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하나

[철학하나] 하이데거의 '있음'

설왕은 2019. 3. 8. 17:33

 

하이데거는 '있음'에 주목했습니다. 그러면 그전에 철학자들은 주로 무엇에 집중했을까요? 그들은 본질에 주목했습니다. 즉, 하이데거 이전의 철학자들은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여러 가지 주장이 있습니다. 근대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가 주장한 대로 인간의 본질은 '생각'일 수도 있겠고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아시죠? 아니면 인간의 본질이 이성이라는 관점은 철학의 역사만큼이란 오래된 이론입니다. 아니면 최근 관점도 있죠. 극단적 진화론자인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대로라면 인간은 유전자의 증식과 보전을 위해 고안된 로봇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질은 유전자입니다. 이렇듯, 많은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인간의 본질에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간의 '있음'에 주목했습니다. 진짜 철학자다운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이데거의 질문은 이런 것입니다. 

 

"인간은 왜 없지 않고 있는가?" 

 

어떻게 보면 이 질문은 참 시시한 질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죠? 인간의 있음 자체에 질문한다는 것 자체가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좋은 철학자는 좋은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위대한 철학자는 그 좋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사람이죠. 하이데거와 같이 인간의 있음에 대해서 질문했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이데거만큼 그 질문에 대해 치열하게 생각하고 연구해서 조직적인 글을 적어낸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이데거가 훌륭한 것이겠죠. 

 

 

인간의 '있음'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질문을 이렇게 좀 더 구체화시켜 보죠. 인간의 있음과 돌멩이의 있음이 뭐가 다를까요? 하이데거는 이런 점에 착안했습니다. 인간의 있음과 돌멩이의 있음은 확실히 다를 것입니다. 여기서 바로 "존재와 시간"이라는 그의 책이 나올 수 있는 근거가 생기는 것입니다. 인간의 있음은 시간 안에 있음입니다. 물론, 돌멩이도 시간 안에 있지만, 돌멩이는 자신의 과거와 미래에 의해서 현재의 있음이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다릅니다. 인간은 자신의 과거와 미래가 현재의 있음에 영향을 미치죠. 하이데거는 망치의 예를 드는데요. 망치는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존재 이유와 목적이 확정이 되어 있습니다. 망치는 못을 박는 데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아닙니다. 인간(Dasein)은 '있음' 자체가 계속적으로 문제(issue)가 되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완성되지 않은 채로 태어나죠.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가능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있음을 결정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인간은 결정되지 않은 채로 태어나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완전히 결정되지 않습니다. 계속 무언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 있는 '가능 존재'입니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그가 되려고 마음먹은 바 바로 그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사람이 타인을 흉내내며 살아갑니다. 인간은 스스로 결단을 내리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리며 살아갑니다. 이런 존재 상태를 하이데거는 "비본래적 실존"이라고 말합니다. 좀 더 쉬운 말로 하면 자기 자신으로 살지 못한다는 말이겠죠. 

 

하이데거가 이해한 Dasein(인간)은 "가능 존재"로서 근본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로 존재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이 불안정한 상태를 떠안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이런 근본적인 속성을 부정하려고 할 때 문제가 생깁니다. 하이데거의 입장에서는 문제일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네요. 사람들은 확실한 것을 추구합니다.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소유하는 것에 집착하는 것도 바로 이런 경향 탓이겠죠. 하이데거는 인간의 있음의 특징 중 하나를 "빠져 있음"이라고 표현합니다. 불안정한 상태의 자기 자신으로 가능 존재로 살아가는 것을 거절한 채 세상과의 관계 속에 빠져 있고 이제까지의 자신의 삶에 빠져 있는 상태입니다. 세상이라는 공간에 자신을 고정시키거나 혹은 과거라는 시간에 자신을 고정시키려는 경향이죠. 

 

확실한 것에 자신을 고정시키려는 이런 경향은 결정된 인간의 미래에 의해 순간순간 그 매듭이 풀려 버립니다. 죽음이죠. 죽음으로 인해 인간의 있음은 불완전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불안정합니다. 미래의 죽음이라는 '없음'을 알고 있는 인간에게 현재의 있음은 확실한 있음이 아니라 불안정한 있음입니다. 여기에서 하이데거는 인간이 염려(Sorge)하는 존재로서 살아가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단지 죽음에 대한 걱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이데거는 '섬뜩함'이라는 단어도 사용합니다. 인간은 순간순간 섬뜩한 불안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갑자기 자신을 둘러싼 의미 체계가 무너지면서 자신의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나는 왜 사는가?' 고민에 빠지는 순간의 경험을 섬뜩함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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