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란 무엇인가?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요? 구체적으로 용서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니면 명백한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처벌을 원하지 않고 눈감아 주는 것이 용서일까요?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범죄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강도들의 타깃이 될 것입니다. 도둑들은 제집 드나들 듯이 그리스도인의 집에 찾아올 것입니다. 명백한 범죄 행위는 처벌하는 것이 맞습니다. 불의를 대해선 분노하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서 범죄자에게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은 정의 구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범죄에 대한 처벌을 부정하고 피해자에게 용서를 강요해선 안 됩니다. 이것은 범죄자의 논리입니다. 이런 논리에서는 범죄자가 피해자에게 “왜 용서 못하냐?”고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용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에게 죄를 지은 사람에게 가서 “당신을 용서합니다.”라고 말을 하면 되는 걸까요? 우리에게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유죄 선고를 받고 감옥에 갇혔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찾아가서 “당신을 용서합니다.”라고 말하면 용서하는 것일까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또한 매우 번거로운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천이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범죄자에게 찾아가서 내가 그 사람을 용서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어떤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 범죄자는 죄의 대가를 다 치르면 공식적으로는 사회의 일원으로 다시 받아들여집니다. 피해자가 용서를 해주지 않아도 말이죠.
아니면 용서는 복수하지 않는 것을 의미할까요?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이 있으면 우리는 그에게 받을 만큼 되돌려 주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누군가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우리도 그에게 똑같은 상처를 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복수는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아닌 사람에게 향할 때도 있습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나에게 갑의 위치에 있고 내가 을의 위치에 있다면 나는 감히 갑에게 복수를 할 생각을 못합니다. 그러면 내가 을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그에게 대신 보복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에게 직접 보복을 하든, 아니면 또다른 타인에게 보복을 하든 복수는 연쇄 작용을 일으킵니다. 누군가 중간에서 의도적으로 멈추지 않는다면 복수의 연쇄 반응은 점점 강도와 그 영향력이 더 커지게 마련입니다. 복수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용서일까요?
용서는 ‘정상적인 인간 관계의 기회를 다시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의 친구가 나에게 돈을 100만 원 빌려갔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그 친구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 돈을 갚지 않았습니다. 한참 후에 그 친구가 나에게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또 돈을 100만 원 빌려 달라고 간청합니다. 친구 간에 다음과 같은 대화가 이어지겠죠.
“너, 지난 번에도 100만 원 빌려갔는데 안 갚았잖아. 내가 너를 어떻게 믿고 돈을 또 빌려줄 수 있겠어?”
“그때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어. 정말 미안해. 용서해 줘. 이번에는 내가 꼭 갚을게.”
만약 내가 그 친구를 용서한다면 다시금 100만 원을 빌려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전에 100만 원을 안 갚았으니까 또 안 갚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전에 그런 잘못이 없었다면 100만 원을 빌려줄 수 있는 사이라면 그런 친구 관계를 다시 맺을 수 있도록 새롭게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용서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자녀가 자꾸 거짓말을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래서 부모는 야단을 치고 혼을 냈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자주 거짓말하는 하는 아이의 말을 믿기 힘들겠지만, 아이를 용서했다면 그 아이가 하는 말이 참말이라고 믿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용서입니다.
나쁜 놈은 계속 나쁠 것이기 때문에 그 나쁜 놈과는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것이 사회에서 통용되는 상식입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와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용서는 인간 사회의 진리와는 다릅니다. 나쁜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정말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계속 기회를 주는 것이 바로 용서입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고 아무리 반복적으로 그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그 죄에서 벗어날 기회를 다시금 주는 것이 용서입니다.
참고문헌
C.S.루이스, "순전한 기독교"
폴 틸리히, "새로운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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