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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마르틴 부버 "나와 너" (1923)

설왕은 2019. 4. 23. 21:27

 

마르틴 부버, <나와 너>, 표재명 역 (서울: 문예출판사, 1995)

 

마르틴 부버(1878-1965)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유대인 철학자입니다. <나와 너>는 1923년 그가 45세 되는 해에 출간한 책으로 그의 대표적이 저서이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온 책입니다.

 

비교적 내용이 적은 책입니다. 약 150쪽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쉽게 읽혀지는 책은 아닙니다. 모든 단락과 문장이 매우 함축적입니다. 책의 구성은 아래와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제1부 근원어

제2부 사람의 세계

제3부 영원한 너

 

제일 유명한 내용은 제1부 근원어에 나와 있습니다. 부버는 '나-그것'과 '나-너'를 근원어라고 표현합니다. 부버는 '나-그것'의 관계와 '나-너'의 관계를 구분합니다. 부버가 '나-그것'과 '나-너'를 근원어(Grundworte)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의 관점에서 '나'라는 존재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버는 '나'는 자체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나-그것'의 나 혹은 '나-너'의 나가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8) 일단은 Grundworte를 근원어라고 번역하는 것이 너무 어색합니다. '근원어'보다는 '근본말'로 번역하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나-그것' 그리고 '나-너'가 존재의 기본이 되는 기본 단어라는 뜻입니다. 근원어라는 말 자체에 부버의 존재에 대한 이해가 이미 담겨 있습니다. 근원이 되는 것이 말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근원력이 있을 수도 있고요. 근원이 되는 그림으로 근원화, 근원이 되는 원소로 근원원소, 혹은 근원이 되는 유전자로 근원유전자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버는 인간 존재의 근본이 말이라고 보기 때문에 근원어로 '나-그것'과 '나-너'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과 '내'가 말한다는 것은 똑같은 것이다. '나'라고 말하는 것과 두 근원어 중의 하나를 말하는 것은 똑같은 것이다. 

근원어를 말하는 사람은 그 말 속에 들어가 거기에 선다. (9)

 

보통 부버의 '나-그것'과 '나-너'를 설명하면서 나와 그것은 주체와 객체의 관계로 내가 그것을 경험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한편, '나-너'는 주체와 객체의 관계가 아닌 대화적 상호 관계라고 설명합니다. '나-너'의 관계는 주체와 객체의 관계가 아닌 주체와 주체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만남 속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런데, 실제로 부버의 책을 읽어보면 훨씬 더 심층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신비적인 차원이 있습니다. 부버의 말입니다. 

 

내가 '너'라고 부르는 사람을 나는 경험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그와의 관계 속에, 거룩한 근원어 속에 선다. 다만 내가 그 관계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나는 그를 다시 경험하게 된다. 경험이란 '너와의 멀어짐'이다. (16)

 

부버에 따르면 '나-너'의 관계에서 너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경험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렇게 경험되는 존재는 '나-그것'에서 그것입니다. 오히려 시간과 공간은 '나-너'의 관계 속에서 규정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나의 너는 시간과 공간 속의 너가 아니고 나의 너가 새로운 시간과 공간을 창조합니다. 그렇지만 부버가 '나-너'에서 너를 경험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지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Image by Alexas_Fotos from Pixabay  

이런 관점에서 부버는 사랑을 설명합니다. 

 

사랑은 하나이다. 감정은 '소유'되지만 사랑은 생겨난다. 감정은 사람 안에 깃들지만 사람은 사랑 안에서 살아간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라 현실이다. 즉 사랑은 '나'에 집착하여 '너'를 단지 '내용'이라든가 대상으로서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나'와 '너' '사이'에 있다. (24)

 

부버는 신과 인간의 관계도 '나-너'의 관계로 파악합니다. 여기서 너는 '영원한 너'입니다. 제3부 '영원한 너'에서 부버는 신과 인간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부버의 책은 논리적인 흐름을 따라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계시를 받아서 써내려간 것 같은 그런 느낌입니다. 멋있고 그럴싸한 문장이 많은데 논리적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문단 사이의 연결 논리도 치밀하지 않습니다. 짧은 책인데도 불구하고 한 번에 읽어내려 갈 수 없습니다. 중간중간 한참동안 멈출 때가 많았습니다. 

 

세계는 신의 놀이가 아니다. 세계는 신의 운명이다. 세계가 있고, 인간이 있고, 인간의 인격이 있고, 너와 내가 있다는 것, 여기에 신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다.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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