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설교

[길벗설교11] 자유롭게_요한복음 8:31-32

설왕은 2019. 12. 29. 11:50

 

#설왕은TV #요한복음8:31-32 #길벗교회 #자유롭게

제목: 자유롭게

 

(요 8:31-32, 개정)

『[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2019년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여러분 한 해 동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면 잘했던 일도 있고 후회하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면 잘 살았다, 혹은 참 못 살았다, 하는 평가를 하실 수도 있을 거예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그렇게 반성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주위에 있는 여러분의 아내, 남편, 아이들, 엄마, 아빠, 이웃들에게는 그런 평가를 하지 마십시오. “2019년에 당신은 최악이었어.” “여보, 2019년도에 얼마 벌었지? 너무 조금 벌었다. 내년엔 더 벌 수 있지?” 그다지 악의적이지는 않지만 듣기 힘든 말입니다. 주변에 있는 분들에게는 무조건 감사하십시오. “2019년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마웠어요. 당신 덕분에 내 삶이 외롭지 않았어요.” 이렇게 감사하시고 격려해 주십시오. 그런 마음이 없어도 그렇게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 생각에 저 속 썩이는 인간이 옆에 있는 것이 너무 싫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사람은 혼자 사는 것보다 함께 사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보면서 두 번째 했던 생각입니다. 창세기에 사람을 만드시고 하나님 기분이 어땠다고 했습니까? 매우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을 보시고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좋은데,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살되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함께 살아야 합니다.

 

12월은 다섯 주가 있어서 제가 35일 만에 여기에 섰습니다. 11월 마지막 주일에는 제가 문을 여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세상에는 문을 여는 사람이 있고 또 문을 닫는 사람이 있습니다. 문을 여는 사람은 기회를 나누는 사람이고요. 문을 닫는 사람은 기회를 독차지하려고 하는 사람이죠. 문을 여는 사람은 이웃의 손을 잡아주려고 하는 사람이고요. 문을 닫는 사람은 혼자만 잘 먹고 잘 살겠다고 발버둥 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지난 한 달간 어떤 삶을 사셨습니까? 문을 여는 사람이셨습니까, 아니면 문을 닫는 사람이셨습니까? 가진 것이 많아서 여유가 있다고 문을 여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반대로 가진 것이 없다고 문을 닫는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비루해도 우리는 문을 열고 타인을 환대하고 우리가 가진 작은 기회라도 함께 나눌 수 있습니다.

 

오늘은 자유에 대해서 함께 나누겠습니다. 아주 짧은 두 구절의 말씀입니다. 32절은 너무 유명한 말씀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너무 유명한 말씀이지요. 그런데 32절만 읽으면 오해할 소지가 많습니다. 마치 우리가 진리 추구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뜻이 아닙니다. 새번역으로 다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요 8:31-32, 새번역) 『[31]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의 말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들이다. [32] 그리고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나의 말에 머물러 있으면 내 제자가 된다고 31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면 진리를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다음이 자유입니다. 잘 기억해 두세요. 다음과 같은 구조입니다.

 

너희가 내 말에 머물면 진리를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예전에 TV에서 어떤 자산가가 나와서 그런 말을 하더군요. 돈은 자유다, 하고 정의를 내렸습니다. 그 말이 제 기억에 박혔습니다. 우리가 돈은 좋아하면서도 돈에 대한 나쁜 이미지도 있습니다. 돈을 탐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돈이 자유다, 하고 말하니까 그래 돈은 좋은 거야, 돈이 있으면 자유로울 수 있지. 좀 더 구체적으로 그분이 이렇게 말을 했어요. 돈이 10억이 있으면 하고 싶지 않은 것은 하지 않을 자유가 생기고 100억이 생기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생긴다고요. 그럴 듯합니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서 하기 싫은 일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먹고살 만한 돈만 있다면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돈이 많으면 돈으로 살 수 있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100억 정도 생기면 웬만한 일들은 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잠깐만 생각해 보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증 사례를 많이 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리가 부러지면 우리는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부자가 와서 자기도 수술을 한 번 해 보고 싶다고 말하면서 10억을 줄 테니 자기가 수술할 수 있도록 하게 해 달라고 병원에 말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병원에서 허락할 리 없습니다. 만약에 허락한다면 십중팔구 나중에 병원 문을 닫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서 설교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부자가 와서 목사님 길벗 교회에서 다음 주일에 제가 설교하고 싶습니다. 대신 제가 헌금을 10억 내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안 됩니다, 라고 하실 것입니다. 아무나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말이지요.

