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어때?

모방 욕구와 폭력_르네 지라르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설왕은 2019. 12. 7. 08:42

르네 지라르,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김진식 옮김 (서울: 문학과지성사, 2004)

표지가 무시무시한 이 책은 1999년에 나온 대표적인 기독교 변증서 중 하나입니다. 변증이라는 말은 논리적으로 변호하여 증명한다는 뜻이죠. 다시 말하면 르네 지라르는 이 글을 통해 기독교가 옳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합니다. 대담한 시도입니다. 요새는 신학자들도 이런 시도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분명히 편협하다는 비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이 증명하고자 하는 것은 '신이 존재한다'라는 명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논리로 증명하기 불가능합니다. 4세기에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했듯이 모조리 파악된 신은 더 이상 신이라 부를 수 없습니다. 르네 지라르(1923-2015, 프랑스 아비뇽 출생)는 문학평론가이자 사회인류학자입니다. 그리고 그는 역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회문화의 한 현상으로서 기독교와 성경을 바라봅니다. 범위를 좀 더 좁혀서 말하면 신화의 관점에서 기독교와 성경을 해석합니다. 그는 스스로 이런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신화는 다른 모든 신화와 비슷한 '개중에 하나'인가, 아니면 '독특한 하나'인가?

 

르네 지라르는 기독교가 독특한 하나의 신화라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을 극단으로 몰고 가면 '기독교만이 진리이다'는 주장과 비슷해질 것입니다. 부드럽게 이야기하면 기독교는 사회문화의 한 현상으로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이 아니라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것과 같이 전혀 다른 별종으로 기적처럼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해 보죠. 사람들은 보통 종교가 문화의 한 현상이라고 말하는데요. 르네 지라르는 모든 종교는 문화 현상이지만 오직 유일하게 기독교는 문화 현상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가 신학자였다면 "기독교는 계시다" 하고 짧게 말했을 것 같습니다. 

 

르네 지라르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불트만의 말대로 자동차나 전기보다 십자가가 신화의 수수께끼를 더 잘 해명하고, 또 현대 철학과 사회과학에 만연해 있는 환상으로부터 우리를 더 잘 벗어날 수 있게 해 준다면, 우리에게 십자가는 꼭 필요한 것이다. 기독교는 한물간 것이 아니다. 아니 총체적으로 볼 때, 기독교는 우리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얻을 가치가 있는 최고의 진주와 같은 것이다." (16)

 

지라르는 신화의 형성 과정을 주목합니다. 신화가 형성이 되는 이유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그는 말합니다. 신화는 역사적으로 오래된 이야기이고 한 곳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에서나 있습니다. 그는 신화를 문화의 한 현상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봅니다. 지라르는 신화는 폭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 낸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그렇다면 폭력은 왜 생기는 걸까요? 그에 견해에 따르면 폭력이 생기는 원인은 '모방 욕망' 때문입니다. 

 

지라르는 기독교의 십계명 중 열 번째 항목 "너희 이웃에 대해 거짓 증언하지 말지니라."라는 항목이 바로 욕망 금지법이라고 해석합니다. 결국 모든 죄의 원인은 이웃을 모방하려는 욕망 때문에 생긴다는 것이죠. 그러나 이웃을 따라 하려고 해도 모두가 다 이웃을 따라 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재화나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부자의 삶을 모방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한정된 자원 때문에 모두가 다 그것을 실현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욕망을 실현하려면 충돌이 생기고 폭력이 발생합니다.

 

욕망이 서로 대립하고 충돌해서 사회는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그들이 사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탈출구를 찾습니다. 그들의 폭력을 집중시킬 대상을 찾는 것이죠. 그러다가 적당한 대상을 찾으면 그를 희생양으로 삼아 제거합니다. 희생양이 제거되면 사회는 다시 평화를 유지하게 되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지라르의 유명한 '희생양 이론'입니다.

 

지라르는 모든 신화가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사회의 혼란은 폭력성으로 나타나고 결국 신의 분노가 드러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희생시킬 제물을 찾아 그를 제거함으로써 신의 노여움이 풀고 사회는 다시 평화를 찾습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폭력이 정당화된다는 것입니다. 

