤리는 정치적인 윤리라고 답변하고 있습니다. 

 

요더가 강조하는 예수의 윤리적 규범은 한 마디로 정치적인 윤리규범입니다. 즉 예수의 삶과 가르침과 죽음은 지극히 정치적인 성격을 띤 것으로 규명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요더는 11믿음으로 말미암은 은혜의 칭의에서 종교 개혁의 슬로건이 된 이신칭의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요더에 의하면, “의롭다 함을 얻는다”(justified)는 내적인 변혁이 아닙니다. 나쁜 사람이 착한 사람으로 그 본성이 변화되거나 혹은 그렇다고 간주되는 것이 아닙니다. 요더는 "이신칭의"는 타인과 화평을 이루는 것, 다시 말해서 정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p.378) 6, 7, 8장에 언급된 바와 같이 예수의 삶과 가르침은 제의적, 실존적이 아니라 정치적 성격을 갖는다고 요더는 주장합니다. 이와 같이 요더는 예수의 삶과 가르침뿐만 아니라 신약성서의 바울의 가르침 또한 정치적인 성격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질문에 대한 요더의 대답입니다. 

 

요더가 주장하는 기독교적 윤리적 삶의 방식은 명료합니다. 예수가 보여 준 윤리적 삶의 방식은 비폭력적 저항인 기독교 평화주의입니다. 요더가 5비폭력적 저항의 가능성에서 언급하듯이 비폭력적 저항은 성공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유대인의 역사를 통해서 근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비폭력 저항을 보여주기 전에도 유대인들은 집단적 비폭력 저항을 통해 로마 군대의 압제를 두 번이나 물리쳤습니다. (p.167) 그리고 요더는 9혁명적 복종을 통해 복종이 혁명적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을 주목합니다. 요더는 10모든 영혼은 복종하라: 로마서 13장과 국가의 권위를 통해 요더는 국가의 모든 권위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선한 것이라는 주장에는 반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가에 물리적으로 저항하라고 권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국가의 권위가 분명히 잘못된 것일 때에라도 복종하는 것이 기독교적인 윤리규범이라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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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더는 12장 “어린양의 전쟁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삶의 방식을 예수에게서 찾아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예수의 방법은 복종과 고난과 죽음이었습니다. 요더는 비폭력적 저항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 방법을 취하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방법은 힘으로 약자를 압도하는 방법이 아니었고 또한 성공을 보장하는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요더는 힘의 획득을 변해 변화와 승리를 추구하는 정치적 윤리적 움직임에 반대합니다.

 

비폭력적 저항은 계산적 행동이 아니라 불확실한 결론에 자신을 내 맡기는 것입니다. 요더는 그것이 바로 예수가 현대의 우리에게 제시하는 윤리적인 규범이라고 주장합니다.

 

국가의 권력이 불의한 것이었지만 예수는 끝까지 복종함으로 고난을 당했고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부활함으로써 결국 승리에 이르렀습니다. 요더는 예수가 우리에게 보여준 정치적 윤리 규범이란 힘의 획득을 통한 정의의 구현이 아니라 힘의 포기를 통한 평화도저히 화해할 수 없고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평안을 유지하는 것의 회복이라고 주장합니다. 

 

힘의 포기를 통한 평화의 회복, 이것이 바로 "예수의 정치학"이 제안하는 정치적 윤리 규범입니다. 


요더는 이렇게 멋진 평화주의적 정치 윤리를 제시했지만 스스로는 많은 학생과 직원을 대상으로 성적인 폭력을 가했습니다. 그는 이것은 성적 실험이라고 말했지만 실제로 이는 성폭력이었습니다. 2015년에 이르러서야 요더의 이런 만행이 널리 알려지고 그가 속한 교단 신학교 총장이 공식적으로 사과까지 했습니다. 요더의 주장이 그의 삶의 전반에 드러났다면 그의 주장이 더 빛을 발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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