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의 노트

[신학노트] 믿음이란 무엇인가? (일반적 의미)

설왕은 2019. 4. 12. 17:18


믿음의 가장 일반적인 의미는 ‘충분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어떤 사람이나 어떤 것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은 항상 믿어야 하는 존재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왜냐하면 신의 존재에 대한 확실하고 충분한 증거를 확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인간이 신을 인간의 감각으로 감지할 수 없는 존재라고 전제한다면 신의 존재 증거는 절대로 확보할 수 없습니다. 


- 신은 인간의 감각으로 감지될 수 없다.

- 인간의 감각으로 감지되는 신의 존재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첫번째 진술에 의하면 두번째 진술 즉 신의 존재한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발견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증거 자체가 신은 인간의 감각으로 감지될 수 없다는 전제에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감각으로 감지되는 신의 존재 증거는 ‘진짜 신’의 존재 증거가 아닙니다. 그 신은 가짜 신입니다. 신의 존재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는 존재하지 않으며 신의 존재는 간접적인 증거나 혹은 추론에 의해 파악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신은 늘 믿어야 하는 존재이지 관찰되고 감지되고 파악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신을 왜 꼭 인간의 감각으로 감지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해야 하는가? 맞습니다. 신을 정의하기 나름이지요. 세상에 슈퍼맨과 같은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신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온 신들이 바로 그런 신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신들이니까요. 영원히 살 수 있고 인간보다 월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를 신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존재를 신이라고 정의하는 것을 꺼려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에 대한 정의는 인간의 감각으로 감지할 수 없지만 이 세상을 존재케 하고 인간을 만들고 우주의 미래를 이끌고 가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어떤 존재입니다. 인간의 감각으로 감지할 수 있다면 그 존재는 물리적 한계를 가진 존재인 것입니다.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존재는 분명히 ‘어디에 어떤 시각에 존재’해야 하니까요. 특정 시각 특정 장소에 존재한다면 그 특정 시각과 장소를 제외한 곳에서는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그렇게 한계를 가진 존재를 신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신은 있을 가능성도 있고 없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신을 믿는다는 것은 어쩌면 그런 가능성을 믿는다는 말과 같은 말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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