 

지라르는 여기에 반대하는 유일한 사건이 바로 십자가 사건이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지라르에 따르면, 희생양을 찾아서 그를 제거함으로써 사회의 평화를 유지하는 폭력성의 잘못을 폭로한 사건이 바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지라르는 기독교를 타종교와는 완전히 다른 독특한 종교로 이해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십자가 사건이야말로 인간의 모방 욕구로 인한 폭력성의 죄악을 고발하는 유일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른 신화와 달리 기독교의 십자가 사건은 일어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서술한 사건이라고 지라르는 주장합니다. 지라르와 기독교를 변증하는 신학자들은 서로 출발점이 다릅니다. 지라르는 사회를 분석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반면에 신학자들은 기독교가 진리라는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지라르는 사회를 분석하다 보니 이 세상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기독교에서 찾게 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 책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는 기독교의 독특함을 드러내면서 매우 논리적으로 기독교를 변증하고 있습니다. 

 

"신화 뒤에는 실제로 일어났으며 신화를 지배하는 사건이 있는데 신화는 그 사건을 변형시키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신화를 통해서 실제의 사건을 제대로 알아내지 못할 뿐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복음서는 사건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어 사람들이 지금까지 결코 알아차리지 못한 이 진실을 전 인류에게 그냥 내맡겨두고 있다." (179)

 

기독교, 특별히 십자가 사건은 인간이 일부러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 속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는 것이죠. 십자가 사건은 인간의 모방 욕구로 인한 폭력성을 고발하는 유일한 사건이라고 르네 지라르는 주장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진주와 같다고 말했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집고 넘어가겠습니다. 누군가 지라르에게 이렇게 물었던 것 같습니다. "지라르 선생님, 그런데 예수님도 자신을 모방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 책에서 지라르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예수가 우리에게 모방하라고 권하는 것은 바로 그 자신의 '욕망'이다. 이 욕망은 또한 그가 세운 '가능한 한 하나님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는다'는 목표로 그를 인도하는 정신이다." (27)

 

욕망을 버리려고 하는 자신의 욕망을 모방하라는 뜻입니다. 지라르가 제시하는 사회 문제의 해결책입니다.

 

예수를 모방하라. 그의 욕망 없음을 욕망하라.

 

욕망을 버리려는 욕망을 가지라는 것인데 이게 실현 가능한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욕망을 버리려는 욕망을 욕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욕망과 충동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제가 볼 때도 대부분의 사람들의 경우에 문제는 그들의 욕망이 지나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욕망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자신의 욕망이 없는 사람은 타인의 욕망을 따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욕망이 없는 사람들의 주된 욕망이 돈이 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욕망이 없는 사람들의 욕망인 것 같습니다. 

 

르네 지라르의 신화에 대한 분석은 정말 탁월합니다. 하지만 그가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한 욕망 없음을 욕망하라는 주장은 현실성이 없어 보입니다. 구더기가 무서우니까 장을 담그지 마라, 학교 폭력이 문제가 되니까 학교를 없애라, 이런 식의 일차원적 제안처럼 들립니다. 인간은 복잡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욕망이 없는 인간만큼 재미없는 인간이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모방 욕구가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한 경우를 찾아보면 많이 있을 겁니다.

 

욕망이 폭력을 낳고 폭력을 해결하기 위해 신화를 만들고, 거기까지는 좋았습니다. 하지만 악의 시작이 욕망이니까 욕망을 없애자는 것은 좀 아니지요. 

 

또한 문화사회학의 관점에서 기독교의 신화가 다른 신화에서는 절대로 찾아볼 수 없는 희생양의 무고함을 드러내는 유일한 신화라는 주장에도 다소 갸우뚱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A라는 것은 다른 데서는 절대로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것이다라는 주장은 반증 사례 하나만 있으면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습니다. 주장은 매우 대담하나 논리 자체가 대단히 불안정한 논리입니다. 하지만 20세기에 지식인이 이런 식으로 기독교를 변증하는 책을 낸다는 것 자체가 용기 있는 일입니다.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또한 인간의 모방 욕구에 대한 그의 통찰력도 뛰어나고 새로운 관점에서 기독교를 변증하고 있기 때문에 꼭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 참고

 

르네 지라르(1923-2015)는 프랑스 아비뇽에서 출생해서 파리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박사 학위는 미국 인디애나 대학에서 "미국인들의 프랑스관"이라는 주제로 받았습니다. 스탠퍼드 등 여러 학교에서 교수로 지냈습니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1부 성서의 폭력 이해

2부 신화의 수수께끼

3부 십자가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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