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어때?

루미나리스/로완 윌리엄스_세상의 빛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설왕은 2024. 3. 19. 09:00

 

 

제목이 희한하다. ‘루미나리스’가 원제인 것 같은데 영어로 luminaries이고 단수형은 luminary이다. 내가 알기로는 빛나는 것 정도의 뜻을 가진 걸로 알고 있는데, 잘 쓰는 단어는 아니라서 사전을 찾아보았다. 영한사전을 찾아보니 루미나리는 선각자, 권위자, 지도자라는 뜻도 있고 발광체라는 뜻도 있다. 발광체라고 하면 말이 좀 거친 것 같은데, 등불 정도로 번역해도 될 것 같다. 그런데 옥스퍼드 영영사전을 찾아보니 발광체라는 뜻은 없고 그냥 어떤 분야의 전문가 또는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라는 뜻만 있다. 아마도 주로 사람을 일컬을 때 쓰는 말인 것 같다. 아마도 luminary를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지 않고 영어를 그대로 쓴 이유는 아마도 뭔가 있어 보이려고 한 것 같다. 이렇게 좀 있어 보여야 책이 팔릴 테니까. 굳이 번역하자면 '빛나는 사람들' 또는 '훌륭한 사람들'이라고 해야 하니까 좀 어색하기는 하다. 

 

이 책은 빛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역사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그리스도교 신앙인을 소개하는 책이다. 로완 윌리엄스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세상을 이해하는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려는 실천”이라고 말한다. 멋있는 말인 것 같기도 하지만, 참 어렵게 말을 한 것 같다. 세상을 이해하는 틀은 당연히 그리스도교 신앙이고 예수가 가지고 있었던 세상에 대한 관점이다. 물론 예수가 이해한 세상, 그리고 예수가 이룩하려고 했던 세상은 현재 세상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윌리엄스가 지적한 것처럼 예수가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었다. 지어낸 이야기 따위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물론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야기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확신하려면 근거가 있으면 된다. 근거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이야기는 효능을 믿을 수 있다. 

로완 윌리엄스가 이 책에서 쓰고 있는 것은 이야기가 세상을 변화시킨 증거가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예수의 이야기는 어떤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고 그 사람들은 예수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들의 삶의 이야기를 만들었고 그것은 곧 이 세상을 변화시킨 이야기이기도 했다. 이 책은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다. 등불과 같이 빛을 발하며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책은 총 스무 명의 사람들의 삶을 담고 있다. 150쪽 정도 되는 책에 스무 명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아주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래서 더 좋은 점은 각각의 사람들이 살았던 삶에 대한 전체적인 윤곽을 짧은 글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닐곱 쪽의 글을 통해서 각 사람의 삶과 이야기를 대략 볼 수 있지만 그 정도의 글만 가지고도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대충 파악할 수 있다. 신학자도 있고 목회자도 있고 철학자, 작가, 정치인도 있다. 공통점은 모두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점이다. 

차례를 보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는 신학자나 목회자로서 많이 알려져 있는 사람들보다 찰스 디킨스, 불가코프, 슈타인, 시몬 베유 같은 사람들에게 관심이 갔다. 어떻게 이들이 자신의 직업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았는지 또는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가 어떤 계기로 그리스도교 신앙에 집중하는 삶을 살 결심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읽고 싶어졌다. 로완 윌리엄스는 디킨스의 '황폐한 집'을 소개하고 있다.

 

'황폐한 집'의 끝부분에서 섞어 가는 저택에 외롭게 남은 그는 용서와 화해의 가능성을 열어 놓습니다. 레스터 경은 죄책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달아난 아내에 대해 그다운 담담하고 정확한 언어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녀에게 베푼 호의를 거둬들일 생각이 없네." 이 지독히 딱딱한 문장에서 우리는 자비의 희망 같은 것을 감지합니다. 

 

 

디킨스의 다른 유명한 작품들도 많은데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몬 베유의 '신을 기다리며'도 이 책 덕분에 알게 되었다. 시몬 베유라는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그다지 관심이 있지는 않았는데 '신을 기다리며'에서 시몬 베유가 기도의 본질에 대해 서술했다고 하니 읽어보면서 생각할 만한 내용이 있을 것 같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세상의 빛이라고 했는데 빛이라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참으로 어려운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이 도움이 될 것 같다. 빛으로 살아갔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 보면 우리도 어떻게 빛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좋은 모범 사례로 삼을 수도 있고 또 새로운 생각이 떠오를 수도 있다. 역사 속에서 아름답게 빛났던 사람들을 소개해 준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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