 

그러니까 우리의 자유에 대한 이해가 매우 얕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유는 좋은 것인데 자유는 무엇인지도 별로 생각을 안 합니다. 우리가 가진 자유에 대한 생각은 주로 몸과 관련하고 있습니다. 자유를 말할 때 우리는 보통 몸의 자유를 생각합니다. 몸의 자유 중에서도 주로 우리는 몸이 우리의 마음대로 가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합니다. 자유의 반대는 부자유, 속박 같은 것입니다. 자유의 반대를 생각해 보십시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입니까? 감옥입니다. 감옥에 갇히면 몸이 자유롭지 않습니다.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없지요. 우리는 몸이 갇히면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유는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하죠.

 

그렇다면 이런 의미에서 가장 자유로운 행동은 무엇일까요? 여행입니다. 여행은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는 것입니다. 여행은 새롭고 좋고 멋있고 환상적인 곳을 보러 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 머릿속에서 여행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자유로운 행동이라는 이미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행을 가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돈이 필요합니다. 다시 정리해봅시다. 우리는 자유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는 우리 몸의 자유입니다. 우리가 가고 싶은 곳에 가는 것을 우리는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돈이 자유와 연결되는 이유를 다시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금방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왜 사람에게 몸의 자유만 있겠습니까? 몸의 자유가 있다면, 마음의 자유도 있겠지요. 우리는 우리의 몸이 가고 싶은 대로 갈 수 있을 때 기분이 좋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가는 대로 결정하고 행동할 때 기분이 좋습니다. 그렇다면 몸의 자유와 마음의 자유 중 어떤 것이 우리를 더 기쁘게 할까요? 어떤 자유가 더 근본적인 자유입니까? 어떤 자유가 우리의 마음을 더 흡족하게 할까요? 마음의 자유입니다. 우리의 몸이 날아다니면 얼마나 자유롭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추구해야 할 더 고차원의 자유는 마음이 날아다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날아다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날아다닐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매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부부 싸움할 때 여러분 그런 경험했을 것입니다. 분명히 오늘 있었던 일로 싸움을 시작했는데 싸움을 하다 보면 10년 전 이야기가 마치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처럼 다시 나옵니다. “당신이 나한테 이렇게 잘못했잖아.” 어른들만 그런 것이 아니에요. 애들도 비슷합니다. 제가 저희 첫째 애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한 다섯 살 때쯤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애가 말을 잘 안 들어서 팔을 심하게 잡아끌었던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애가 팔이 빠졌던 겁니다. 그 후로도 몇 년 동안 정말 상황과 별 상관없이 뜬금없이 저희 애가 이런 말을 하곤 했습니다. “아빠가 내 팔 뺐잖아.” 물론 용서를 구했고 용서를 받았는데도 섭섭한 일이 생기거나 그러면 그 일이 소환됩니다. 마음이 거기 매여 있는 것이지요. 그럼 저는 또 용서를 구합니다. “그때 아빠가 진짜 잘못했어.” 그런데 진짜 괴로운 일은 내 스스로 내가 더 이상 매이고 싶지 않은 일과 기억에 계속 매여 있는 것입니다. 생각하면 생각할 때마다 화가 나는 일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 않는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자유롭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어디에 매여 있어요. 벗어나고 싶고 날아가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까? 오늘 말씀에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너희는 머물 때 자유롭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유라는 것은 어디든 훨훨 날아가는 것 같은 느낌인데요. 예수님의 주장은 역설입니다. 충돌하고 모순이 되는 말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될 때 너희가 자유롭게 된다고 하셨습니까? 너희가 머물 때, 어디에 머물 때요? 내 말에 머물 때 자유를 얻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에 머무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단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혹은 글자로 보셔도 됩니다. 그다음에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머릿속에서 말씀을 굴려 봅니다. 시뮬레이션도 해봅니다. 그리고 그다음은 뭘까요? 실천이지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너희가 오른뺨을 맞거든 왼뺨도 돌려 대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면 생각해 봅니다. 과연 나는 할 수 있을까? 시뮬레이션도 해봅니다. 오른뺨을 맞았어요. 그리고 왼뺨을 어떻게 돌려 댈 수 있을까요? 오른뺨을 맞는 것은 보통 있는 일이 아닙니다. 보통 뺨을 맞게 된다면 왼뺨을 맞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보다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오른뺨을 맞으려면 손바닥이 아닌 손등으로 쳐야 합니다.  경멸의 표시라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뺨을 맞는다는 것은 평생 잊지 못할 불쾌한 경험입니다. 상상만으로도 언짢은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경우를 생각해 보고, 나중에 진짜 누군가 오른뺨을 때렸거나 혹은 그런 경우를 당했을 때 왼뺨을 돌려대는 행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말씀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생각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제가 실천하기 힘든 극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이런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에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세상,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그것은 틀렸어요.” 제가 공대 대학원 시절 때 저의 지도 교수님이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돈이 최곤거잉.” 그분은 우리나라에서 학문적으로는 최고의 정점에 오르신 분이었는데 그런 말씀을 하셔서 저는 그 말이 그냥 지나가는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어요. 마치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최고가 되어 봤는데 이거는 아니더라, 하는 말로 들렸어요. 사람들이 그렇게 말은 안 해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배웁니까?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배웁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방식이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돈을 가져야 참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자유에 대해서 여러 가지 할 이야기가 많지만 오늘은 한 가지 예만 들고 마치겠습니다. 애니메이션 알라딘의 한 장면입니다. 거기서 알라딘이 자스민 공주에게 한밤 중에 찾아갑니다.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자스민 공주가 머물고 있는 성으로 찾아갑니다. 그리고 공주에게 말합니다. 나를 믿나요, 하고 물어보면서 손을 내밉니다. 공주가 그렇다고 대답하며 알라딘의 손을 잡아 마법 양탄자에 오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양탄자를 타고 날아다니면서 주제곡이 나옵니다. 주제곡의 가사는 이런 것이죠.

