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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강영안 <믿는다는 것>

설왕은 2019. 4. 27. 20:14


저자(1952~)는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25년간 재직했습니다. 원래는 신학을 전공하다가 나중에 전공을 바꿔서 네덜란드에서 칸트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철학과 교수님이라고 하더라도 신학이나 기독교 신앙에 대한 관심으로 학문을 시작한 분이기 때문에 믿음에 대한 책도 쓰신 것 같습니다.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1. 질문하는 믿음

2. 응답하는 믿음

3. 실천하는 믿음

4. 앎을 추구하는 믿음


각각의 부분이 믿음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응답하는 믿음'은 '믿음은 응답하는 것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이해하면 3부의 주제까지 잘 이어집니다. 즉, 믿음이란 '질문하고 응답하고 실천하는 것'을 뜻합니다. 4부의 주제는 기독교 신학에서는 가장 고전적인 주제에 속합니다. 11세기에 안셀무스가 "나는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이해할 수 있다."라고 말하며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의 선구자가 되었는데요. 4부는 바로 그런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과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3부는 기독교 윤리에 관련된 주제라서 저자의 독특성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1부와 2부에서 저자의 믿음에 대한 생각의 독특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부에서는 저자는 질문과 믿음의 관련성에 주목합니다. 믿음을 위해서 질문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믿음에 대한 일반적인 주장이나 설명과는 색다른 부분입니다. 


질문과 추구, 고민과 씨름은 진지한 믿음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것들입니다. 이로부터 우리가 응답하는 믿음, 실천하는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36)


저자는 2부 '응답하는 믿음'의 두 번째 장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에서 믿음에 대해 단계를 나누어서 설명합니다. 믿음은 첫째, 이해하고 알아 듣는 것, 둘째, 그 말을 참된 것으로 인정하는 것, 셋째,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믿음에 대한 단계적 설명에서도 드러나지만 저자는 믿음이란 믿는 사람이 주도적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닌 응답하는 것이라고 역설합니다. 


믿음은 말 건넴에 대한 반응이요, 부름에 대한 호응이며, 초청에 대한 응답입니다. 말을 건네고 부르고 초청하시고 찾아오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믿음은 나를 찾으시고, 나에게 찾아오시며, 나를 방문하시는 그분에 대한 응답입니다. 이 응답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온 몸과 온 마음이 개입되는 행위입니다. (91)


믿음에 대한 이런 이해는 마틴 루터의 믿음 이해와 비슷합니다. 루터는 믿음을 개인의 의지적인 결단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믿음을 일으키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믿음이란 하나님의 부름에 대한 응답이라고 설명합니다. 개신교의 신앙 전통에 부합하는 견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믿음에 대해 다양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저자가 철학자이기 때문에 기독교의 믿음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다른 종교의 예도 사용하고 철학적인 관점에서 믿음에 대한 해설도 덧붙이고 있습니다. 다양하고 풍성한 설명이 이 책의 장점입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분석적인 면이 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질문하는 믿음'에서 믿음에는 질문이 필요하다는 주장하고 있는데 사실 질문을 한다는 것은 의심을 한다는 것과 비슷한 의미를 가질 수 있거든요. 이런 반론을 예측하고 이에 대해 변호하는 과정이 들어갔다면 책이 훨씬 두꺼워졌을테지만 그래도 좀더 알찬 내용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사실 믿음에 대한 '다양한 설명'은 양날의 검입니다. 믿음의 여러 가지 측면을 골고루 보여줄 수 있지만 저자의 주장을 날카롭게 드러내는 데는 도움이 주지 못한 것 같습니다. 마치 뷔페를 먹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믿음의 다양한 측면을 살펴보고 싶은 분들에게는 안성맞춤의 책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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