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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니체 <안티크리스트>

설왕은 2019. 2. 6. 20:33


니체(1844-1900)의 말년은 순탄하지 못했습니다. 마흔 다섯 살에 정신이상이 발생했고 56세에 죽을 때까지 제정신을 찾지 못했습니다.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한 니체의 발언에 발끈하는 기독교인들이 때는 니체는 천벌을 받은 것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점잖게 철학을 논하는 철학자의 마지막 모습으로는 너무 비참했습니다.



니체의 안티크리스트 기독교인들이 싫어할 만한 제목이죠. 기독교에 대한 온갖 비판이 다양하게 담겨 있습니다. 책의 마지막에 그는 판사가 되어 기독교에 최종 판결을 내립니다.


"이로써 나는 결론에 도달하였으므로 나의 판단을 말하겠다. 나는 기독교에 유죄 선고를 내린다... 기독교 교회는 생각할 있는 온갖 부패 중에서도 최고로 부패한 것이며, 생각할 있는 부패 중에서 가장 궁극적인 부패에의 의지를 품고 있다." (141)


책의 결론만 봐도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지 짐작이 만한 아주 강렬하고 명료한 결론입니다. 철학자들이 어려운 내용을 자신들이 만든 단어를 이용해 어렵게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니체의 글은 오해를 하고 싶어도 오해할 정도로 논지가 뚜렷합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쳤다던 이승복 어린이처럼 니체는 책을 통해 나는 기독교가 싫어요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니체의 아버지는 목사였습니다. 어머니도 목사의 딸이었습니다. 니체는 어렸을 꼬마 목사라고 불리울 정도로 교회 생활도 열심히 했고 성경도 많이 아는 경건한 아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니체는 나이가 들어 문헌학에 심취하면서 기독교를 증오하게 됩니다. 생각엔 아마도 성서비평학의 영향을 받은 같습니다. 니체는 성경의 모든 내용과 기독교도라고 스스로를 부른 모든 사람들을 비판하며 기독교를 해로운 종교로 단정짓습니다. 니체의 주장이 이유 없는 반항은 아니었습니다. 일리 있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에덴 동산에 있던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에 대해 니체는 이렇게 말합니다.


" 가지 도덕은 '너는 알지 말라' 것이다...신은 엄청난 불안을 느꼈지만 영민함에 지장을 받지는 않았다. 어떻게 하면 지식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있을까?" (102)


인용구절의 뒷부분은 신의 감정을 추측하는 소설이지만 앞의 번째 문장은 사실이라고 있습니다. 니체는 주먹을 쥐고 신에게 이렇게 반항하고 있는 같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그렇게 숨기는 것입니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는 것입니까? 선과 악을 분별하는 것이 죄가 됩니까?” 그러게요. 저도 나무의 열매의 이름이 굳이 선악과였는지 궁금합니다. 선악을 아는 일은 좋은 일일 같은데요. 여하튼 니체는 이런 식으로 성경의 여러 가지 내용들에 딴지를 겁니다.


안티크리스트 보면 니체가 무엇을 싫어했는지 확실히 있습니다. 니체는 약한 싫어했습니다. 니체는 강해지고 싶었던 같습니다. 그리고 니체는 약한 옹호하는 기독교도 혐오했습니다.  


"기독교는 나약하고 천박하고 실패한 모든 것들의 편을 들어왔으며, 생명의 강한 보존 본능에 반박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아 왔다." (13)


"나약한 자들과 실패자들은 몰락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인간애의 1원리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몰락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11)


니체가 기독교는 나약한 자들에게 자극을 주어서 그들이 스스로 일어날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들을 위로함으로써 나약함을 고착화시키는 해로운 종교였던 거죠. 기독교의 교리에는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나중에 천국에 거니까 지금 살아도, 지금 아파도 괜찮다 식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우리의 삶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죠. 니체는 이에 반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삶을 부정하고 삶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가 없는 사람들은 제발 빨리 꺼져라.’


니체는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약한 자였습니다. 그가 원했던 것은 위로가 아니라 강함이었습니다. 세상과 자신의 삶을 마음껏 즐길 있는 강함이었습니다. 죽고 후에 천국에 가는 것은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이죠. 그는 건강을 '위대한 건강'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건강할 니체가 얼마나 행복감을 느꼈는지 짐작이 갑니다. 니체는 사는 너무 좋은철학자였던 같습니다.


1889 니체는 광장에서 마부에게 매를 맞고 있는 말을 끌어안고 울다가 졸도했고 이후에 정신에 이상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1900년에 죽을 때까지 온전한 정신을 갖지 못했고요. 니체가 제정신으로 했던 마지막 일이 제게는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삶을 사랑했던 니체는 삶을 증오하는 사람으로 가득찬 세상에 적합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안티크리스트 기독교에 대한 비판으로 가득합니다. 기독교인이 책을 읽는다면 불편한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니체의 비판은 기독교의 비뚤어진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정상적인 사람은 거울을 보고 자신의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 넘기죠. 거울을 깨는 사람은 정상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마지막으로, 책의 제목을 니체가 직접 지었는지 다른 이가 붙여 주었는지 모르겠지만 제목은 잘못된 같습니다. 니체는 예수를 반대하지는 않았거든요.  “근본적으로 오직 사람의 기독교도만이 존재했고, 그는 십자가 위에서 죽었다.” (77) 니체가 반대했던 것은 예수가 아니라 제도화된 기독교였습니다. “안티크리스트 니체가 무엇을 좋아했고 무엇을 싫어했는지 확실히 알려 주는 책입니다.  




니체의 일생과 여러 가지 일화는 안광복의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를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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