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설교

누가복음 1:67-80 "사랑은 타이밍이다"

설왕은 2019. 3. 16. 10:53


( 1:67-80, 번역)

[67]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이렇게 예언하였다. [68] " 이스라엘 하나님은 찬양받으실 분이시다. 그는 자기 백성을 돌보아 속량하시고, [69] 우리를 위하여 능력 있는 구원자를 자기의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다. [70] 예로부터 자기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으로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71] 우리를 원수들에게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손에서 건져내셨다. [72] 주님께서 우리 조상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자기의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다. [73] 이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고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이니, [74] 우리를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주셔서 두려움이 없이 주님을 섬기게 하시고, [75] 우리가 평생 동안 주님 앞에서 거룩하고 의롭게 살아가게 하셨다. [76] 아가야, 너는 더없이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릴 것이니, 주님보다 앞서 가서 그의 길을 예비하고, [77] 사함을 받아서 구원을 얻는 지식을 그의 백성에게 가르쳐 것이다. [78] 이것은 우리 하나님의 자비로운 심정에서 오는 것이다. 그는 해를 하늘 높이 뜨게 하셔서, [79] 어둠 속과 죽음의 그늘 아래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게 하시고,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80] 아기는 자라서, 심령이 굳세어졌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나는 날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1. 들어갑니다


이제는 세례 요한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사가랴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죠. 사가랴가 성경에서 중요한 인물입니까? 적어도 누가복음 1장에서는 그렇습니다. 누가복음 1장의 절반 이상이 사가랴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사가랴가 말을 못하게 되었다는 소문은 금방 온동네에 퍼졌을 것입니다. 두려움의 기운이 온동네에 내려앉았을 것입니다. 사가랴는 천사 가브리엘을 만났다고 말했을 가능성이 높죠. 그래서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오셔서 그들을 구원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도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둠 가운데 있을 , 우리가 희망이 없다고 느낄 , 우리에게 겨자씨와 같은 작은 두려움의 감정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사가랴는 이런 작은 겨자씨를 사람들에게 뿌린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를 다시 기억하기 시작했습니다. 마리아의 경우는 사가랴의 경우와는 달랐습니다. 그녀가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은 한동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마리아가 그런 소문이 퍼지지 않도록 주의했을 것입니다. 그녀는 아직 결혼 전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사가랴는 그가 말을 없다는 사실을 숨길 없었습니다. 때는 사가랴의 역할이 중요했을 것입니다.

 


2. 본문 설명

누가복음 1 67~80절은 사가랴의 예언입니다. 의미 있는 예언이죠. 사가랴는 동안 마디도 없었습니다. 그는 정말 말을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하고 싶은 말을 마음 속으로 계속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그의 입이 열리자마자 불평할 수도 있었겠죠. 제가 사가랴였다면 매우 화가 났을 같습니다. 마음 속으로 수도 없이 이런 말을 했을 같습니다. ‘하나님, 도대체 무엇이 문제입니까? 저는 그저 천사에게 저와 아내가 너무 늙어서 아이를 가질 없다고 말했을 뿐입니다. 마리아도 비슷한 질문을 했는데 저만 벌을 받았습니까?’ 그런데 사가랴는 저와 달랐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충만해서 예언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첫번째 말이 무엇이었습니까? ‘찬양’(blessed)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말로는 동사가 나중에 나오지만 원어 성경에는 동사가 처음에 나옵니다. 그는 불평이 아니라 축복을 했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가랴가 하나님을 찬양한 이유에 대해서 그의 말의 동사를 살펴봄으로써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번째 동사는 돌보다’(looked favorably)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셨다고 사가랴는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노래에서 마리아가 하나님을 찬양한 이유와 비슷합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마음이 하나님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마가복음 1:46-48) 두번째 단어는 속량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속량하셨다고 말합니다. 다음 단어는 일으키셨다 동사입니다. 속량과 일으키셨다는 단어는 모두 예수님과 관련이 있습니다. 동사의 시제는 모두 과거 시제입니다. 아직, 예수가 태어나기도 전인데 말이죠. 사가랴에게 이스라엘의 구원은 이미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그것이 미래에 일어날 일인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70절과 71절은 앞부분에 대한 설명이고요. 다음 단어는 베푸시고이고, 다음 단어는 기억하셨다입니다. 네번째 단어는 자비를 베푸셨다는 말인데   단어 역시 예수님의 나심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어는 기억하셨다는 것입니다. 정리를 해보면, 다섯 개의 단어는 돌보다’, ‘속량하다’, ‘일으키다’, ‘베풀다’, ‘기억하다입니다. 중에 개의 단어 속량하다’, ‘일으키다’, ‘베풀다 단기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반면에 돌보다 기억하다 장기간에 걸쳐서 일어나는 일이죠.

 


3. 원리와 적용

우리는 종종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실까? 내가 이렇게 지금 어려움에 있는데 하나님은 뭐하고 계실까? 하나님이 나를 위해 무슨 해주시면 좋겠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걸까? 이러다 나는 그냥 죽을 수도 있을 같은데…” 사가랴는 말을 없는 동안 무엇을 깨달았을까요? 그는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깊이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을 돌보고 기억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사실도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고 기억하신다는 사실 말이죠. 때로는 하나님이 죽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니체의 신은 죽었다 선언은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대변해 주는 것이었죠. 정말 그렇게 느껴졌으니까요. 우리가 어려움에 처할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일 때가 너무 많습니다. 그럴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요? 그때도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를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일까요? 하나님은 보고 기억만 하시는 것입니까?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말이 있죠. 우리는 우리 가족과 부모님과 친구와 이웃들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들을 매일 매순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루에 7-8시간은 자야 하고요. 살려면 먹어야 합니다. 씻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고 일도 해야 합니다. 생각해보면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우리 자신을 위해서 쓰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쓰는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타인과 항상 함께 있을 수도 없고요. 우리가 타인과 함께 있지 않을 우리는 어떻게 타인을 사랑할 있습니까?

 

우리는 기억함으로 타인을 사랑할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할 우리는 사람에게 사랑을 표현할 있는 적당한 때를 찾을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구원할 때를 기다리고 계셨죠. 저는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타이밍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돌보셨고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느껴질 ,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계시고 우리가 , 우리가 생각한 , 우리가 꿈꾸고 기도한 것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웃을 어떻게 사랑할 있을까요?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기억함으로써 우리는 그들을 사랑할 있습니다. 그리고 적절한 타이밍에 사랑을 표현할 있을 것입니다. 사랑은 타이밍입니다. 사랑하기 좋은 타이밍을 잡으려면 하나님이 하신 것처럼 돌보고 기억해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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