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소설

[한국단편소설] 김정한 "모래톱 이야기"_욕심이냐 목숨이냐

설왕은 2021. 12. 13. 21:36

김정한의 "모래톱 이야기"는 1966년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서술한 소설로 삶의 터전을 위협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소설로서 재미의 요소보다는 시대의 급격한 변화에 따른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데 더 중점을 둔 작품입니다. 마치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고 있는 기사와 같은 소설입니다. 김정한 작가는 한동안 소설을 쓰지 않다가 오랜만에 "모래톱 이야기"라는 소설을 썼는데, 아마도 사회의 부조리한 상황을 꼭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이 작품을 쓴 것이 아닌지 추측해 봅니다. 

 

* 줄거리

여기서 지은이인 나는 K중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비가 많이 오는 날 지각생들의 변명을 듣던 중 건우라는 학생이 조마이섬에서 나룻배로 통학하는 학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조마이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조마이섬은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상관없이 소유주가 자꾸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건우의 집을 찾아가서 조마이섬이 1905년 을사 보호 조약을 계기로 조선 토지 사업이 시작되면서 소유주가 바뀌더니 광복 이후에도 힘있는 사람들에게 소유주가 넘어갔다는 것을 섬 사람들로부터 들었습니다. 여름 막바지에 큰 홍수가 나서 나는 조마이섬으로 찾아 나섰습니다. 가는 도중에 건우 할아버지가 둑을 무너뜨려 섬을 지키려다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새로운 학기가 되었지만 건우는 학교에 나타나지 않고 조마이섬은 군대가 땅을 고르게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돕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질문을 던집니다. 대대손손 조마이섬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있는데, 힘있는 사람들이 문서를 만들어 조마이섬을 뺏으려는 이 상황이 옳은가라고 말이죠. 조마이섬은 누가 권력을 쥐느냐에 따라서 섬에 사는 사람들과 관계없이 그 소유권이 바뀝니다. 조마이섬을 소유하려는 사람들에게 사실 조마이섬은 그리 중요한 곳도 아닙니다. 그냥 하나의 재산일 뿐이죠. 그런데 조마이섬 사람들에게 조마이섬은 삶의 자리이고 선조들의 삶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역사입니다. 그들의 삶과 선조들의 역사를 무시하고 권력자들은 그들의 욕심으로 섬을 뺏으려고 합니다. 그것을 막으려던 건우 할아버지는 의도치 않게 살인을 저질렀지만, 그것은 섬을 구하고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정당방위였으며 그 과정에서 일어난 사고였습니다. 미필적 고의였죠. 건우 할아버지의 항변은 지당한 것이었습니다. 

 

"이 개 같은 놈들아, 사람의 목숨이 중하냐, 네 놈들의 욕심이 중하냐?"

 

김정한 작가는 건우 할아버지를 변호해 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건우 할아버지뿐만이 아니라 조마이섬 사람들 모두 분노와 원한을 품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평화롭게 살고 있던 자신들의 땅에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나타나 그 땅의 소유권을 주장한다면 누구라고 기가 찰 일일 것입니다. 

 

그의 꺽꺽한 목소리에는, 건우가 지각을 하고 꾸중을 듣던 날 "나릿배 통학생임더." 하던 때의, 그 무엇인가를 저주하듯 한 감정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그렇게라도 함으로써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을 잊어버리기나 하려는 듯이, 어찌 들으면 남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그 딱딱한 소리가, 실은 어떤 깊은 분노의 표출을 억제하는 그의 마음의 울부짖음 같기도 했다.

 

 

Image by klimentgrozdanoski from Pixabay  

모르는 사람이 건우 할아버지의 살인 사건을 뉴스로 들었다면 어떤 거칠고 무식한 할아버지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사람을 밀쳐서 물에 빠뜨려 죽였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김정한 작가는 정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소상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지요. 이야기는 이런 면에서 중요합니다. 이야기는, 겉으로 보기와는 다른, 실상을 알려주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김정한의 "모래톱 이야기"는 시대의 아픔을 담고 있고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고 힘있는 자와 대항해서 정당한 권리를 지키고자 하는 약자들의 행동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좋은 소설이죠. 하지만 읽기는 쉽지 않습니다. 소설 속에서 말하는 사람이 섬마을 사람들과 대화하는 내용이 많은데, 사투리를 그대로 적고 있어서 현장감은 있지만 시간을 들여서 독해를 해야 합니다. 

 

첫 문장

"이십 년이 넘도록 내처 붓을 꺾어 오던 내가 새삼 이런 글을 끼적거리게 된 건 별안간 무슨 기발한 생각이 떠올라서가 아니다."

 

끝 문장

"황폐한 모래톱, 조마이섬을 군대가 정지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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