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어때?

왜가 어디 있어?_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설왕은 2020. 9. 2. 15:19

알랭 드 보통을 베스트셀러 작가 정도로만 알고 있던 나는 지인에게 물어봤다. 

 

 

 

"이 사람, 작가예요? 아니면 철학자?"

나는 그 지인에게 철학자로 알고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래서 철학자인데 소설처럼 글을 쓰는 사람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 참 좋은 방법이라고 무릎을 딱 쳤다. 철학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워낙 먼 것으로 느끼니까, 소설처럼 재미있게 써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알랭 드 보통은 아이디어가 탁월한 사람인 것 같다고 짐작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알랭 드 보통의 대표작으로 우리나라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 중 가장 많이 팔린 책 중 하나일 것이다. 제목도 느낌이 괜찮았고, 표지 디자인도 뭐랄까, 좀 철학적이면서도 지루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초반은 '유치한데...'로 시작했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라는 노랫말이 생각나는 시작이었는데 단순히 그렇게 말만 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계산을 한다. 주인공은 1인칭으로 '나'인데 나는 클로이라는 여자를 만날 확률을 계산한다.

 

'뭐, 굳이 계산까지... 알겠어요. 보통 양반."

알랭 드 보통이 왜 그랬는지 나는 나중에 역자 후기를 보고 알게 되었다. 보통이 이 책을 쓴 것은 그의 나이 스물다섯 살 때라고 한다. 나는 그때 무엇을 했는가 생각해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 때 확률 계산을 하는 정도의 유치함은 아주 점잖은 편에 속한다. 그리고 처음에는 다소 유치했지만 그 이후로는 별로 그런 것을 느끼지 못했다. 20대 중반의 젊은이가 쓴 글이라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이 책은 다양한 생각과 세심한 관찰 능력을 보여 준다. 

 

이 책은 평범한 사랑 이야기이다. 소설로 쓰기에는 부족할 정도로 눈에 띄는 사건도 없고 특이한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알랭 드 보통은 소설을 통해서 끊임없이 묻는다. 이 질문이 이 소설을 특별하게 만든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 드 보통은 정말 가지가지 그 이유를 제시한다. 예를 들어 운명이었을 가능성도 탐색해보고, 클로이가 예뻐서 사랑하는 것 같다는 이유도 철학자의 도움을 받아 한참을 숙고하고, 서로 공통점이 많아서 잘 맞는다는 것도 생각해본다. 한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데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는 게 신기할 정도로 다양한 이유를 죽 늘어놓는다. 그러나 주인공은 생각만 하고 사랑은 하지 않는 스타일은 아니었고, 클로이에게 참 잘했다. 내가 보기엔 이 친구는 연인으로서 참 괜찮은 친구이다.

 

주인공이 왜 클로이를 사랑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탐색하기도 하지만, 이 소설은 연인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도 파고든다. 예를 들어 "사랑이냐 자유주의냐"라는 장에서 알랭 드 보통은 이렇게 말한다.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상대를 마음대로 살게 해주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상대가 우리더러 마음대로 살라고 허락한다면 그것은 보통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87)

 

사랑하는 사람끼리 왜 다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데 왜 싸울까, 라는 질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하나의 이유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면 서로의 삶에 간섭하기 마련이다. 사랑과 자유를 적절히 균형을 맞추어서 분쟁을 일으키지 않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서로 사랑할수록, 더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게 되고, 상대방에게 더 간섭하게 된다. 그것은 간섭이기도 하고 관심이기도 하다. 나는 이 부분에 완전 공감했다.

 

독자들은 최종적으로 대답을 알고 싶을 것이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혹은 여자가 남자를 사랑할 때 그 이유는 무엇일까? 뭐, 책 제목 자체가 그 '왜'를 묻고 있으니까 말이다. 책을 몇 쪽 읽다가 덮은 사람은 작가의 끊임없는 탐색에 지쳐서 더 이상 재미를 못 느꼈을 수도 있지만, 다소 흥미를 가지고 소설의 중반을 넘긴 사람은 아마도 이 질문의 최종 결론을 기대하면 마지막 페이지를 향할 것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그 '왜'에 대한 대답은 없다. 300쪽에 가까운 분량의 글에 작가는 계속 그 왜를 파고들지만 그 마지막에 가서는 이런 허무한 결론을 내린다. 

 

"사랑은 분석적 정신에게 겸손을 가르쳤다." (273)

 

Image by StockSnap from Pixabay  

 

사람들은 사기를 당했다고 느끼거나 혹은 반전과 같은 결론에 다소 황당할 수도 있을 텐데, 나는 알랭 드 보통의 이런 결론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비슷하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스물다섯 살에 했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다. 왜가 어디 있을까? 마음이 흔들리는데 말이다. 마음이 왜 흔들리냐고?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처럼 사랑이 불면 마음이 흔들린다. 왜 마음이 흔들리냐고? 사랑이 불기 때문이다. 

 

아마도 정신분석가나 상담심리학자들이 보면 싫어할 만한 내용이 뒷부분에 서술되어 있다. 알랭 드 보통은 재밌는 상상을 한다. 이런 상상이다. "마담 보바리"의 주인공 보바리 부인이 정신분석가의 도움을 받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다면, 보바리 부인은 비극적인 최후를 피할 수 있었을까? 알랭 드 보통은 그런 행복한 결말을 상상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내 생각도 그렇다. 알랭 드 보통은 문제를 파악하는 것과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지적한다. 정신분석가가 문제를 파악할 수는 있어도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 소설은 진지하다. 단지 소설의 형식을 빌려서 자신의 철학을 설파하려고 시도한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그런 소설도 있는데 적어도 이 소설은 아닌 것 같다. 무엇인가를 가르치려고 이 소설을 썼다면 이 소설은 사람들에게 그 진실성을 간파당하고 외면당했을지도 모른다. 그냥 알랭 드 보통은 생각하기 좋아하는 사람이고 자신의 연애 경험을 통해 사랑의 이유에 대해서 계속 숙고하고 서술해서 이 소설을 완성한 것 같다. 진실성이 느껴졌다. 또한 작가가 생각과 사건을 조화롭게 서술해서 책의 뒷부분에 가면 다소 흥미진진한 부분도 나온다. 그러니까 좀 지루하더라도 계속 읽다 보면 재미와 보람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책이다. 

 

클로이의 치아 모양에 대한 이야기

 

좋은 글은 결론을 알고 읽어도 좋을 때가 많다. 내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결론을 밝혀버렸지만 그래서 이 소설을 읽을 필요가 없다면 생각했다면 나는 설득하고 싶다. 결론을 알고 읽어도 이 글은 읽을 가치가 있다. 주인공이 왜 마지막에 가서 '겸손'을 언급하면서 책을 끝내버리는지 그 과정을 모른다면 결론은 아무런 힘이 없다. 주인공의 말을 죽 듣다 보면 결론의 힘을 느끼거나 혹은 결론에 대항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당신의 기억에 남아 당신의 사랑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글.후. 사람들은 왜 그렇게 왜를 알고 싶어 할까? 나는 그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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