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단편소설

[세계단편소설] 캐서린 맨스필드 "원유회(가든파티)"_즐거움을 망치려 하고 있어

설왕은 2022. 7. 11. 12:24

제목이 너무 생소했다. 원유회. 옆에 괄호 속에 가든파티라고 적어 놓은 것을 보니 아마도 원유회는 가든파티의 중국글자 표현이 아닐까 생각했다. 야외에서 벌어지는 잔치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소설의 시작은 바로 잔치 분위기를 알리고 있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였다. 가든파티에 이만큼 어울리는 날씨는 없을 것이다. 바람도 없고 따뜻하며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 초여름에 이따금 보이는 금빛 안개가 옅게 끼어 있을 뿐이었다. 

 

 

원유회는 영국의 소설가 캐서린 맨스필드(1888-1923)가 지은 단편소설로서 가든파티에 전해진 부고 소식을 듣고 음식을 들고 상갓집에 들른 로라의 이야기이다. 로라는 세상이 가진 편견과 틀에 익숙해지지 않은 젊은 아가씨이다. 그래서 그런지 로라는 주변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에 의문을 품는다. 로라의 의문과 놀람과 당황은 작가인 맨스필드가 가졌던 것임에 분명하다. 맨스필드는 35세라는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원유회를 언제 썼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아마도 20대에서 썼을 확률이 높다. 오랫동안 가난과 질병에 시달린 젊은 맨스필드는 세상의 부조리를 개혁할 수 있는 힘은 없었겠지만 의문을 제기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의 의문은 소설 속 로라를 통해 드러난다. 

 

소설 속 상황은 아주 미묘하다. 성대한 가든파티가 열리고 사람들은 모두 들떠 있다. 엄청나게 많은 음식과 더불어 가든파티를 준비하기 위한 많은 손길과 아름다운 꽃이 준비되고 모임을 위한 천막이 설치되고 음악을 연주할 악단이 도착한다. 사람들은 모두 한껏 차려 입고 예쁘게 치장하며 파티를 즐길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 순간에 갑자기 마차꾼 스코트가 사고를 당해 죽었다는 소식이 전달된다. 마차꾼 스코트의 집은 이웃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다. 부고 소식을 들은 로라가 가든파티를 중단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물어본다. 스코트는 아내가 있고 아이들도 다섯 명이나 있는 사람이었는데 그들이 스코트의 죽음을 애도하는 순간에 파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면 어떻겠냐는 것이 로라의 우려였다. 하지만 로라의 제안은 여러 사람의 반대에 부딪혀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엄마가 로라에게 말한다. 

 

저런 사람들은 우리가 무언가를 해 주어도 고맙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야. 로라, 너는 지금 다른 사람들의 즐거움을 모두 망치려 하고 있어. 그건 옳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할까? 파티는 준비되었고 많은 사람이 파티를 즐기기 위해 들떠서 모이고 있는데 갑작스러운 이웃의 죽음을 들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로라 엄마의 말이 맞을까? 사람들의 즐거움을 망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일까? 결국 파티는 강행된다. 잠시간의 소요는 이내 정리된다. 아마도 파티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과 같은 부류의 이웃이 죽었다면 파티는 중단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부 스코트는 로라 가족과는 다른 계급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파티를 취소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다. 사실 이다음 장면이 좀 끔찍하다. 파티에서 남은 음식을 싸서 바구니에 담아 로라에서 쥐어 준다. 그 불쌍한 사람들에게 전달하라고. 로라는 또다시 의문을 품는다. 

 

또 한 번 느끼는 것이지만, 그녀는 자기 혼자만 의견이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티에서 먹고 남은 음식을 그 사람들에게 주다니. 그들이 과연 이런 것을 고마워할까?

 

 

파티복을 입은 로라가 음식 바구니를 들고 상갓집에 방문한다. 이런 어색하고 끔찍한 장면을 연출하다니. 정말 1900년대의 영국은 그런 사회였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왜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로라밖에 없었던 것일까? 로라의 엄마는 음식을 가지고 가면 사람들이 고마워할 것이라고 말한다. 남은 음식을 버리지 않아서 좋고 상갓집에 모인 사람들은 음식을 먹어서 좋고. 어떻게 생각하면 합리적인 결정이다. 하지만 곤경에 처한 것은 로라다. 바구니만 전달해 주고 가려던 로라는 죽어서 누워 있는 스코트의 얼굴을 보게 된다. 스코트의 얼굴은 평온하고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로라는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울음이 나왔다. 로라는 사내에게 뭔가 말을 걸지 않고는 방을 나올 용기가 없었다. 로라는 그만 어린애처럼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런 모자를 쓰고 와서 미안해요."

 

그리고 로라는 오빠 로리를 만나는 장면과 함께 소설은 끝이 난다. 마지막 문장은 "그래, 인생이란 그런 거 아니겠니?"인데, 내 생각에는 "이런 모자를 쓰고 와서 미안해요." 다음에 "로라는 이렇게 말한 후 혼자서 그 집을 빠져나왔다"라는 문장으로 끝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맨스필드는 사후에 안톤 체호프와 견줄 정도의 영국 제일의 단편 작가로 추앙받고 있다고 한다. 나는 맨스필드의 소설은 "원유회"가 처음이었고 다른 소설을 읽어 본 적은 없다. 젊은 아가씨의 당황스러운 경험을 담고 있는 듯한 이 소설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뭔가 잘못된 것 같지 않습니까? 이런 질문 말이다. 이웃의 갑작스러운 죽음, 남편을 잃은 아내와 아빠를 잃은 다섯 명의 아이들, 그리고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데 흥겨운 음악 소리가 새어 나오는 가든파티를 즐기는 것이 맞을까? 가든파티에 남은 음식을 싸다 주면 사람들이 고마워할까? 파티복과 멋스러운 모자를 쓴 상태로 상갓집에 가도 괜찮을까? 지금의 상식으로 생각하면 다 안 될 것 같은 일이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그런 일들이 일어났던 것 같다. 로라 엄마의 말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즐거움을 망치면 안 된다는 논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오직 로라만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것 같다. 맨스필드가 살아 있을 때 인정을 받지 못했던 이유는 아마도 로라의 감정을 불편해하는 사람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좋은 소설이다. 살면서 겪기 힘든 일을 소설로 전하면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런 것이 바로 소설의 가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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