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소설

[한국단편소설] 황순원 "비바리"_황순원을 읽어야겠다

설왕은 2022. 7. 8. 23:59

소설이란 한낱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다가 소설을 폄하하던 나에게 거의 유일한 예외가 되었던 소설은 황순원의 "소나기"였다. 이유는 잘 몰랐다. 그냥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던 것 같다.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하기에도 적절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한데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고 느꼈던 감정은 아름다운 예술품을 보고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냥 끌리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소나기가 올 때 황순원의 "소나기"에 나온 주인공들이 뛰어다니는 상상을 하곤 했다. 

 

나이가 좀 들어서 '글'을 계속 읽어야 했고 '글'을 읽다 보니 소설의 가치를 발견했다. 좋은 소설을 읽고 싶었으나 찾기가 쉽지 않았다. 소설은 많고 그중에 특이한 소설은 많으나 좋은 소설로 느껴지는 소설은 별로 없었다. 20세기에 나온 한국 소설은 좀 피하고 싶었다. 우울하고 슬프고 아픈 이야기가 많았다. 1956년 10월에 발표된 황순원의 "비바리"도 시기적으로 볼 때 딱 그럴 것 같았다. 제목이 "비바리"라. 비발디도 아니고 "비바리". 처음 듣는 말이었다. 첫 문단은 이렇게 시작한다. 

 

바다 위에서 보면 제주도란 그저 하나의 커다란 산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배를 타고 저쪽 바다 한끝에 엷은 보랏빛으로 채색된 윤곽이 하나 얼룩질라치면, 아 제주도다, 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지만, 기실 그것은 섬이라기보다는 오른쪽에다 큰 봉우리를 두고 왼쪽으로 낮은 봉우리를 연이어 놓은 하나의 크나큰 산이란 느낌밖에 주지 않는 것이다. 제주도란 곧 한라산 그것으로 된 화산도인 것이다. 

 

 

소설의 배경은 제주도이다. 일단 반가웠다. 대한민국 사람 중에 제주도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있어도 아주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라는 점에서 반가웠다. 1950년대의 제주도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소설 속 제주도는 황순원 작가가 소개하는 제주도이다. 제주도를 소개받는다면 누구에게 소개받는 것이 좋을까? 아무래도 말재주가 좋은 또는 글솜씨가 뛰어난 사람에게 소개받는 것이 좋을 것이다. "비바리"는 황순원 작가의 제주도 소개이기도 하다. 

 

줄거리는 준이라는 청년이 제주도에서 물질을 하는 한 처녀를 만나서 사랑에 빠지지만 준이가 육지로 나가게 되자 결국 헤어진다는 이야기이다. 비바리는 제주도 방언으로 처녀를 뜻하는 말이다. 처녀를 비바리, 노처녀를 작산비바리라고 한다고 소설에서 설명해 주고 있다. 그래서 제목이 비바리이다. 준이와 사랑에 빠진 비바리는 준이가 육지로 같이 나가자는 하는 제안을 거절하는데 그 이유는 명확하지는 않다. 비바리는 자신이 육지로 나가지 못할 몸이라고 말한다. 

 

"비바리"는 청춘 남녀의 사랑 이야기이다. 그러나 사랑 이야기에 사랑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역사에 잘 거론이 되지도 않고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가슴 아픈 사건 중 하나가 제주 4.3 사건인데 소설 속 청춘 남녀의 사랑은 4.3 사건과 깊이 연루되어 있다. 4.3 사건이 무엇인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역사책이 아니니까. 그러나 갑자기 훅 들어온다. 

 

준이네가 서귀포로 오던 날은 며칠째 비가 뿌리다가 날이 들면서 바람이 좀 치는 날이었다. 버스에 실리어 4.3 사건 당시 쌓아 올렸다는 두 길 세 길이 넘는 성벽에 들린 촌락을 지나며, 그저께인가도 동제주도 어느 부락에 빨치산이 출몰했다는 소문을 상기해 보면서 서귀포에 닿은 것은 거의 낮때가 되어서였다. 

 

 

육지에서는 잘 몰랐겠지만 제주도에서 4.3 사건의 상처는 어느 곳에나 있을 것이다. 제주도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그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상태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황순원 작가가 소설을 썼던 당시에는 아마도 상처에서 여전히 피가 나오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 소설에서는 4.3 사건을 직접 설명하거나 그에 대해서 어떤 평가도 내리지 않는다. 끔찍한 한 사건만 제외하면 준이와 비바리의 사랑 이야기는 육지에서 일어나는 사랑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다. 그렇지만 준이를 좋아한 비바리가 준이에게 처음으로 호감을 표시하는 사건은 상당히 의외였다. 좋아한다고 말로 한 것도 아니고 선물을 한 것도 아니고 호의를 베푼 것도 아니고 장난을 쳤는데, 내가 느끼기에는 요새 하는 드라마에서 따라 해도 전혀 촌스럽지 않을 것 같았다. 해녀였던 비바리는 소설에서는 주로 잠녀로 칭하는데 준이가 던진 낚시에 걸려서 물 밖으로 나오는 장난을 친다. 준이는 처음에는 자신이 잘못한 것으로 알았으나 나중에서야 잠녀의 장난이었다는 것을 눈치챈다. 

 

입에 낚시를 물고 있었다. 입술 새로 피가 번져 나왔다. 비바리는 옆에 누가 있다는 것은 아랑곳않는 듯이 준이만을 바라보았다. 검은 속눈썹 속의 역시 검은 눈이 흐리지도 빛나지도 않고 있었다. 이윽고 비바리는 제 손으로 낚시를 뽑더니 그 피 묻은 입술에 불현듯 미소 같은 것을 띄우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준이도 비바리에게 마음이 가게 된다. 그리고 놀랍고도 무서운 이야기를 듣는데, 그 비바리가 자신의 오빠를 장총으로 쏘아 죽였다는 것이다. 비바리가 오빠를 죽인 것은 사실이었으나 비바리가 왜 오빠를 죽였는지 사람들은 추측만을 전달한다. 나중에 준이와 비바리가 마지막으로 만날 때 비바리는 왜 오빠를 죽였는지 설명한다. 제주 4.3 사건에 관계된 아프고도 슬픈 사고였다. 준이는 비바리의 설명을 듣고 이해했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 설명을 듣고도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잘 납득이 되지 않았다. 

 

나는 제주 4.3 사건에 대해 듣기만 들었지 제대로 알아본 적이 없다.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이고 복잡한 사건이기 때문에 시간을 들여서 살펴볼 필요가 있는 사건이다. 그러나 나와 그다지 관련이 있는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런데 황순원의 "비바리"를 읽고 나니 제주 4.3 사건에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왜 비바리는 자신의 오빠를 장총으로 죽일 수밖에 없었을까? 그리고 왜 제주도를 떠날 수 없는 몸이 되었을까? 준이를 사랑하는데도, 준이가 같이 육지로 나가자고 하는데도 제주도를 떠날 수 없는 몸이라고 자신을 옭아매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바리를 더 이해하고 싶어졌다. 

 

황순원의 소설을 많이 읽어 보진 못했는데 대부분 시대의 상처를 담고 있었다. 억지스럽거나 지겨운 설명이 아니라 상처로 인해 아프지만 그래도 끈질기게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런 자세가 마음에 든다. "비바리"를 읽고 나서 나는 황순원 작가의 글을 더 읽어보기로 마음먹었다. 

320x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