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하나

[SK] 키에르케고르 "절망은 죄다"

설왕은 2019. 4. 22. 14:39

참고서적

키에르케고르, "불안의 개념/ 죽음에 이르는 병", 강성위 역, 동서문화사



키에르케고르는 죄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죄란 신 앞에서 절망하여 자기 자신이고자 하거나, 또는 신 앞에서 절망하여 자기 자신이 아니고자 하는 일이다." (269) 그는 성서가 죄를 불복종으로 정의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 정의가 성경적인 죄 정의와 일치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즉 절망하는 것은 신의 뜻에 불복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죄의 반대는 덕이 아니라 신앙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한 말을 그대로 옮겨 봅니다. 


그러나 죄의 반대가 덕이라고 사실 종종 생각되어 온 일이 있다. 그렇게 보는 것은 상당히 이교적인 사고방식으로서, 죄를 단순히 인간적인 척도로 받아들여, 죄가 무엇인지를, 또 모든 죄가 신 앞에 있다는 것을 결코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죄의 반대는 덕이 아니라 신앙이다. 그러므로 로마서 14장 23절에는 신앙에 의하지 않은 모든 것은 죄라고 씌어 있다. 그래서 죄의 반대가 덕이 아니라 신앙이라는 것은 그리스도교 전체에 있어 가장 결정적인 규정 가운데 하나이다. (270)


죄에 대한 정의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신 앞에서 자기 자신이고자 하는 것도 죄고, 신 앞에서 자기 자신이 아니고자 하는 것도 죄라는 것인데 그럼 신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아마, 다른 책을 좀 참고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번역상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열심히 이해를 해 보면 이렇습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은 신 앞에서 좌절하기 쉽다고 말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신과 인간의 관계는 가장 고귀한 존재와 가장 비천한 존재 사이의 관계와 같은 것인데 그리스도교에서는 이 관계가 아주 편한 관계, 허물 없는 관계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 비천한 존재는 이러한 관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믿지 못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좌절은 "숭고한 상대에 대한 불행한 경탄"이라고 말합니다. (274) 그가 말하는 절망은 여기서는 좌절을 의미하는 듯합니다. 죄는 신 앞에서 '절망한 자기 자신'이 되거나 혹은 신 앞에서 절망해서 '자기 자신이 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에 문장에 따옴표를 이렇게 붙이면, 죄의 반대를 왜 신앙이라고 주장하는지 좀더 이해할 수 있습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죄의 용서에 대한 절망을 자세하게 설명하는데요. 죄의 용서에 대한 절망은 두 가지입니다. (310) 하나는 약함의 절망이고, 다른 하나는 반항의 절망입니다. 약함의 절망은 용기가 없어서 믿지 못해 자기 자신이기를 거부하는 절망이고 반항의 절망은 자기 자신이고자 고집하는 절망입니다. 용서에 관해서 살펴 봐도 여전히 헷갈리는 설명입니다. 자기 자신이기를 거부해도 안 되고, 자기 자신이고자 고집해도 안 되고...


키에르케고르는 왜 신앙의 반대를 절망이라고 했을까요? 예를 들어 키에르케고르는 "신의 죄의 용서에 대해 절망하는 것은 죄이다."라고 말을 했는데요. 신의 용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죄라고 말해도 되는데 굳이 절망이라는 단어를 넣은 까닭은 무엇일까요? 


참고로 키에르케고르는 '신앙인'은 '사랑하는 자'라고 아주 단순한 정의를 내립니다. (293)

  

320x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