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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윌리엄 블레이크 <천국과 지옥의 결혼>

설왕은 2019. 4. 16. 21:52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는 런던에서 태어난 시인이자 화가입니다. 그가 쓴 시는 영국 사회의 여러 가지 폐단을 풍자하고 비판한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를 예언자적 시인이라고도 하죠. 그가 그린 그림도 예술적이거나 아름다운 느낌과는 거리가 멉니다. 좀 섬뜩하고 무시무시해 보이는 그림들이 많죠.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우리는 모두 블레이크가 쓴 하나의 문장에 매우 익숙합니다. 그 말은 바로 "바쁜 벌꿀은 슬퍼할 시간이 없다"는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벌꿀은 꿀벌을 잘못 말한 거고요. 원래 말은 "바쁜 꿀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입니다. 이 말은 블레이크가 쓴 '지옥의 격언' 중 한 문장입니다. 풍자적인 표현입니다. 지옥의 격언에는 수십 개의 문장이 있는데요. 예를 들어 이런 식입니다. "용기가 부족하면 간계가 능하다." 용기가 부족한 사람은 그래도 교활해진다는 장점은 있다고 비꼬아서 말하는 것이죠. 이해가 잘 안 되는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바쁜 꿀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는 말은 좋은 말일까요, 나쁜 말일까요? 바쁘면 좋다는 걸까요, 안 좋다는 걸까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풍자적인 표현입니다. 꿀벌처럼 정신 없이 바쁘면 안 좋다는 것입니다. 블레이크가 말로 풀어서 설명했다면 이렇게 했을 것 같습니다. "야, 꿀벌은 진짜 정신 없이 바쁘지 않냐? 그래도 저렇게 바쁘면 슬퍼할 시간이 없을 거야. 아무리 상황이 거지 같이 암울해도 말이야." 블레이크에게 그 정도 바쁜 것은 나쁜 일입니다. 그는 예술에 높은 가치를 둡니다. "인간을 파멸시키려거든 첫째로 예술을 파멸시켜라." (94) "예술이 타락하면, 상상력이 부인되며 전쟁이 제국을 지배한다." (95) 그런데 그는 예술 작품은 예술가가 물질적으로 넉넉하거나 적어도 생활고에 시달리지 않을 정도가 되야 나올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까, 바쁜 꿀벌에게 예술이란 사치일 뿐이죠. 꿀벌은 파멸된 인간상의 한 모습니다. 그 인간상의 장점을 굳이 하나 찾자면 자기 연민에 빠질 시간이 없다는 것이죠. 인간은 꿀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삶의 여유를 가지고 예술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블레이크의 주장입니다. 따라서, 오늘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자기 연민을 없애기 위해 스스로를 바쁘게 만드는 잘못을 범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삶의 여유가 생긴다면 아름다운 것을 생각하고 창조하십시오. 



천국과 지옥의 결혼은 아름다운 시집은 아닙니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블레이크의 예리한 통찰력이 담겨 있습니다. 제가 재밌게 읽은 시 하나를 인용합니다. '학동' 좀더 쉬운 말로 '공부하는 어린아이'라는 시입니다. 


학동


나무마다 새들이 노래하는 

여름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즐겁다.

사냥꾼은 멀리서 뿔나팔을 불고

나와 함께 종달새는 노래한다.

아,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헌데, 여름 아침에 학교엘 가면 

모든 기쁨이 사라지고 만다. 

늙고 무정한 한 작은 눈길 아래

어린 것들은 탄식과 낭패 속에

하루를 보낸다.


...


아버지, 어머니여,

싹들이 잘리고

꽃들이 바람에 불려가 버리면

그리고, 부드러운 봄의 나무들한테서

슬픔과 근심으로

그들의 기쁨을 빼앗는다면,


어떻게 여름이 기쁨 속에 솟아나며

여름 열매가 나타날 것인가요? 

그래서, 겨울 찬바람이 불 때

슬픔이 망쳐 버린 것을 우리가 어떻게 거두며

무르익은 한 해를 축복할 것인가요? 



작은 아이들과 함께 하고 있는 엄마, 아빠에게 전해드리고 싶은 시입니다. 인간은 모두 천재 예술가로 태어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으로 아이들의 천재성, 예술성을 짓밟을 때가 많죠. 블레이크의 시가 어떻게 들리시나요?


제가 읽은 번역본은 민음사(김종철 역)에서 나온 책입니다. 2007년 이후에 산 책인데 마치 1980년대에 만들어진 느낌을 주는 책입니다. '학동'이라는 제목만 봐도 그렇죠. 보니까 이 책은 1판 1쇄를 1974년도에 출간했고 1996년도에 개정 중보판 1쇄를 발행하고 2007년에 중보판 3쇄를 냈는데 아마 1판에서 많이 바뀌지는 않았나 봅니다. 요새 나온 번역본은 번역도 훨씬 매끄럽고 편집도 잘 되어 있을 것으로 예상해 봅니다. 이 책은 번역이 좀 아쉬운 대신 영어 원문이 옆에 있어서 대조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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