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리고시

[시]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_박용재_"나는 살고 있는가?"

설왕은 2022. 4. 22. 12:43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저 향기로운 꽃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저 아름다운 목소리의 새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숲을 온통 싱그러움으로 만드는 나무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을 사랑한 만큼 산다
외로움에 젖은 낮달을 사랑한 만큼 산다
밤하늘의 별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홀로 저문 길을 아스라이 걸어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나그네를 사랑한 만큼 산다
예기치 않은 운명에 몸부림치는 생애를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그 무언가를 사랑한 부피와 넓이와 깊이만큼 산다
그만큼이 인생이다

 

 

저는 요새 하도 딱딱한 글을 많이 읽어서 감성이 메말라가고 더불어서 삶 자체도 마르고 있는 것 같아서 말랑말랑한 시를 읽고 싶었습니다. 박용재 시인의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는 아주 말랑말랑한 시는 아닙니다. 가르침인 것도 같고 자기 고백인 것도 같은 시입니다. 이 시에 대해서 전체적으로는 좋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좀 삐딱한 사람이라 그런지 "사랑한 만큼 산다"라는 말이 자꾸 나오니까 반감이 들기도 하고 의문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사랑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것 아닌가, 하고 말이죠. 그냥 숨을 들이쉬고 또 내쉬면 사는 것 아닌가, 심장이 뛰면 살고 있는 것 아니가, 데카르트가 말한 바와 같이 생각하고 있으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죠. 그러나 그런 것들로 어떻게 삶의 기준을 삼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의 기준을 하나만 정하라고 한다면 이 뻔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사랑이요.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는 말은 반박하고 싶지만 반박할 수 없는 구절입니다. 

 

이 시에 등장하는 소재들이 있습니다. 사랑할 만한 존재들이 연달아 등장하는데 제게 눈여겨본 등장 배우는 '낮달'이었습니다. 저는 처음 듣는 단어였습니다. 사전에 있는 말인지 궁금해서 찾아보았습니다. 있더군요. 그렇다면 그 뜻은 보나 마나입니다. 낮에 보이는 달이죠. 그것을 낮달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저도 가끔 낮에 뜨는 달을 보면서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이름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낮달을 볼 때마다 저는 '달이 이렇게 낮에도 뜨는구나. 하늘에 해도 있고 달도 있으니까 좋네'라고 생각했는데 박용재 시인은 낮달을 볼 때 외로움에 젖어 있다고 느꼈다니까 왜 그랬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별이 없어서 그렇게 느꼈을까요? 저는 낮달을 볼 때 달이 할 일 없이 마실 나온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밤에는 달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잖아요. 잔잔한 빛으로 세상을 밝혀 주고 있죠. 달이 없으면 얼마나 캄캄하겠습니까? 그런데 낮에는 할 일 없이 나와 있는 것 같아요. 여유로워 보여서 좋습니다. 하얀 구름이랑 어울려 보이기도 합니다. 

 

이 시가 저에게 주는 마지막 여운은 하나의 질문입니다.

 

"나는 살고 있는가?"

 

잘 살고 못 살고를 떠나서 그냥 나는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주네요. 만약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면 그 다음 질문은 이런 것이겠죠.

 

"나는 얼마만큼 살고 있는가?"

 

하늘땅 만큼 살고 있는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먼지만큼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하늘땅에 사는 사람으로서 그 정도 크기로 살아가야 할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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