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의 노트

'그리스도'의 의미

설왕은 2019. 11. 16. 22:55

왜 '예수 메시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일까요?

 

그리스도는 헬라어입니다. 히브리어 메시아를 헬라어로 번역한 말이 그리스도입니다. 의미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기름부음을 받는 사람은 크게 왕, 선지자, 제사장 이렇게 세 종류의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주로 왕에게 사용되었던 말입니다. 기름부음을 받는 것은 일종의 의식이었습니다. 이때 사용되었던 기름은 올리브기름이었고 기름으로 문지르거나 머리 위에서 부어서 흘러내리게 했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에 의해 특별하게 선택받아서 사용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리하면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고 하나님으로부터 공인된 왕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에 의해 선택받은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을 '메시아'(기름부음 받은 자)라고 부른 것은 그리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기원전 1-2세기 정도 때부터 새로운 지도자를 기대하면 그를 메시아로 불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름부음 받은 자를 뜻하는 그리스어 '크리스토스'(christos)가 생긴 이후로 메시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열망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는 예수 메시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로 불리게 되었는데 이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는 로마로부터 정치 권력을 뺏어와야 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었던 것이죠. 이스라엘이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는 단지 유대인들의 왕이 될 수 없었습니다. 예수는 로마의 정치 세력과 대결해서 이겨야 하는 그리스도가 되어야 했던 것이죠. 상당히 도발적인 명칭이었습니다. 

 

그런데 1세기의 이스라엘의 특수한 상황으로 볼 때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칭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왕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의미는 정치, 군사적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존슨, 유대인의 역사 1, 284) 로마의 지배를 벗어나야 왕이 세워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그리스도가 왕이라는 선언은 현재의 왕이 아니라 미래의 왕이라는 선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구원을 베풀 사람, 도움을 줄 사람, 해방시켜 줄 사람의 의미를 가집니다. 달리 말하면 답답한 현실의 상황을 벗어나게 해 줄 사람, 미래에 어떤 일을 일으킬 사람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에 대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의 이해는 비슷했습니다. 새로운 왕이 나타나 군사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 이스라엘이 자신들만의 정치권력을 가지게 해 줄 것을 기대했습니다. 로마의 통치자들, 유대인의 산헤드린, 사두개인, 바리새인, 유대의 가난한 자들도 그리스도는 실제적인 권력을 지닌 인물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존슨, 유대인의 역사 1, 285)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칭호를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그리스도에 대한 칭호에 대해서 군중들이 이해했던 바와 예수가 이해했던 바가 달랐던 것 같습니다. 예수를 따랐던 사람들은 예수가 정치적인 해방을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주는 의미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예수가 이해하는 '왕'의 의미는 그런 왕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는 사람들이 원하는 왕의 역할을 수행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일을 일으켰습니다. 정치적 해방이 민족주의적 입장에서는 시급한 구원이었겠지만 예수가 이해한 인간의 구원은 좀 더 근본적인 것이었습니다. 

 

예수의 왕권, 예수의 구원은 좀 더 근본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은 이제껏 어떠한 왕도 이루어내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새로운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는 충분히 그리스도라고 불릴만한 자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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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서적:

1. 알리스터 맥그래스 "역사 속의 신학" (대한기독교서회, 1998) p. 424-26

2. 폴 존슨, 유대인의 역사 1 (살림) p. 28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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