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소설

[한국단편소설] 황순원 "학"_덕재를 죽이라고?

설왕은 2022. 7. 13. 09:00

1953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1953년이면 짐작이 가는 내용이기는 한데 과연 그 짐작이 맞을지 궁금해하면서 읽었다. 제목이 "학"이기 때문에 분명히 학과 관련이 있는 내용일 것이라고 짐작하면서.

삼팔 접경의 이 북쪽 마을은 드높이 개인 가을 하늘 아래 한껏 고즈넉했다.
주인 없는 집 봉당에 흰 박통만이 흰 박통을 의지하고 굴러 있었다.


임시 치안대 사무소에 이르러 포승에 묶인 청년을 발견하는 성삼이. 가까이 가 얼굴을 확인한 성삼이는 깜짝 놀란다. 어렸을 때 단짝 동무인 덕재가 아닌가. 덕재를 자신이 데리고 가겠다고 나서는 성삼이. 성삼이를 데리고 가는 길에 그와 함께 했던 추억에 젖어든다. 덕재는 사람을 괴롭히고 죽일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성삼이는 덕재에게 묻는다.

"이 자식아, 그동안 사람을 멫이나 죽였어?"
덕재가 다시 고개를 이리로 돌린다. 그리고는 성삼이를 쏘아본다. 그 눈이 점점 빛을 더해가며 제법 수염발 잡힌 입언저리가 실록거리더니,
"그래 너는 사람을 그렇게 죽여봤니?"
이 자식이! 그러면서도 성삼이의 가슴 한복판이 환해짐을 느낀다. 막혔던 무엇이 풀려 내리는 것만 같은.


덕재가 사람을 죽인 적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성삼이는 왜 피하지 않았냐고 따지고, 대화를 나누다가 덕재의 아버지가 앓아누워 있다는 사실과 덕재가 성삼이도 알고 있는 '꼬맹이'라는 별칭의 아가씨와 결혼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고갯마루를 넘어 내려온다. 성삼이는 멀리 벌 한가운데 있는 학떼를 발견하고 어렸을 때 덕재와 함께 학을 잡았다가 놓아준 일을 기억한다. 성삼이는 덕재를 놓아줄 생각이다. 덕재에게 학사냥을 하자고 제안한다. 처음에는 무슨 일인지 몰라 어리둥절하던 덕재는 이내 성삼이의 의도를 깨닫고 잡풀 새를 기어 도망간다.

예상했던 대로 황순원 작가의 인간애가 느껴지는 소설이다. 이념과 사상이 달라서 두 사람이 서로 갈라져 반목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두 사림이 어린 시절 함께 지냈던 추억까지 갈라놓을 수는 없다. 성삼이는 처음에 적으로 생각했던 사람이 덕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를 데리고 가다가 그와 함께 했던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린다. 그의 아버지도 알고 그의 아내도 누구인지 안다. 그리고 이번 가을에 첫 아이가 세상에 나온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어떻게 친구인 덕재를 죽일 수 있을까? 그리고 덕재는 다른 사람을 죽인 일도 없다고 하지 않은가. 성삼이는 덕재를 놓아준다. 이념과 사상이 다르다는 것이 문제일 수 있지만 그것이 덕재를 죽일 이유가 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황순원의 소설은 일상의 내용을 다루고 있어서 좋다. 1953년이면 아직 한국전쟁 중이라서 대단한 전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직접 전투에 참가하지는 못했더라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서 소설을 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대단한 전투를 경험하고 거기에서 살아난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하지만 성삼이와 덕재의 경험은 그 당시에는 매우 흔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가족, 친척, 친구, 연인, 선후배가 서로 갈려서 죽고 죽여야 했던 미친 시기에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당연히 나라에서는 반대쪽 진영에 있는 사람은 아무리 친하고 가까운 사이라고 하더라도 잡거나 죽이라고 명령했을 것이다. 그래야 나라가 유지되고 또한 나라에 속한 국민들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올바른 행동일까? 성삼이는 덕재를 놓아주는데 정부는 성삼이가 매우 위험한 행동을 한 것으로 판단할 것이다. 황순원 작가의 질문은 이것이다.

그렇다면 성삼이가 덕재를 죽여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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