 

I can show you the world. Shining, shimmering, splendid. Tell me princess. When did you last let your heart decide?

나는 당신에게 세상을 보여줄 수 있어요. 제대로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휘황찬란한 세상을 말이죠. 말해 봐요. 공주님. 당신은 언제 마지막으로 당신의 마음대로 결정했어요?

 

자스민 공주님은 물질적으로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가지고 싶은 것은 거의 다 가질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물건으로는 공주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자스민이 원하는 것은 물건이 아니었어요. 자스민은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자스민은 돈이 많았지만, 불행했고 자유가 없었습니다. 알라딘은 그 점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알라딘은 자스민에게 자신을 믿는다면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리고 자스민에게 자유롭게 살아볼 생각이 없는지 물어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도 이와 매우 비슷합니다. 너희가 나를 믿으면 그래서 내 말에 머문다면,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고 그 진리로 인해 자유를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길벗교회 성도 여러분, 자유롭게 살고 싶으십니까?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은 진리입니다. 돈이나 권력, 물건이나 부동산이 아닙니다. 특별히 물건에 여러분의 마음을 뺏기지 마십시오. 오늘 말씀 듣고 그래 나는 내 마음대로 결정할 거야. 그게 자유지.” 하고 내가 갖고 싶었던 샤넬백을 사겠어.” 혹은 그래 나는 람보르기니를 갖겠어.” 하고 생각하시는 분이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시잖아요. 물건이 우리를 오랫동안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세상에 어떤 물건도 사람에게 자유를 주지 못합니다. 목마름만을 더해 줄 뿐입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에 머무십시오. 어디 가지 마시고 진득하게 예수님 말씀에 머물러 계십시오. 그러면 진리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예수님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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