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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본회퍼 <나를 따르라> (1937)

설왕은 2019. 4. 15. 23:38

 

본회퍼(1906-1945)는 17세에 신학 공부를 처음 시작해서 21세에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그런 초고속 학위 취득이 가능했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지만 본회퍼의 천재성을 보여 주는 것이겠죠. 본회퍼의 "나를 따르라"는 1937년에 본회퍼가 31세 되던 해에 출간한 책입니다. 본회퍼는 1939년에 유니온 신학교의 초청을 받아 미국 유학을 떠났지만 6월 20일 귀국을 결심하고 7월 27일에 다시 독일로 돌아왔습니다. 실제로 본회퍼는 미국에서 유학을 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짧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는 사실을 저도 이 책의 앞부분에 있는 그의 연표를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1943년에 37세의 나이로 약혼을 했지만 그 해 4월 5일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되었고 1945년 4월 9일 새벽에 39세의 나이로 교수형에 처해져 하나님의 품으로 떠났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다음과 같다고 합니다. "이로써 끝입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삶의 시작입니다."

 

 

 

이 책은 매우 두껍습니다. 거의 500쪽에 달하는 내용입니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1부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전체 제목이 없고, 2부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와 따르기'라는 주제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제일 중요한 부분은 서문과 제 1부의 첫 번째 내용 '값비싼 은혜'입니다. "나를 따르라"는 제목에서 이미 알 수 있듯이 본회퍼는 이 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단지 지적인 동의와 같은 정신적인 작용의 하나가 아니라 온몸으로 예수의 삶을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의 주장은 '값싼 은혜'와 '값비싼 은혜'를 구분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값싼 은혜'라는 말을 만들고 통용시킨 사람은 본회퍼인데요. 그가 어떤 관점에서 '값싼 은혜'를 비판하고 있는지 이 책을 잘 들여다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본회퍼는 행함을 강조합니다. 그렇다고 믿음을 등한시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믿음은 단순한 복종으로 이어져야 한고 복종은 믿음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단언합니다. "믿는 사람만이 복종하고, 복종하는 사람만이 믿는다."는 표현은 그의 신앙관을 단적으로 알 수 있는 표현입니다. (65) 그는 믿음만을 강조할 때 우리의 삶이 모순에 빠질 수 있음을 지적합니다. 

 

사람을 그분에 대한 믿음으로, 그분과 맺는 친교로 부르는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은 인간의 이런저런 행위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자 중보자이신 예수를 믿느냐에 달려 있다. 결국, 모든 것은 가난이나 부, 기혼이나 미혼, 취직이나 실직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달려 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말이 전적으로 옳다면, 부(부유함) 속에서 그리고 세상의 재화를 소유한 채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가능할 것이고, 따라서 재화를 소유하지 않았다는 듯이 소유해도 될 것이다. (98) 

 

제가 공감했던 내용 중 하나는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어떤 고난을 받게 되는가에 대한 본회퍼의 설명이었습니다. 본회퍼는 그리스도인이 받는 고난 중 하나가 바로 죄 용서의 고난이라고 말합니다. 이웃의 죄를 용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능하면 나에게 죄를 범한 사람에게는 받은 대로 갚아 주든가 아니면 적어도 멀리 떨어져 지내야 할 것 같은데요. 그런 행동은 예수를 따르는 행동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처럼 십자가를 지라는 예수의 호소는 모든 따르는 자를 죄 용서의 친교로 이끈다. 죄 용서야말로 제자에게 권할 그리스도의 고난이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받는 고난이다. (116)

 

본회퍼는 예수를 따를 때 우리의 마음 자세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길과 십자가'라는 장에서 그는 마르틴 루터의 글을 인용하고 있는데요.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음은 본회퍼가 인용한 마르틴 루터의 글입니다. 

 

네 지성을 기준으로 삼지 말고, 네 지성을 넘어서라. 무지 속으로 가라앉아라. 그러면 내가 네게 내 지성을 주겠다. 무지가 올바른 지성이다. 네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모르는 것, 그것이 바로 네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제대로 아는 길이다. 내 지성은 너를 완전한 무지 상태로 만든다. (120-21)

 

본회퍼가 말하는 예수를 따르는 것의 기준은 매우 높습니다. 적당히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기준은 산상 설교입니다. 산상 설교는 예수가 산에서 제자들에게 전한 메시지로 실천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지극히 이상적입니다. 그러나, 본회퍼는 1부의 절반 정도의 내용을 산상 설교를 해설하며 값비싼 은혜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산상 설교에는 여러 가지 어려운 내용도 많은데요. 본회퍼는 각 부분에 대해서 핵심적인 내용을 정리하며 제자가 되어 예수를 따르는 것의 의미를 최대한 자세하게 밝히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 2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와 따르기'에서는 좀더 실제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가 나를 따르라는 그 부르심을 어디서 들을 수 있는지, 교회 공동체가 어떻게 함께 예수를 따를 것인가에 대한 부분도 다루고, 세례의 의미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제 2부에서는 교회 공동체의 중요성과 예배와 설교, 성례전의 의미에 대해서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은 "나를 따르라"는 예수의 부르심을 어디서 받는가? 이 물음의 답은 다음 한 가지뿐이다. "설교를 듣고, 예수의 성찬을 하고, 설교와 성찬 속에서 그분 자신의 말씀을 들어라. 그러면 그분의 부르심을 받게 될 것이다. (328-29)

 

2부에서는 그다지 눈에 띄는 부분이 없었습니다. 제가 본회퍼의 설교나 그의 글을 보면서 느끼는 점은 그는 지극히 이상적이고, 성경적이고, 보수적이고, 예수 중심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폭력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폭력에 의해 희생당했습니다. 본회퍼의 설교나 글도 모두 그런 방향입니다. 지극히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이고 체제 순응적입니다. 

 

그러므로 노예는 노예로 머물러 있어야 하고, 그리스도인은 권세를 부리는 통치자들에게 복종해야 하며, 세상을 피해서는 안 된다. 물론 그는 종살이해도 그리스도의 자유인으로 그리해야 하고, 좋은 일을 하는 한 사람으로서 통치자에게 복종하면서 살아야 한다. (394)

 

어떻습니까? 물론 성경을 해석하는 관점에 따라서 이렇게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히틀러를 암살하기 위한 계획에 가담했던 본회퍼가 이런 주장을 했다는 것이 저는 좀 의아합니다. 이 책이 나온 것이 본회퍼가 31세 되던 해였고 그는 39세에 교수형을 당했는데요. 그렇다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서 그의 신학적인 견해가 완전히 바뀐 것으로 예측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본회퍼의 신학 안에는 권세에 절대 순종해야 한다는 신학과 동시에 악한 권력은 저항에 의해 뒤집어야 한다는 신학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그의 옥중서신을 꼼꼼하게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회퍼의 신학이 나중에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이 책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읽고 도전을 받아야 하는 책입니다. 은혜를 싸구려로 만들어서 값싼 은혜 안에서 살면서 예수의 십자가를 이용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장사를 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순수한 열정으로 예수를 따랐던 청년 본회퍼의 삶과 글은 그들의 잠자고 있는 부끄러움을 깨워 줄 것입니다. 그는 정말 그의 글처럼, 예수를 정신으로만 따른 사람이 아니라 몸으로 행동으로 따른 사람이었습니다. 수많은 신학자들이 이상한 논리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할 때 본회퍼는 단순한 믿음과 복종으로 그리스도인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몸소 보여준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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