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리고시

[JP] 라이너 마리아 릴케_예수의 지옥길

설왕은 2021. 6. 8. 18:33

Jesus dies on the cross  by Giandomenico Tiepolo

예수의 지옥길

 

수난을 뒤로하고 마침내 그의 존재는 고통의 끔찍한

육체에서 벗어났다. 위에 있는 하늘. 그를 풀어놓았다.

그리고 어두움은 홀로 두려워했으며

박쥐들을 창백한 빛의 세계로

내몰았다,--저녁에는 그 파닥거리는 소리 안에서

얼음 같은 고통에 부딪칠까 두려움이

아직도 흔들린다. 불안한 어두운 공기는 

시체에 용기를 잃었으며; 그리고 깨어난

강한 밤짐승들은 둔중함과 불쾌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자유로워진 그의 정신은 아마 자연의 풍경 속에서 행동하지 않고 그냥

                                                           자리만 잡고 있고자 했다.

왜냐하면 그의 수난의 사건은 아직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사물의 밤이 현존함은 안정되어 보였다

그리고 슬픈 공간처럼 그는 그 위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상처의 갈증에 메마른 대지,

그러나 대지는 갈라졌으며, 나락에서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문을 몸소 겪어본 그는 지옥에서 울려오는 비명을 들었다.

그의 완성된 고난의 의식을 욕망하며

그의 (끝없는) 괴로움의 끝 저편

지옥의 고통을 두려워하는 그들의 고통이 예감하는 비명

그리고 정신인 그는 기운을 다 쏟아붓고

아주 무겁게 이쪽으로 

추락했다. 풀잎을 뜯는 그림자의 낯선 시선과 관찰 사이로 서둘러

걸어갔다. 아담에게 눈길을 던지며 바삐.

서둘러 내려가며, 사라졌다, 거친 나락으로 떨어져 내려갔다.

보였다가 갑자기 (더 높이 더 높이) 거품이 이는 비명 한가운데

그의 인내심의 길고 긴 탑 위로 그는 나섰다: 숨도 쉬지 않고,

서 있었다. 난간 없이, 고통의 주인.

                                                       침묵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완성시(1906~1926) 프랑스어로 쓴 시" 70-71p)


릴케가 쓴 "예수의 지옥길"이라는 시입니다. 대담한 제목입니다. 예수의 천국길도 아니고 예수의 지옥길이라니. 개신교 사도신경에는 빠져 있지만 가톨릭에서 쓰는 사도신경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기까지 사흘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저승에 갔다는 표현은 죽은 자의 세계에 갔다는 말일 수도 있고 지옥에 갔다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과연 지옥이 정말 있는 것인지, 지옥이 있고 예수님이 지옥에 가셨다면 왜 가셨는지 끝없는 토론을 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예수는 죽었고 그 죽음의 순간을 릴케는 묘사하고 있습니다. "위에 있는 하늘, 그를 풀어놓았다"라는 구절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육체에 가해진 고통을 오롯이 받아냈던 예수는 죽음과 동시에 그 고통에서 벗어납니다. 위에 있는 하늘은 신을 의미할 것 같은데요. 하나님이 그를 풀어놓았다고 릴케는 쓰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오히려 세상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고요. 

 

마지막 부분에서 그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합니다.

 

숨도 쉬지 않고,

서 있었다. 난간 없이, 고통의 주인.

침묵했다.

 

숨을 쉬어서 유지해야 할 육체가 없는 예수는 숨을 쉬지 않습니다. 난간도 필요 없습니다. 죽을 몸이 없거든요. 고통을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낸 고통의 주인 예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숨 막히는 순간입니다. 

 

 

JP: Jesus Po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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