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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로완 윌리엄스_그리스도인이라면

설왕은 2024. 3. 22. 09:00

 

로완 윌리엄스는 목회자이면서 신학자이다. 목회자가 쓴 책은 지나치게 성경 안에 갇혀 있는 글이 되기가 쉽고 신학자가 쓴 책은 너무 어렵거나 이론적인 면에 치우쳐서 실천을 고려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윌리엄스의 글은 아주 균형을 잘 잡고 있는 책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주제 자체도 아주 실천적인 것 아닌가? 책 안을 들여다보면 네 가지 소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세례, 성경, 성찬례, 기도이다. 읽어 보니 균형을 잘 잡고 있는 책이고 본질적인 내용을 짧게 잘 정리한 글이었다. 

 

윌리엄스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루는 핵심 요소 네 가지를 다루고 있다.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 믿고 천국에 가는 것을 의미하는 걸까? 틀린 말은 아닌데 추상적인 표현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천국이 무엇인지, 천국에 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한 의미를 짚어내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교회를 다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게 더 이해하기 쉽다. 그렇다면 교회를 가서 무엇을 할 것인가? 이것 역시 대답해야 하는 것이다. 

 

130쪽이 되지 않는 이 얇은 책은 이 책의 제목처럼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고 있다. 마지막 부분에 스터디 가이드에서 각 장마다 세 개의 질문을 던지면서 소그룹 모임에 활용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세례의 의미가 무엇인지,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지, 성찬례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받아야 하는지, 기도를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할 것인지 알려주면서 마지막 질문을 통해 서로의 의견을 나눌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마지막에 질문을 넣은 시도 자체는 좋은 의도라고 생각하지만 이 질문들은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 것 같다. 그것보다 내용에 좀 더 집중하는 것이 좋다. 

 

특별히 세례를 처음 부분에 놓은 의도는 아주 분명해 보인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공식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결심하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는 것인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로완 윌리엄스의 강조점은 아주 명확하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공동체 속에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면서 공동체의 번영을 함께 꿈꾸는 삶을 지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례에 대해서 다른 추상적이고 영적인 의미에 대해서도 밝혔지만 그의 강조점은 이웃에게 있다. 세례받은 사람은 타인의 이웃이 되도록 결심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세례는 여러분을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이웃이 되도록 이끕니다. 그리고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이웃이 되는 것 외에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33)

 

 

 

로완 윌리엄스는 공동체를 그리스도인에 국한한 것처럼 말하기도 하지만 이웃을 굳이 그리스도인으로 제한할 이유는 없다. 모든 사람이 이웃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세례의 의미를 예수 믿고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고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로완 윌리엄스의 생각도 나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부분인 성경도 내용이 좋다. 나는 성경을 매우 위험한 책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그 이유는 서로 충돌하는 내용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성경에 공존하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성경을 읽고 있으면 마치 하나님은 물이면서 동시에 불인 것 같다. 하나님은 물이면서 동시에 불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하기 불가능한 신비로운 존재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얼버무리면 안 되는 내용이 있다. 성경은 매우 섬세하게 읽을 필요가 있는 로완 윌리엄스는 그에 대한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이토록 간략하고 명료하게 성경에 대한 설명을 하기도 어려울 것 같은데 로완 윌리엄스는 그걸 해낸다. 

 

성찬례에 대한 설명은 첫 부분의 내용을 두고두고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아주 짧은 설명이지만 성찬례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참여해야 하는지 잘 알려 주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성찬례에 참여하는 일은 자신이 언제나 손님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뜻합니다. 내가 환영받는 사람이요,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줍니다. (73)

 

 

 

환영받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특별히 내가 세상에 태어나고 살아가고 있는 것 자체에 대해서 환영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면 기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환영받는 기분이 좋아서 쇼핑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쇼핑을 하러 들어가면 물건을 파는 사람은 손님을 환영하게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이 환영받는다고 느낀다면 그것 자체가 우리에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다. 성찬례의 의미는 바로 그런 것이라고 로완 윌리엄스는 설명한다. 

 

마지막은 기도다. 기도에 대해서도 구구절절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로완 윌리엄스가 전하는 짧은 구절 중 마음에 드는 것이 있어서 소개한다. 그는 기도는 재채기와 같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재채기는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의무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하는 것이 재채기다. 기도는 그렇게 의무적으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마치 재채기처럼. 기도는 내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연합되어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 말로 행동으로 세상에 침투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어떨까? 재채기라는 비유가 마음에 들었다. 

 

 첫째이자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란 우리 안에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점입니다. (120)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몇 시간만에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며칠도 안 된다. 몇 달은 가능할까? 아니다, 그것도 짧다. 몇 년은? 나는 몇 년도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몇십 년이 필요하다. 삼십 년, 사십 년도 부족할지 모른다. 어쩌면 백 년을 노력해도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요새는 사람들이 뭐든지 빨리 해내려고 애를 쓴다. 요령을 피우려고 그러는 것도 있겠고, 핵심을 꿰뚫으면 단기간에 엄청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도 같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위대한 삶을 사는 것은 절대로 단기간에 이루어 낼 수 없다. 단기간에 엄청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삶으로 옮기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짧은 시간 훌륭하게 산다고 해서 그 사람이 위대한 삶을 살았다고 판단하는 것도 옳지 않다. 자신이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삶 전체가 필요하다. 끊임없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고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은 사람뿐만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인이 된 지 오래된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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