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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본회퍼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설 수 있을까?>

설왕은 2019. 4. 13. 23:15


본회퍼(1906-1945)는 신학 천재라고 불리던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했습니다. 도중에 나치에 맞서서 히틀러를 제거하기 위해 독일로 돌아가지만 않았다면 누구보다도 위대한 업적을 남겼을 만한 인물이 바로 본회퍼입니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을까>는 본회퍼의 설교 열두 편을 모아서 출간한 책입니다. 1928년에서 1938년 사이의 설교를 모은 책이니 그가 22살에서 32살 사이에 전한 설교입니다. 아주 젊은 목사의 설교입니다. 젊은 목사의 설교이니 혈기 왕성한 젊은이의 패기가 느껴지거나 혹은 미천한 경험으로 인해 어리숙한 판단이나 해석을 할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는 않습니다. 특별히 그가 히틀러를 제거하기 위한 반나치운동을 벌이다가 결국 교수형에 처해진 사람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읽으면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가볍게 들리지 않습니다. 마치 윤동주의 시를 읽는 것처럼 본회퍼의 설교는 조국이 처한 상황에 대한 고뇌가 느껴지는 부분이 여기저기 눈에 띕니다. 설교자의 말과 행동이 다를 때가 많은데 그의 삶과 죽음을 생각해 볼 때 그의 말에 무게가 자연스럽게 실립니다. 


종교를 감정의 문제로 착각하는 것은 굉장히 심각한 오류입니다. 종교는 노동입니다. 어쩌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어려우면서도 거룩한 노동일 것입니다. 우리에게 관심을 두고 계신 하나님이 분명히 계신데도, '나는 별로 종교적이지 않다'는 말로 자신을 정당화시키며 회피해 버리는 것은 한탄할 일입니다. 그것은 변명에 불과합니다. (33)


22살에 한 그의 설교에서 종교에 대한 본회퍼의 견해를 알 수 있습니다. 그에게 기독교는 한 순간의 감정에 휩싸여 잠깐 동안 경험하는 황홀경과는 거리가 멉니다. 본회퍼에게 종교는 피아노를 치는 연습과도 같은 일입니다. 피아노 치기 싫다고 연습을 게을리하면 좋은 피아노 연주자가 될 수 없듯이 그에게 종교적 거룩의 경험은 노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설교에서 본회퍼가 말하는 종교적 노동은 기도와 묵상의 훈련이지만, 이 말에서 그의 종교에 대한 자세를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 독일로 돌아갔는지 그의 종교적 노동의 과정이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두번째 설교의 본문은 마태복음 5장 8절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입니다. 이 설교도 22살 때 한 설교입니다.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마치 생수를 들이키듯 하나님의 빛을, 그분의 맑고 깨끗함을 들이마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우리가 일생 동안 사모하며 걸어왔던 그 본향을 바라보는 것이며, 마치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품에 안겨 실컷 울고 나면 가슴이 후련해져서 기쁨을 회복하듯 아버지의 마음에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47)


설교 본문 선택과 그의 표현을 보면 본회퍼의 순수함과 문학적 감수성이 엿보입니다. 본회퍼의 설교집을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의 설교는 이상적이고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고 자신의 생각을 숨기고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의 설교를 보면 악인의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갚아야 한다고 거듭해서 말하고 있고 어떤 잘못을 한 사람이라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용서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의 삶을 다시 살펴보니 그는 미국 유니언 신학교에서 기독교 평화주의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설교를 잠깐 살펴보죠.


그러므로 악은 당신이 악해지기만을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비로소 악이 당신에 대해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악을 악으로 갚지 마십시오. 그렇게 함으로써 악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만 상처를 입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악한 일이 일어난다면, 위험에 처하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당신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당신이 그를 돕지 않는다면, 그는 그가 행한 악으로 인해 자기 생명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인을 위하여, 그리고 당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악을 악으로 갚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당신의 악을 악으로 갚은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습니까? (159)


그런데 어떻게 그는 히틀러를 암살하려는 계획에 가담하게 되었을까요? 위의 설교는 본회퍼가 1938년 독일에서 한 설교입니다. 이미 본회퍼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을 때도 본회퍼는 용서를 설교했으며 악인에게 선을 행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본회퍼의 신앙 자세는 20대 때부터 계속 위의 내용과 같은 자세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정말 지극히 이상적인 태도이기는 하나 성경적인 태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자세를 취했던 그가 히틀러를 암살할 계획에 가담했다면 그의 생각을 바꿨을 사건이나 아니면 새로운 신학적 깨달음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그게 무엇이었을지 궁금해집니다. 본회퍼는 자신이 스스로 설득당하지 않았다면 사회 분위기나 동료들의 요구가 있었더라도 움직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시금 이 세상에 히틀러가 나타난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악인의 악을 선으로 갚아야 할까요, 아니면 그 악인을 제거해서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을 막아야 할까요? 만약 사회 전체 시스템이 그 악인에게 완전히 넘어가서 정의나 공의의 이름으로 그 악인을 제어하거나 처벌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악인을 용서하고 새로운 기회를 주면서 비폭력적 평화적으로 맞서야 한다는 본회퍼의 주장도 옳은 것처럼 보이고, 그 악인을 제거해야 한다는 본회퍼의 주장에도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어떻게 후자의 본회퍼는 전자의 본회퍼를 설득했을지 궁금합니다. 


본회퍼의 설교를 읽으니 그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그의 설교를 읽으며 제 생각과 그의 생각이 비슷한 점이 많아서 반갑기도 했습니다. 저는 설교문을 잘 읽지 않습니다. 대개는 본문만 봐도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경우가 많고, 근거나 고민 없이 지나치게 강압적인 경우가 많거든요. 본회퍼의 경우는 후자의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조심스럽게 내용을 전개해 가는 스타일입니다. 전자의 경우는 좀 있는데 그래도 표현이 다양하고 풍부해서 지루하지 않고 청년의 순수한 감수성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본회퍼를 좋아하신다거나 성경의 말씀 나눔이 필요한 분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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