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소설

[한국단편소설] 함정임 "병신 손가락"_보여 주어야 할까?

설왕은 2022. 7. 10. 09:00

소설 속 '내'가 병신 손가락을 갖게 된 사연과 남편에게 병신 손가락을 보여 주어야 할지 고민하는 이야기. 손에 장애를 입게 된 것은 분명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나 심각한 장애가 아니고 손톱 발달에 장애가 생겨 조금 부끄러운 정도이다. 한국 전쟁 이후에 가난하고 어려운 시기를 거친 우리나라 사람에게 흔하게 생길 수 있는 일을 다루고 있다. 생존 자체가 문제인데 안전이나 건강까지 챙기기에는 어려운 시기였다. 병이 들거나 상처가 생겼을 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아서 몸에 이상이 생기는 경우는 다반사였기 때문에 함정임 작가의 "병신 손가락"은 20세기 중후반을 살았던 평범한 대한민국 사람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좋았다. 평범한 이야기라서. 

 

결혼하고 삼 개월이 지나도록 그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내 왼손의 네 번째, 그러니까 결혼반지를 끼는 손가락의 손톱은 병신이었다. 결혼하기 전에 수없이 손을 잡았고 예물 반지를 고리고 끼워보고 하면서도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그는 대단히 이상하게 여기면서 무슨 중대한 사건의 실마리를 잡은 형사의 눈으로 내 병신 손톱의 사연에 대해 캐묻기 시작했다. 

 

결혼한 남편이 결혼하고 삼 개월이 지나서야 처음 발견한 것이라면 소설 속 '나'의 장애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었다. 분명히 작은 것인데도 나는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떨쳐내지 못한다. 굉장히 마음에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병신 손가락이 자랑스러운 것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놀랍고도 신기하게 병신 손가락 때문에 눈물도 흘린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병신 손가락 때문에 인생 전체의 방향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마치 카오스 이론의 나비처럼, 나의 작은 장애는 내 인생의 항로 전체를 바꾸었는지도 모른다. 

 

병신 손톱만 아니었으면 나는 지금쯤 언니처럼 피아노를 다루는 직업을 가졌거나 열정적인 피아니스트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중학교에 들어가자 음악 선생님이 내 손을 보시더니 피아노 레슨을 받아보라고 권유하셨다... 나는 피아노 앞으로 내 손을 잡아끄는 음악 선생의 손을 뿌리치며 얼굴이 새빨개져서 밖으로 뛰달아났다. 

 

병신 손가락을 가지게 된 사연은 그다지 극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 나를 엎고 연못가에 바람을 쐬러 나갔던 재경 언니가 실수로 나를 방죽에 빠뜨린 것이다. 그때 나의 손은 동상에 걸렸고 열 손가락 중 하나의 손톱이 빠졌는데 손톱이 다시 나기는 했으나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았는지 제대로 나지 않았던 것이다. 소설 속 나는 언니나 엄마를 원망한 적은 없었다고 말한다. 

 

소설 속 '나'는 진짜 엄마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엄마는 삶이 괴로워 종종 술을 마셨는데 그럴 때면 엄마는 괴물로 변했다고 서술한다. 그러면 아마 엄마를 미워하거나 한심해하거나 우리 엄마는 왜 이럴까 신세 한탄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 나는 이 부분이 눈에 들어왔고 기억에도 남았다. 분명히 엄마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었을 테고 엄마가 그 기대와는 정말 다르게 행동할 때 당황스럽게 무섭고 힘들었을 텐데, 소설 속 나는 오히려 엄마를 감싼다. 

 

엄마는 몹쓸 병을 앓고 있는 거야. 아픈 줄도 모르고 나는 거칠게 뿌리치는 엄마에게 기를 쓰고 매달리고 사정했다. 엄마의 불행이 마치 내 잘못인 것만 같았다. 애처로움과 서러움이 물밀듯이 밀려와 가슴을 터지게 했다. 어서 이 악몽에서 깨어났으면. 다음 날 아침 엄마의 몸은 시퍼런 멍투성이였다. 

 

소설 속 주인공 '나'는 엄마도 언니도 원망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의 병신 손가락은 누구의 책임일까? 누구를 탓해야 할까? 분명히 나의 잘못도 아닌데 말이다. 생각해 보면 탓할 사람이 없다. 아마도 그래서 더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인지도 모르겠다. 시대의 아픔이라고 해야 할까? 그때는 다들 그렇게 살았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로 인해 생긴 장애는 나의 인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고 나는 때로 그로 인해 눈물도 흘리고 나의 장애를 시원하게 털어낼 수 없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이 소설의 끝은 어떻게 될까? 소설 속 나는 자신의 병신 손가락으로 인해 느끼는 아픔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옆에 누울 때마다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더욱 깊이 인식할 뿐이었다. 그것은 내가 병신 손톱을 감추려고 하는 한 나는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것이며 나 또한 아무도 사랑하지 못하리라는 절망감이었다. 깊이 사랑하는 자만이 절망을 극복할 수 있다던가.

 

 

소설 속 주인공의 목표는 명확했다. 하지만 나는 그다음 부분부터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된 것인지 몽롱하게 쓰여 있어서 정확하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어떤 심경의 변화가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극복이 되었는지 아니면 여전히 헤매고 있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함정임 작가의 "병신 손가락"은 평범한 이야기여서 좋았다. 보통 사람의 상처 이야기. 상처는 극복되어야 하는데, 그런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고 극복되지 않아서 대단히 큰 문제가 발생한 것도 아니다. 그래도 상처가 치유되면 치유되지 않는 것보다 훨씬 좋은 일이다. 가능할까? 지금 치유되었다고 생각되어도 그 상처가 다시 화끈거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병신 손가락으로 인한 '나'의 허우적거림은 계속될 것만 같다. 

320x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