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소설

[한국단편소설] 성석제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2000)_예언자 황만근

설왕은 2022. 6. 10. 10:41

성석제 작가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는 2000년에 동서문학에 발표된 소설입니다. 황만근 실종 사건을 다루고 있는 소설입니다. "황만근이 없어졌다"는 첫 문장이 독자의 흥미를 유발합니다. 결국 황만근은 죽어서 돌아오지만 그 사실이 중요한 것은 아니고, 이 소설은 황만근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말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누가 정말 잘 살았는지 판단해 보라고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물론 작가는 황만근의 삶을 지지하죠.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는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소설 제목을 연상하게 하는 제목입니다. 짜라투스트라는 예언자라고 할 수 있죠. 묘한 말을 하는데, 잘 생각해보면 참 맞는 말을 하는 사람이 바로 짜라투스트라입니다. 마찬가지로 황만근도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지만 진리를 말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책을 읽었습니다. 제목이 풍기는 느낌이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 말이 무엇인지 잘 찾아볼 필요가 있지요. 이 소설에서 황만근의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농사꾼은 빚을 지마 안 된다 카이."

 

 

이 말 뒤에 그 이유에 대해서 길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빚을 지면 무리하게 일을 벌이게 되죠. 제 돈으로 하지 않으면 아무리 농사에 필요한 일을 벌이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도박이나 다름없다고 황만근은 말합니다. 빚으로 산 농기계도 문제가 된다고 지적하죠. 결국 그렇게 되면 빚이 눈덩이 같이 불어나게 되고 빚 때문에 농사꾼은 바보 멍텅구리가 된다고 말합니다. 그 빚을 갚기 위해서 부도덕한 행동도 하고 어리석은 행동도 하게 되는 것이죠. 다른 농사꾼들과는 다르게 황만근은 빚이 없었습니다. 

 

"내가 왜 빚을 안 졌니야고, 아무도 나한테 빚 준다고 안 캐, 바보라고 아무도 보증 서라는 이야기도 안 했다. 나는 내 짓고 싶은 대로 농사지민서 안 망하고 백 년을 살 끼라."

 

황만근은 바보라고 놀림을 받는 사람입니다. 정말 바보 같이 마을의 궂은일을 도맡아서 합니다. 그리고 자신과 나이 차이도 별로 나지 않는 어머니도 정성스럽게 잘 봉양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도 아닌 것 같은 자식도 잘 돌봅니다. 약삭빠르게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사람과는 사뭇 다르게 행동합니다. 바보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살기 때문에 바보처럼 보이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소설을 읽다 보면 어쩌면 후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황만근은 자신이 바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빚을 주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가 자신을 돌보지 않고 타인을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바보 같은 어리석음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그를 바보라고 인식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되죠. 그는 경운기 운전도 잘하고 오래된 경운기 관리도 잘하고 농사일이나 집안일을 못 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가 바보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요. 시대나 사회의 흐름을 따르지 않는 것으로 인해서 그를 바보라고 하는 것 같은데 정말 바보는 누구인지 질문하게 하는 소설입니다. 

 

황만근은 농민 궐기대회에 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실종이 되었는데 그의 아들이 찾으러 갔다가 황만근의 뼈만을 가지고 돌아옵니다. 민 씨는 황만근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을 전합니다. 그 마지막 부분의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아니하고 감탄하지 않는 삶이었지만 선생은 깊고 그윽한 경지를 이루었다. 보라. 남의 비웃음을 받으며 살면서도 비루하지 아니하고 홀로 할 바를 이루어 초지를 일관하니 이 어찌 하늘이 낸 사람이라 아니할 수 있겠는가. 이 어찌 하늘이 내고 땅이 일으켜 세운 사람이 아니랴." 

 

 

농촌의 부채 문제를 다루고 있는 소설인데 묘하게 우리가 살고 있는 2022년 대한민국의 현실에도 부합하는 소설입니다. 황만근의 주장은 빚이 생기면 사람이 바보 멍텅구리가 된다는 것인데 지금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이 빚을 지고 있죠. 빚을 내서 집을 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빚은 자신의 소득 수준 이상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게까지 빚을 지면서 집을 산 이유는 빚에 대한 이자보다도 집값이 상승하는 속도가 빨라서 결국은 돈을 벌게 된다는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가장 비판받았던 부분이 바로 부동산 정책입니다. 집값 상승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 많았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집값 상승을 막아줄 대통령과 정부를 선택해야 할 텐데요. 바보가 아니라면,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면 그게 정상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은 정반대로 집값을 올리고 집값 상승을 부추길 대통령과 정부를 선택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이렇게 어리석은 선택을 했을까요?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가 그 이유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누가 바보인지 헷갈리는 세상입니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는 똑똑한 바보 이야기인데 중간에 전래 동화 같은 내용이 들어가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황만근이 신체검사를 받으러 갔다고 돌아오는 길에 토끼 고개를 넘게 되었는데 거기서 말하는 토끼를 만납니다. 토끼는 일반적인 크기가 아니라 사람보다도 더 큰 토끼였는데 황만근을 집에 못 가게 막아섰습니다. 그리고 황만근에게 집에 못 가고 너는 여기서 죽는다고 말하죠. 토끼와 씨름을 벌인 황만근은 얼떨결에 토끼에게 세 가지 소원을 들어달라고 요구하고 토끼는 그 소원을 들어주기로 합니다. 결국 신기하게도 황만근의 소원대로 다 이루어집니다. 판타지 소설 같은 이야기가 중간에 끼어들어가 있는데 황만근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일어난 일인 것처럼 여겨지도록 아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이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가 다른 소설과 다른 독특한 내용이었습니다. 황만근이 짜라투스트라와 같은 예언자라면 말하는 토끼와 만난 일은 지어낸 사건이 아니라 실제 일어난 일일지도 모르죠. 

 

결국 황만근은 무슨 일인지 모르겠으나 천수를 다하지 못하고 죽어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보통 예언자의 삶은 해피 엔딩이 별로 없지요.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는 웃기고 슬프고 바보 같으나 현명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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