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의 노트

[신학노트] 본회퍼의 "값싼 은혜"

설왕은 2019. 4. 15. 16:27


본회퍼의 "값싼 은혜"는 많이 회자되는 표현 중 하나입니다. 대충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알아보지 않아도 알 것 같은 표현이기는 합니다. 은혜가 싸구려 취급당한다는 의미일 것 같습니다. 싸구려 취급한다는 것은 귀하게 여기지 않고 소홀히 여긴다는 것이겠지요. 물론 그런 의미도 있지만 본회퍼의 "나를 따르라"를 읽어 보니 정교하게 이해할 부분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는 “값싼 은혜는 회개 없는 용서의 설교요, 공동체의 징계가 없는 세례요, 죄의 고백이 없는 성찬이요, 개인의 참회가 없는 죄 사함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를 따르라, 김순현 역, 31-32) "값싼 은혜"라는 말로 본회퍼는 죄를 가볍게 여기는 것에 대해 언급합니다. 죄인의 의로움이 아니라 죄의 의로움을 말하는 것이 곧 값싼 은혜라고 설명합니다.(30) 죄인이 의로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죄가 의로움을 받는다는 것은 곧 죄짓기를 꺼려 하지 않는 자세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죄인이니까 그냥 마음놓고 죄를 범하자는 태도가 바로 "값싼 은혜'의 태도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은혜되게 하자는 것입니다. 죄가 있어야 은혜가 임할 테니까요. 그러나 본회퍼는 이런 태도가 은혜를 싸구려로 만드는 태도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본회퍼는 은혜는 값싼 것이 아니라 값비싼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은혜가 값비싼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는 예수를 따르라는 명령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고 또한 예수의 목숨을 대가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나를 따르라"라는 책에서 값비싼 은혜를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미쳤기 때문에 그 은혜를 받은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상 속에서 예수를 따르는 삶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점에서 본회퍼는 수도원 운동을 비판합니다. 수도원 운동은 예수를 따르는 하나님의 값비싼 은혜를 일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마틴 루터가 수도원에서 나온 것은 매우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본회퍼는 지적합니다. 본회퍼에 의하면 루터는 그가 발견한 아무런 조건 없이 용서하는 은혜가 그의 생명을 날마다 요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합니다. 예수를 따르는 것은 은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던 것이죠. 


"값싼 은혜"에서 본회퍼가 내세우는 제일 중요한 논리 중 하나는 은혜는 전제가 아니라 결과라는 것입니다. 본회퍼는 은혜가 전제가 되면 우리의 죄가 의롭게 되고 세상이 의롭게 될 위험이 있다고 말합니다. 은혜는 예수를 따르는 삶을 살려고 노력할 때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 바로 은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일으킨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이 일으킨 결과이기 때문에 은혜라고 말하는 것이죠. 전제로서 은혜는 값싼 은혜, 결과로서 은혜는 값비싼 은혜입니다. 본회퍼는 루터의 말 "대담하게 죄를 지어라. 그러나 더 대담하게 그리스도를 믿고 즐거워하라!"을 설명합니다. 본회퍼는 같은 원리로 해설합니다. 은혜는 전제로서가 아니라 결과로서 주어진다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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