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하나

[철학하나] 하이데거의 염려(Sorge)

설왕은 2019. 3. 7. 18:31

 

20세기의 최고의 철학자는 누구일까요? 철학자들에게 설문 조사를 하면 아마도 하이데거가 1등 자리를 차지할 확률이 가장 높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조사를 한 적도 있을 텐데요. 찾아 보면 하이데거가 1등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top 5안에는 꼭 들어가 있을 것입니다. 그 정도로 하이데거의 영향력은 컸습니다. 그렇다면 하이데거의 철학이 어떠하길래 많은 사람들이 그를 20세기 가장 위대한 철학자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을까요?

 

일단 아래의 내용은 저의 개인적인 의견임을 밝힙니다. 하이데거를 공부하면서 그가 어떤 면에서 다른 철학자들과 달랐는지, 그리고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그의 철학이 우리 실제 삶을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먼저, 하이데거는 근대철학의 틀을 아주 자근자근 씹어서 폐기해 버린 철학자입니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는 아시다시피 데카르트입니다. 데카르트는 정신과 육체를 분리해서 생각했죠. 데카르트의 이원론이 재밌는 점은 현대인들은 이원론을 부정하면서 동시에 이원론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원론을 통해서 데카르트가 밝히고자 했던 것 중에 하나가 영혼의 존재 가능성입니다. 그리고 이원론의 가장 중요한 주장 중에 하나가 육체와 정신이 따로따로 존재할 수 있다고 것입니다. 육체와 정신이 따로 존재할 수 있다면 영혼이 존재할 수 있다는 주장이 성립합니다. 그런데 현대의 대부분의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은 이원론을 따르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육체 없이 영혼이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죠. 뇌과학의 발전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데카르트 이원론의 반대 이론은 하나는 육체와 정신이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주장이고요. 또다른 반대 이론은 아예 정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유물론(materialism)입니다. 사람들은 비물질적인 것이 아예 존재할 수 없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물론 극단적인 그룹이 어디에나 있어서 극단적인 유물론자도 있지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혹은 열린 마음으로 비물질적인 존재에 대해 적극적으로 거부하지는 않습니다. 그랬다면 종교는 벌써 다 사라졌겠죠.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육체와 정신이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 경향이 요새 트렌드이죠. 사람들은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옛날 이론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이원론이 가지는 아주 중요한 함의가 있습니다. 유명한 말이 있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 말 자체는 인간 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한 주장입니다. 인간의 본질은 생각이라는 것이죠. 인간의 본질인 생각이 외부의 물질들과 분리됩니다. 생각이 주체가 되고 물건이 객체가 됩니다. 인간이 주체가 되고 외부 사물은 객체가 됩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존재하는 것들을 기계적으로 대상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기 자신까지도 대상화, 객관화해서 판단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정신이라는 주체가 물질이라는 객체를 대상화하는 이원론적 사고 방식입니다. 즉, 주체와 객체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정신과 육체를 나눌 수 있다고 주장한 데카르트적 사고입니다. 하이데거의 스승이었던 후설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체와 객체를 나누어서 가장 순수한 주체, 초월적인 의식을 찾으려고 노력했죠. 이것을 깬 사람이 바로 하이데거입니다. 

 

하이데거는 주체와 객체는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것을 나타내는 말이 바로 Dasein(다자인)입니다. Dasein은 인간을 의미합니다. 우리말로는 현존재라고 번역하기도 하는데 이는 일본에서 번역되어 건너온 말이라고 합니다. 현존재는 Dasein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 좋은 번역이 아닙니다. Dasein은 Dasein으로 불러야 합니다. Dasein의 의미는 '거기 있음'입니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세상 안에 거기 있는 존재'로 이해했습니다. 즉, 주체와 객체는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죠. 인간은 외부에 있는 물건을 대상화하지만 사실은 세상 안에 있기 때문에 완전히 분리된 주체, 완전히 분리된 정신으로 외부 사물을 객체화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주체, 의식, 초월과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이데거 이후의 철학자들은 대부분 하이데거의 이런 인간 이해를 따랐습니다. 더이상 순수한 의식, 초월적 자아 등을 찾아 헤매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객관적인 시각이나 정보와 같은 말들은 하이데거 철학에 의하면 존재할 수 없는 것이죠. 

 

 

하이데거는 Dasein의 본질적 속성을 '염려(Sorge)'라고 주장합니다. 두려움과 염려의 뜻의 차이를 아십니까? 두려움은 대상이 존재하고 염려는 대상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기서도 하이데거는 주체와 객체의 틀을 벗어납니다. 즉, 인간은 주체로서 어떤 객체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뚜렷한 대상이 없는 존재의 불안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이 존재의 불안함이 바로 염려입니다. 영어로는 care라고 번역하던데 한국어 '염려'나 영어 'care' 모두 그 의미를 잘 살려 주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염려는 하이데거가 말하는 인간(Dasein)과 같이 설명이 필요합니다. 하이데거는 그의 저서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이 시간을 의식하기 때문에 염려를 갖게 된다고 주장하기도 하죠. 결국, 인간은 미래에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 염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좀 더 철학적으로 말하면 비존재에 대한 염려이죠. 

 

그러나, 사실 과연 그런가라는 의구심이 들기는 합니다. 세상에는 자신이 안 죽을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죠. 그래서 누군가는 죽음을 의식해야 훌륭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죽음을 의식하면 우리는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그 염려가 사람을 훌륭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여하튼, 하이데거는 근대철학의 이분법적 사고를 무너뜨립니다. 저는 이분법적 사고가 완전히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다들 이분법적 사고를 할 때 하이데거는 다른 생각의 틀을 제공했다는 데서 하이데거의 위대함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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