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단편소설

[세계단편소설] 헨리크 시엔키에비치 "등대지기"_그를 깨운 것은?

설왕은 2022. 6. 30. 09:00

등대지기가 되면 어떨까요? 등대지기가 등대를 켜고 끄는 일만 한다면 일 자체는 참 쉬운 일입니다. 정말 별일이 아니죠. 시간에 맞추어서 등대를 켜고 시간이 되면 등대를 끄기만 하면 될 일입니다. 만약 이 정도 일을 하고 적당한 급여를 받는다면 이것보다 더 쉬운 일을 찾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 종일 홀로 지내야 한다면 어떨까요? 일의 강도를 생각하면, 그리고 바닷가에 갔던 좋은 기억을 떠올려 본다면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직업일 수도 있습니다. 조용하게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고, 거대한 바다 한가운데에서 세상과 나를 잊고 내가 자연의 일부가 된 듯 아무 생각 없이 지내는 경험이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해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아무에게나 기회가 오는 것은 아니고 지금도 등대지기라는 직업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에게까지 기회가 올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간접 경험밖에 없습니다.

 

헨리크 시엔키에비치의 "등대지기"는 등대지기가 되어 보고 싶은 사람에게 어렴풋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시엔키에비치는 폴란드 작가로 1905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시엔키에비치는 제1차 세계 대전 때 적십자 운동에 헌신하던 중 세상을 떠났습니다. 시엔키에비치는 글만 쓰는 사람이 아니라 실천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등대지기"는 등대지기가 된 한 노인이 일을 하다가 쫓겨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성실하게 등대지기의 역할을 하던 주인공 스카빈스키는 자신의 모국어인 폴란드어로 되어 있는 시집을 선물 받습니다. 거기에 있는 시를 읽으며 고국에 대한 향수에 젖어 있다가 등대의 불을 켜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스카빈스키는 파면을 당합니다. 파면을 당한 사실에 대해 스카빈스키는 슬퍼하지 않습니다. 직장을 잃어버렸지만 더 큰 것을 얻었다고 생각한 것이겠죠. 이 소설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노인은 며칠 사이에 더 늙고 수척해졌다. 그러나 그의 눈만큼은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새로 시작하는 방랑의 길에서도 노인은 모국어로 된 시집을 꼭 껴안고 있었다. 마치 큰 보물 덩어리라도 되는 듯, 그는 때때로 손으로 만져 보며 그것의 존재를 확인했다. 행여 잃어버릴까 봐 두려운 듯이, 다시는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겠다는 듯이...

 

너무 바람직한 결말이어서 재미없다고 느낄 수도 있는 결말입니다. 요새 소설이나 영화는 극적인 반전을 꾀하면서 마지막 한쪽 또는 마지막 한 장면에서 모든 것을 다 뒤집어버리기도 합니다. 이런 희망에 찬 뻔한 결말은 오히려 김 빠지는 결말이기도 합니다. 이미 예상된 결말이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결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엔키에비치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소설가로서 직업을 그만두고 적십자에서 사람들을 돕는 일을 했다는 것을 기억하면 이 소설의 결말은 이상 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좋은 결말이 아닌 작가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굳은 결심을 보여 준 결말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스카빈스키는 원래 애국심이 투철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등대지기로서 살면서 세상일에 무관심해졌습니다. 마치 타고난 등대지기처럼 그는 등대지기로서 사는 삶이 자신의 삶의 전부인양 변모해 갑니다. 

 

스카빈스키는 확실히 세상일에 무관심해졌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향수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제 그는 고향 생각마저 단념해 버렸다. 노인의 세계는 작은 바위섬에서 시작해 작은 섬에서 끝나는 것이 고작이었다. 

 

마침내 그에게는 하늘도, 물도, 바위도, 등대도, 누런 모래톱도, 바람을 안은 돛대도, 갈매기도, 파도도, 모두 자기와 하나로 합쳐진 신비의 공동 영혼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은 그 신비스러운 영혼 속에서 그 영혼과 더불어 살고, 그 영혼과 더불어 자고, 그 영혼과 더불어 움직이는 것 같았다. 
이처럼 스카빈스키는 반쯤 잠을 자는 의식 상태에서 평화로움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자연과 하나가 되어 버린 등대지기를 깨운 것은 그의 모국어였습니다. 파도 속에 잠들어 있던 스카빈스키의 심장은 파도 속에 잠들어 있다가 폴란드어로 된 시집을 받고 깨어납니다. 자연은 그를 재웠는데 언어가 그를 깨웠습니다. 폴란드어로 된 시가 그를 깨웠습니다. 어쩌면 거대한 바다와 거친 파도가 그를 더 흔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책 안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작은 글씨가 그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습니다. 놀라운 일이죠. 그는 등대를 켜는 것을 잊고 모국에 대한 향수에 젖습니다. 결국 그는 파면당하지만 그를 살게 하는 것은 등대지기라는 그의 직업이 아니라 그의 모국어였습니다. 

 

"등대지기"를 읽으면서 소설이 가진 가치를 다시 한번 발견했습니다. 스카빈스키의 이야기를 영화나 드라마로 볼 수 있을까요? 가만히 파도를 바라보는 스카빈스키의 일상을 영화나 드라마로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런 뻔한 광경을 영화나 드라마도 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등대지기라는 정적인 직업, 특별히 섬 안에 있는 등대지기라면 정말 눈에 띄는 사건은 전혀 없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렇게 등대지기를 묘사해야 정상일 것입니다. 그 섬에 아름다운 여인이 표류해서 해변가에 발견된다면 그것은 사실 비현실적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등대지기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간접 경험을 할 수가 없겠죠. 소설이니까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짧은 시간이나마 이 소설을 통해서 등대지기가 되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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